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첫 만남만 서너 번째

글 입력 2024.05.16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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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선한 면을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의 일기를 읽으면

그 사람을 완전히 미워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나의 영혼은 상대의 영혼과 미묘하게 뒤섞이면서

나는 약간 내가 아니게 되고, 상대도 그 자신이 아니게 된다.

  

문보영, '일기시대' 서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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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만 서너 번째


 

그와는 세 번의 첫 만남을 가졌다. 어쩌면 네 번. 아리송한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건 정말로 모든 만남이 각자의 이유로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 만남들은 원인과 결과가 죄다 뒤죽박죽 꼬인 채 서로 맞물려 있다. 그를 시간순으로 나열하자니 여러 번의 우연을 하나로 연결지었던 묘한 힘에 대해 설명할 수 없고, 마음이 동했던 순으로 나열하자니 앞뒤가 엉켜버린다.

 

이 세 번도 네 번도 아닌 첫 만남'들'을 어떻게 풀어놓아야 할까.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은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해서 조금 구구절절해지기로 했다. 세 편의 에세이 그리고 한 번의 티타임, 각각의 만남이 어떤 의미에서 처음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1. [에세이] 신문에는 부고가 실리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시간적으로 가장 앞에 위치한, 말 그대로의 가장 순수한 첫 만남. 그건 반 년 정도 전의 일이다. 여느 때와 같이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리다가, 역 플랫폼과 하늘을 함께 담아낸 사진 한 장을 발견해 조금 유심히 보게 되었다.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의 풍경은 언제 마주하든 특유의 설렘과 활기를 담고 있어 종종 눈길이 갔다. 일전에 비슷한 구도로 찍어둔 기차역 풍경과 여행에 얽힌 기억들이 떠올라서 막연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여행기일까, 아니면 분주한 일상을 논하는 글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래에 적힌 텍스트를 읽어보았다. 그리고 첫 문장을 읽음과 동시에 내 예상은 크게 빗겨나갔다.

 

신문에는 부고가 실리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다. 꽤 심각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 같아 순간 머뭇거려졌다. 너무 내밀한 사연에는 지나치게 동화되기가 쉽고, 그래서 가끔은 묵직함을 일부러 피하기도 하니까. 하지만 부고라는 단어의 무게감은 차마 지나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이 무게를 감내하고 글을 쓴 사람의 마음은 응당 마주해야 할 것인 것 같아 남은 본문을 읽어내려갔다. 당직을 서며 부고 기사를 처리하는 어느 기자. 그가 숱한 마지막을 다루며 느낀 감상과 함께 직업인으로서 맞게 될 마지막을 점쳐보는 이야기가 섬세히 담겨 있었다. 끝을 예감하는 순간의 쓸쓸함과 그 냉기로 시린 마음이 선연했다.

 

서늘해지기 시작한 날씨와 함께 당시의 나는 마찬가지로 하고 있던 일을 마무리지어가는 시기였고, 모든 종류의 마지막을 힘겨워하는 탓에 계절을 조금 탔다. 그때 마주한 글 한 편은 그렇게 초겨울의 인상을 가지고서 마음 한켠에 남았다.

 

 

#1. [에세이] 집사람이 결혼했다

 

그리고 이번 봄. 글 자체를 넘어 글 뒤의 '사람'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된 만남이 있었다. 이상하게 아침 시간이 한가롭다 싶은 날 간만에 또 인스타그램을 뒤적거렸다. 이번에는 사진이 아닌 강렬한 제목에 이끌렸다. 에세이라면 여유로운 오전에 읽기 딱이었다. 누군가의 일상을 담아낸 글은 술술 읽히는 맛이 있어 부담이 없지만, 인생사에 엮인 통찰은 귀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또 약간의 반격(?)을 당했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는데 울컥해서 혼났다. 제목엔 웃음기가 가득했지만, 읽으면서 순간 울컥할 만큼의 깊은 시간과 마음이 본문 곳곳에서 묻어나왔다.

 

이쯤에서 굳이 짚자면 나는 글에서 스스로를 많이 본다. 이때도 그랬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갈수록 언젠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인생 2막'을 열어젖힐 것이라는 점이 실감되어 자꾸 헛헛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래도 관계에 대한 고민은 어느 정도 일단락해두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통해 10년지기의 결혼을 생생히 전달받으니 또 그 감각들이 되살아났다. 단짝 친구의 결혼이라니. 상상만 해도 섭섭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신부와 함께 우는 하객의 이야기가 도저히 남일 같지가 않았다. 깊은 우정을 나눈 사람들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싱숭생숭해지는 이 마음을 대체 어찌해야 할까. 막막함과 함께 나보다 앞서 이런 경험을 한 이의 글을 몇 번은 다시 읽었다.

 

그러다보니 이토록 솔직한 글을 쓴 사람의 이름도 자연스레 눈에 들어왔다. 나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구나. 어쩌면 비슷한 건 이름뿐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1. [에세이] 2월이 길다는 느낌에 대한 가벼운 통찰

 

내 무심함이 기어코 세 번째 첫 만남을 빚어냈다. 고속버스를 타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긴 이동시간 동안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다 아트인사이트 사이트에 접속했다. 그날은 메인 배너에 에세이가 걸려 있었는데, 이 카테고리에 있는 다른 글들도 쭉 읽어보자 싶어졌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가지고서도 너무 사적이지 않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되던 차였다.

 

그리고 정갈한 일기 같은 글을 마주했다. 삶의 조각을 이런 담백한 방식으로 내어놓을 수도 있구나, 싶었다. 꽤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었는데도 삼삼하니 자꾸 읽게 되었다. 아니, 오히려 개인적이기 때문에 그 점이 더 매력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의 일상과 생각을 공유받는 듯한 느낌. 어쩐지 친밀감이 생겨서 홀린 듯 '이 에디터의 다른 글 보기' 버튼을 눌렀다. 꽤 목록이 길었다. 에세이를 자주 쓰시는구나, 생각하며 다른 글의 제목들을 훑어보는 순간 돌연 벼락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인상 깊게 보았던 글들(위의 두 편)의 제목이 보였던 것이다. 그제야 처음 알았다. 다 같은 사람의 글이었구나.

 

이후 에디터 인터뷰를 신청할 기회가 생겼고, 나로선 정말 예외적이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시도를 했다. 그러니까, 모니터 속 활자를 넘어 실제로 조수빈 컬쳐리스트를 만나기에 이른 것이다. 마침내 세 번의 첫 만남들은 네 번째 첫 만남으로 이어졌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날의 티타임. 그동안 글을 통해서만 접했던 사람을 직접 마주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날씨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약간의 떨림 그리고 설렘과 함께 약속 장소에 들어서 그를 찾았다. 이로써 두 명의 글 쓰는 수빈이 한 자리에 모였다. 기분 좋은 긴장감 속에서 티타임 내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이지만 처음 아닌 만남, 이름처럼 나와 닮은 듯 다른 조수빈 컬쳐리스트와의 인터뷰를 여기에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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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 쓰는 수빈들


 

Q. 처음 인터뷰 제의를 받고 당황하진 않으셨을지 조금 걱정했어요. 어떻게 인터뷰를 수락하게 되셨나요?

 

A. 아트인사이트에서는 2년 정도 활동을 했는데, 오프라인으로 다른 에디터 분들을 만날 기회는 사실 꽤 있었어요. 다만 저는여러 사람이 있는 자리에 가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이번엔 일대일로 요청을 주시기도 했고, 또 이렇게 제안을 주신 건 저와 제 글을 궁금해하셨기 때문이잖아요. 저도 수빈 님의 글을 읽어보았고, 만나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저는 기자 일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아야 할 때가 많거든요. 항상 거절 당할 위헙을 무릅써야 해요. 그래서 저에게 들어오는 요청은 웬만하면 받는 편이에요. 요청하는 입장의 기분을 누구보다 잘 알거든요.

 

 

Q. 에세이 '비행기의 그림자를 본 적 있나요'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쓰신 걸 봤어요. 그래서 말인데, 요즘 수빈 님이 새롭게 발견한 것이나 푹 빠져 있는 대상이 있다면요?

 

A. 요즘은 '나'를 발견하는 시기예요.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오히려 나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거든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려워졌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시 이해하는 과정을 겪는 듯하네요. 또 요즘 빠져있는 것은 운동이에요. 클라이밍을 1년 정도 했거든요. 혼자 하는 운동을 선호하기도 하고, 러닝이랑 다르게 바로바로 성취가 있어서 좋아요. 1, 2분 남짓한 시간 동안 꼭대기를 찍고 내려와야 하니까요. 그런데 사실 요즘은 '클태기'가 왔어요! 정체기라고 할까요. 아직 제 몸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것 같아요. 클라이밍의 즉각적인 성취감이 잘 느껴지지 않아서, 스스로 화도 좀 나고요. 그래서 요즘 푹 빠져 있다고 말하기에는 조금 고민이 되긴 하네요.

 

 

Q. 그렇다면 평소에는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요.

 

A. 아무래도 쭉 좋아해왔던 건 글쓰기인 것 같아요. 직업도 그렇고요. 저는 기록에 대한 강박이 좀 있거든요. 일기장을 두 개나 써요. 남한테 보여줄 수 있는 일기와 그렇지 않은 일기로 나눠서요. 블로그까지 하면 세 개네요. 사실 쓰는 일 자체에 기운이 많이 들어가잖아요. 그런데도 제 일과 취미, 일상 모두에 글이 있는 걸 보면 이건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끼는 것 같아요.

 

 

Q. 아트인사이트에서 발행하신 글들을 살펴보면 에세이를 주로 기고하시는 것 같았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수빈 님의 매끄럽고 감성적인 문체와 에세이라는 장르가 잘 맞아떨어진다고 느꼈는데요, 에세이 장르에 특히 매력을 느끼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사실 저는 에세이를... 제가 겪은 경험과 가장 가까운, 가공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절반 정도는 진실이지만 가공되는 부분도 분명히 있거든요. 하지만 글의 화자가 '나'이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 글이 제 이야기라고 믿어요. 그래서 에세이에는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솔직한 글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물론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이 부담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에세이의 힘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소설을 쓰고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소설은 세계를 새롭게 만들어내야 하잖아요. 기승전결도 있어야 하고. 에세이는 내 이야기니까, 그 세계가 나에게 있는 거죠.

 

 

Q. 말씀하셨던 경우처럼 저는 글에 스스로가 드러나는 걸 좀 무서워하는 편이에요. 특히 에세이에서는 결국 내 이야기를 하게 되고, 또 무언가 완결적인 통찰을 제공해야 할 것 같다는 약간의 부담도 있더라고요. 정말 혼자 보는 일기가 아니라 보여지는 글로서의 에세이를 쓸 때 고민이 되는 부분은 없으신가요?

 

A. 내가 너무 많이 노출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은 있죠. 그리고 어쨌든 글에는 독자가 있어야 하잖아요. 너무 사적인 얘기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것 같으니까, 중간 지점을 계속 찾는 것 같아요. 독자층을 타겟팅하기도 하고요. 또 최근에 많이 고민하는 부분은, 바로 갈등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이에요. 원래는 글에서 예민한 이야기를 잘 안 해요. 쓰더라도 공개를 안 하고요. 저는 글을 좋아하기도 하고, 글 속에는 제가 담기니까, 부정적인 반응이 있으면 상처받을 것 같아서요. 기사에 달리는 악플이랑은 좀 다른 이야기예요. 아무튼 부정적인 얘기를 담지 않으려고 하니까 주로 제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쓰게 돼요. 작년 중순 쯤부터는 비문학을 일부러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이런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설득력 있는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너무 공격적이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스며드는 글이요. 그게 제 에세이의 다음 목표예요.

 

 

Q. 많이 들어보셨을 질문이지만, 글을 업으로 삼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제가 요즘 많이 하고 있는 고민이기도 해서요. 개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글을 찾게 되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자기표현의 욕구랄까 하는... 그래서 글이 필요한 상황을 맞닥뜨렸으면서도 동시에 글이 꼴도 보기 싫을 때, 나의 세계를 마음 놓고 파헤칠 수 없게 되어버릴까봐 두려워요.

 

A. 제 경우는 살짝 도망칠 구석이 있는 게, 좋아하는 글쓰기와 직업으로서의 글쓰기는 느낌이 다르거든요. 기사는 일단 제 얘기가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성격의 글이다보니... 생각해보면 일기보단 기사를 쓰기 싫을 때가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기사 쓰기 싫을 때 에세이를 써요. 소재 자체가 일상에서 비롯하니까요. 취미로 쓰는 글과 일로 쓰는 글이 비슷한 결이라면 좀 더 어려운 문제일 수는 있겠네요. 다만 저는 일과 취미가 서로를 환기시켜줄 수 있는 케이스예요. 또 애초에 저는 누군가 제 글을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자 일이 잘 맞기도 하죠.

 

 

Q. 방금 이야기와 이어지는 질문인데, 슬럼프를 넘기는 방법이 있으세요? 글을 업으로 삼다 보면, 써야 하는 의무에 놓여 있지만 도저히 써낼 것이 없는 때가 오기도 하잖아요.

 

A. 어차피 일은 다 하기 싫어요.(웃음) 기자는 매일 송고를 해야 하니까, 싫어도 하루치는 해야죠. 그럴 땐 그냥 빨리 해치워 버리고, 하루치만 괴로워해요. 싫지만 해야 하는 건 오래 가지고 있을수록 힘들거든요. 오늘 좀 못 쓰면 내일 잘하면 되지. 내일 못해도 이번 달 안에는 괜찮은 기사를 쓸 수 있겠지. 이렇게 마음을 비워내요. 정말 안 될 땐 휴가를 내기도 해요. 예전에는 쉬는 날에 무조건 기록할 만한 일을 하고, 주변으로부터 잘 쉬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정말 말 그대로 집에서 쉬어요. 그렇게 환기를 하는 것 같아요.

 

 

Q. 앞서 에세이에서는 모든 일상이 소재가 된다는 답변을 듣고 또 생각났는데, 수빈 님은 일상 중에서도 특히 계절의 흐름에서 인사이트를 많이 얻으시는 것 같았어요. 따로 이유가 있으신가요?

 

A. 여름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제 생일이 여름인데, 생일이 있어서 여름이 좋은 게 아니라 여름이 좋아서 제 생일도 좋아할 정도라고 한다면 설명이 되나요? 그래서 저는 여름을 중심으로 1년을 구분해요. 봄은 여름의 이전, 가을은 여름이 가고 있다는 증거, 겨울은 여름의 반대, 이렇게요. 어깨가 무거운 게 싫어서 겨울 옷을 싫어하는데, 추위를 피하려고 껴입다보면 그 무게감에서 오히려 여름을 떠올리는 식이에요. 사실 더위도 많이 타는데, 힘들어하면서도 여름이라는 계절 자체를 너무 좋아해요. 그중에서도 특히 초여름을 제일 좋아하는데요, 연두색 순, 진초록으로 변한 이파리가 모두 보이는 시기라서예요. 한 나무에서도 변화가 보여요. 그렇게 충만한 색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Q. 좋아하는 것들... 역시 그게 제일 많은 생각을 촉발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수빈 님이 글을 쓰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 무엇인지도 들어보고 싶어요.

 

A. 퇴고요. 지금은 많이 고쳤지만, 사실 퇴고를 정말 안 하는 편이긴 해요. 퇴고를 피하게 되는 건 귀찮아서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무서워서예요. 쓴 글을 다시 읽는 것 자체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거든요. 창피한 것도 있고요. 퇴고를 할 땐 그만큼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서,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글을 썼느냐를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퇴고를 할 수 있을 만큼 애정을 담은 글인지를요. 그리고 그렇게 아끼는 글들만 아트인사이트에 올라가요. 또... 아까 에세이는 마무리 짓기가 어렵다고 하셨잖아요. 처음에는 저도 에세이가 교훈을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고민을 좀 했어요. 마지막 결론을 향해 글이 힘있게 달려가는 느낌을 주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면 계속 글을 폐기하다보니까 잘 안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그런 완결성에 대한 부담을 내려놓았어요. 덧붙여 저는 메모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에요. 평소에 메모를 잔뜩 해두었다가, 그걸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쓸 때 꺼내들어요. 글을 쓰고 나면 첫 문장이나 제목에 착안점이 되었던 메모를 덧붙여서, 이목을 끌죠. 사람들은 첫 문장이 별로면 글을 안 읽거든요.

 

 

Q. 그렇다면 그렇게 써내린 글을 통해 무엇을 담아내려 하시나요? 또,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A.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내는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사람이고, 당신들이 다르게 보고 있는 부분도 있을 수 있어, 하고 이야기를 해요. 제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있고, 사람들이 저를 보고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사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글을 쓰는 거죠. 물론 저를 온전히 다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제가 가진 여러 모습 중에서 바깥에 보이고 싶어하는 부분을 계속 글에 녹여내려 해요. 일정하지는 않은데, 대략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나'를 주제로 글을 써요. 내가 나를 잃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요. 덧붙여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이라고 한다면... 더 많이 읽히는 글이요. 내 이름으로 쓰인 글들이 다 저를 가리키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깊게, 많이 읽히는 글. '한 사람에게 많이'여도 괜찮으니, 많이 읽히는 글.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Q. 좋아하는 것들부터 글에 대한 이야기까지, 지금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제가 애호하는 분의 글쓰기 세계가 이런 것들로 이루어졌구나를 실감하는 시간이라 정말 즐거웠는데요, 마지막으로 오늘 인터뷰에 대한 수빈 님의 소감을 여쭤봐도 될까요?

 

A. 항상 인터뷰를 하면 질문을 건네는 입장이었지, 이렇게 저와 제 글에 대해 질문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요.답을 하면서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했던 말들이 나오더라고요. 사람들이 인터뷰 당하는 걸 좋아하는 이유이자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인 것 같아요. 즉석에서 말을 하면 기본적으로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 튀어나오니까요.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를 새삼 깨달은 시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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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과 초여름 그 사이 어드메, 카페 안에 크게 나 있는 통창으로는 슬금슬금 돋아나기 시작한 울창함이 잘 보였다. 저 잎들이 더욱 무성해질 때쯤이면, 여름을 사랑하는 어느 컬쳐리스트의 글은 또 어떤 마음들을 담아내고 있을까. 그런 기대감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어떤 글에서 존재의 양감을 느끼게 되면 그를 결코 무심히 지나칠 수 없게 되는 감각. 그렇게 마음의 방을 또 한 번 넓혀가는 일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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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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