[소설] 스물여덟 공영하에 대하여

글 입력 2024.01.13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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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날 갑작스레 열병을 앓고 있던 나에게 어머니는 언젠가 세상이 저버릴 것들에 대해 말씀하셨다. 따스한 온기가 머리카락을 빗어 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머니는 어느 날 봄기운이 싹트고 발 딛는 곳에 생명력이 흘러넘쳐도 나는 그곳을 차마 밟지 못할 시간이 존재할 것이라고 읊조렸다. 목울대에서 머물러있던 울음은 어느새 화가 되어 내 안에서 응어리지지만, 그것이 기어코 밖으로 꺼내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날 창문 틈으로 흘러들어왔던 노을빛은 무르익은 황금색을 띠고 있었다. 멀리서는 뜀박질 소리와 소년들의 웃음소리가 너른 하게 피어올랐다. 세상 무서운 것이 없던 말갛던 어린 소년은 기꺼이 어머니의 말을 부정했다. 일곱의 해가 지날 동안 바라봤던 세상은 다정했으며 앞으로도 내가 딛는 땅에는 다정히 충만히 차오를 것이라고. 어머니는 말없이 웃으셨다.

 

 

그날 밤 어머니는 셋의 보금자리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셋의 보금자리였으나 어느새 아버지의 빈자리가 당연시되던 그곳에서의 공허함을 견디지 못하신 듯했다. 창틈에서는 아침을 알리는 지저귐이 새롭게 스며들었으나 나의 머리를 빗어주던 어제와 같은 온기는 남아있지 않았다.


어머니조차 저버린 공허함, 하나에서 둘의 몫으로 늘어나 버린 그것은 가진 것 없이 노출되어 있었던 내가 온전히 떠안게 되었다. 순식간에 어미의 품을 잃어버린 어린 소년은 갓 태어난 새끼처럼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했다. 목 놓아 울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으나 학에 발을 들이기도 전이었던 소년이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았고, 기척 없는 그 공간에서 소년이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었다.


수 시간시간 후 울다 지쳐 울음을 삼키기 시작했을 때 나는 그날 그 시간 그 대화에서 볼 수 있었던 어머니의 웃음에 어째서 소리가 존재하지 않았을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죄책감이었을까. 안타까움일까. 자신의 배로 열 달을 품고 낳아 길렀던 핏덩이에게 그저 동정심만 가졌을 것으로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너무나도 잔인한 이야기가 될 것이므로. 끊임없는 자문자답 속에서 동정도 정이라는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을 때에는 이미 마음속에서는 무력감만이 차오르고 있었다.

 

 

옆집의 한 노인에 의해 사흘 만에 발견된 이후 매스컴에서는 먹잇감을 잡은 하이에나처럼 이 '사건'에 대해 말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행방은 미스테리했다. 짐도 없이 기차를 타고 어딘가로 떠나는 모습이 집 근처 CCTV에서 잡혔으나 그 이후로는 알 수가 없었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생과 사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고, 그러한 이야기가 TV 속에서 들릴 때마다 옆집 노인은 다정히 웃으며 내 귀를 막았다.


안타깝게도 노인의 손은 두 개였다. 귀를 막아주는 손이 있을지언정 내 눈을 막아주는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세상은 다정하게도 듣지 않아도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아나운서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자막을 달아줬다. 다정함이란 무엇일까, 친절이란 무엇일까. 어린 소년의 귀는 막지만, TV 채널을 돌리지는 않는 옆집 노인의 웃음일까. 농인들을 위해 자막을 달아주는 세상일까. 원망할 대상을 찾아 헤매던 나날들 속에서 며칠이 지나도 어머니의 시신을 찾았다는 뉴스 속보는 뜨지 않았다.


이후 두 개의 교복을 입고 시간을 보낸 공영하의 안에서는 수십번씩 어머니가 생성되다가도 바스러졌다. 누군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기에 고작 일곱의 소년은 너무나도 편향적인 시선을 갖고 있었고, 공영하는 그런 편향된 시선을 가진채 성장했다. 조금이라도 성장한 순간, 어머니의 무언가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다시금 그녀에 대해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아무리 복기해도 의미 없는 과거 따위 버리고 싶었으나 그러기에는 공영하가 쥐고 있는 것이 많이 없었기에.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소유하고 있는 것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무엇보다도 공영하는 어렸다.

 

그러나 어린 만큼 세상이 좁고 부족해 도저히 난제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이해하고 싶었다. 자신의 세상을, 자신의 어머니를 마주하고 싶어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수 백 번의 자문자답 곳에서 공영하는 결국 결론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정답일지 꼬리가 꼬리를 물던 순간 동안 공영하는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고 다시 죽는 기분을 느꼈다. 

 

공영하는 그렇게 스무 살을 채웠다.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떠돌며 자신의 몫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버텨온 그는 성인이 되고 난 뒤에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아르바이트 하며 보냈다. 단잠에서 깨어난 아침에는 기꺼이 봄을 마주하다가도, 하루를 보낸 뒤 밤이 되면 어김없이 겨울을 마주하던 시간이었다. 가끔씩 손님들의 화가 너무 고될 때는 화려한 조명들을 등지고 쓰레기통 옆에서 타들어 가는 담배를 바라봤다.


그가 일하던 곳은 시내에 있던 편의점이었다. 시내에는 행복을 찾기 위해 모여든 또 다른 스무 살들이 삼삼오오 웃고 있었다. 성인이 되었다는 설렘이 담겨있는 싸구려 향수와 화장품 냄새, 유행하는 스타일의 짧은 치맛자락, 뒤꿈치를 아리게 하는 구두같은 것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그중 그 무엇도 공영하의 것은 아니었고, 그도 굳이 그 사실을 잊고 그곳에서 벗어나려 생각하지 않았다.


공영하는 온기로 북적이는 가게의 조명들 속에서 그러한 것들을 탐하기에는 금시에 타들어 가는 담배의 붉음이 너무도 익숙했다. 뒤늦게 무언가를 원망하거나 슬퍼할 힘은 그의 육신 안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담배 연기가 공중에서 바스러질 때 그는 그날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을 떠올리고는 했다. 어머니는 현명했다. 모두에게 봄기운이 싹트고 발 딛는 곳에 생명력이 흘러넘쳐도 나는 그곳을 차마 밟지 못할 시간이 존재했고, 목울대에서 머물러있던 울음은 어느새 화가 되어 내 안에서 응어리지지만, 그것이 기어코 밖으로 꺼내지는 일이 없었다. 그것이 스무살의 공영하가 유일하게 어머니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이었다.


그렇게 해는 빠르게 지나갔다.

 

공영하는 어느새 어머니의 연령을 따라잡았다. 그 누구보다도 어른스러워 보였던 스물여덟이 된 공영하에게는 사랑하는 이도, 어느 정도의 돈도 손에 쥐어져 있었다. 공영하보다 네 살 많은 남성은 공영하가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채워주려 노력했으며, 팔 년의 시간동안 모아놓은 돈은 일상을 보내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공영하에게 일곱의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는 없었다. 어머니에게는 사랑하는 이도, 어느 정도의 돈도 없었지만, 고작 일곱의 아이만이 남아있던 나이였다.


그 사실을 깨달은 어느날 평소처럼 일과를 마치고 버스에 몸을 기댈 때, 창밖으로 보이는 가로등을 보며 공영하는 문득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 시절의 어머니처럼 소리를 담고 있지 않은 고요한 울음이었다. 어머니의 웃음에 어째서 소리가 담겨있지 않았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차마 다른 이들에게 들려줄 수 없었던 은밀한 고통. 그것이 비집고 나오는 것을 애써 막기 위해 소리를 삼켰다. 이를 악물고 얼굴을 뒤트니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공영하는 마치 미소 짓는 것처럼 보였다.


공영하가 어머니를 원망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날 밤 소리 없는 울음을 터트리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김푸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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