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처음 느껴보는 '판소리'의 미감, 우아함과 세련됨 - 대접전: 춘향가 고른 대목 [공연]

글 입력 2024.05.0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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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momuro_salon 인스타그램

 

 

<대접전: 춘향가 고른 대목>은 국립창극단 소속 소리꾼 민은경과 판탈롱스, 모므로살롱이 합심하여 개최한 공연이다. 5월 4일과 5일 양일간 서울숲 모므로살롱에서 진행된 이 공연은 김세종제 춘향가에서 몇 대목을 뽑아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김세종제 춘향가는 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짧고, 이별하는 구간은 굉장히 길게 구성된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4일 공연에서는 초입부터 ‘사랑가’ 대목까지, 5일 공연에서는 ‘이별가’부터 ‘갈까부다’ 대목까지 소리가 진행되었다. 소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이수자인 민은경이, 고수는 전계열, 구성 및 연출은 임영욱, 협력연출은 박영숙이 맡았다. 필자는 5일 공연을 관람했다.


본 공연이 진행된 공간인 모므로살롱은 작고 아늑한 카페였다. 계단을 올라 카페에 들어서자, 원형 공간(무대)을 중심으로 좌석이 배치되어 있었고, 민은경의 소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티켓값이 포함된 음료를 한 잔 시켜, 비어 있는 자리에 자유로이 착석했다. 곧이어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소리가 열릴 이 판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게 되었다. 공연장에서 공연을 기다리기 전 맴도는 긴장감과 설렘이 아닌, 사람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분위기가 공간을 가득 채우며 담소의 장이 펼쳐졌다. 50명의 관객으로 판이 꽉 찬 후, 시간이 되자 공연이 시작되었다. 관객의 성비는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연령은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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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자리에 앉아 북을 치기 시작했고, 민은경은 신을 전시되어 있던 신발로 갈아 신고, 자신의 부채와 공기 중에 향수를 뿌려, 공간 전체에 향이 물들게 했다. 그가 향수를 뿌린 직후 퍼진 향기는 공기 중으로 퍼져 ‘민은경’이라는 사람을, 청각이 아닌 후각으로서 먼저 그를 만나게 했고 이는 개인적으로 독특한 경험이자 공연의 시작이었다.


공연은 바로 춘향가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 ‘광대가’로 시작했다. 광대가는 조선 말기 신재효가 지은 단편가사로 본격적으로 판소리를 부르기 전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단가(短歌)의 사설이다. 광대 판소리에 대한 미학적 이론을 제시한 유일한 가사로, 인물치례, 사설치례, 득음, 너름새와 같이 광대가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여러 단가가 있지만, 오늘 공연의 내용의 주 내용이 춘향이 이몽룡과 이별하는 슬픈 대목인 만큼 소리꾼은 시작은 활기차고 즐겁게 시작하여 분위기를 살리는 재치를 발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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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momuro_salon 인스타그램

 

 

이 공연이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무대가 아닌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공간에서, ‘판에서 하는 소리’를 뜻하는 ‘판소리’라는 말 그대로 공연이 진행되었다는 점일 듯싶다. 지금까지 필자도 몇 차례 판소리 공연을 관람했지만 모두 프로시니엄 극장에서 경험한 것이었고, 소리꾼이 제4의 벽을 깨고, 관객과 소통하기는 하지만, 그 소통의 거리가 다소 멀었다. 그러나 본 공연에서는 객석과 무대라는 공간의 경계가 와해되어, 소리꾼과 관객이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맞추었으며, 소리꾼과 관객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웠다. 소리꾼은 관객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갔으며, 관객 또한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공연은 소리꾼이 혼자 이끌어가는 것이 아닌, ‘소리꾼과 관객이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 되었다.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추임새를 넣어 극을 보다 풍부하게 만들었다. 특히, 신임 사또가 부임해서 여러 기생들을 소개하고, 이들이 나오는 대목에서 소리꾼이 몇몇 관객을 꼬집었는데, 이때 선택된 관객들 모두가 추임새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몸짓을 활용한 추임새까지 하며 이미 모든 이가 하나가 되는 시공간이 형성되었다. “일청중(一聽衆), 이고수(二鼓手), 삼명창(三名唱)”이라는 말이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서양 음악극에 익숙한 필자에게는 ― 이 말은 곧 반응을 거의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공연을 보는 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 이렇게 연희자와 관객 간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고, 모두가 편하게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는 시간은 퍽 낯설면서도 귀했다. 더불어 민은경의 소리는 너무나도 간드러지면서 우아했으며, 동시에 테크닉적으로도 완벽했다. 특히, 그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소리와 기교가 이 한편의 서사를 이끌어가는 데 있어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여기에 너무나도 청량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전계열 고수의 북소리가 청각적 즐거움을 배로 향상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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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의 대중화를 위해 여러 소리꾼이 여러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이 속에서 판소리의 색채는 전통보다는 현대적 각색의 방향에 초점이 맞추어져 변모하고 있다. 판소리는 서민들의 예술에서 시작했고 당대 사회와 공명하며 사회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던 예술 장르인 만큼, 이러한 판소리의 변화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현대에 창작된 판소리의 경우 전통 판소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리듬이 빠르고 강렬한 인상을 내비치곤 한다. 그렇기에 현대 판소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전통 판소리를 듣게 되면 다소 지루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필자 또한 전통 판소리가 조금은 고루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한자어로 인해 접근 장벽이 높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렇게 ‘판’에서 하는 진정한 판소리는 비록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관객의 적극적인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어냈고, 평소에는 잘 드러내지 않던 날 것의 감정을 표현하게 했다. 더불어 판소리의 진정한 미감이 분명히 드러났다. 판소리는 고루하고 따분한 것이 아닌, 마치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의 이미지처럼,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것이다.

 

 

[김소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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