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언어의 바깥 -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 [공연]

글 입력 2024.05.05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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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그러니까 친구와 애인 외의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때, 나와 친구들은 서로 ‘설명할 수 있는 사이’인 것을 친밀함의 증명으로 여겼다. 우리 모두 자기에게 벌어진 별의별 사건들을 빈틈없이 공유했으며, 들은 이는 그 이야기를 토대로 상대의 성향을 발견해 주려 노력했다. 이 시기, 한 친구는 ‘기선이는 이런 편이야’라고 말하며 나 자신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하고 있는 스스로에, 그리고 이렇게 설명할 수 있는 가까운 관계임에, 도취되곤 했다. 나 역시 그것이 우리가 ‘정말’ 친하다는 증거라고 믿었다.


명료하게 표현하는 것들이 좋았다. 나를 설명해 주는 친구들의 말이 좋았고, 삶의 정수를 언어로 적확하게 꼬집는 책이 좋았다. 글을 직접 쓸 때는 삶을 재창조하는 전능감으로 간간히 짜릿했고, 명확하고도 아름다운 문장을 읽을 때는 미간이 팍 찌푸려질 정도로 자주 경이로웠다.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뭉뚱그려진 생각에 언어라는 실체를 부여한다는 건, 멀리 아득해 보이지 않던 것을 손에 쥐고 자세히 살펴볼 수 있게 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이제 무언가를 설명하는 행위가 가끔 족쇄처럼 느껴진다. 설명은 언어를 통해 그것을 가장 납작하게 만드는 일은 아닐까. 설명은 명료한 친밀함이 아니라 오만한 게으름은 아닐까. 지금의 난 설명할 수 있는 오랜 관계뿐 아니라 '이해한다'는 말도 섣부를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언어로 설명하는 문화예술인 책뿐 아니라 다만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전시 혹은 음악을 즐긴다. 언어가 주는 또렷함에 이끌려 플랫폼에 글을 기고하고 개인적으로 글을 쓰며 생업으로도 글을 다루고 있지만, 언어의 바깥에 존재하는 ‘말로 온전히 반영할 수 없는 영역’의 매력도 모르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 생긴 취미 중 하나는 클래식이다. 어떤 가사도 마음을 대변하지 못하는 날, 연주에만 집중할 수 있는 클래식을 통해 순수하게 감정을 방출한 경험 이후 종종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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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쇼팽 그리고 올라퍼 아르날즈>는 19세기 음악가 쇼팽과 드러머 출신 아이슬란드 작곡가 올라퍼 아르날즈의 곡이 번갈아 연주되는 공연이었다. 쇼팽은 그나마 유튜브로 무대 영상을 감상해 왔기에 익숙한 음악가였지만 올라퍼 아르날즈는 생소했다. 공연팜플렛으로 힌트라도 얻어보려 했지만 마침 공연팜플렛도 똑 떨어졌단다. 결국 난 다른 행성에 온 사람처럼 벙찐 상태로 아무 설명도 없이 공연을 맞이했다.


역시 클래식은 익숙한 언어는 아니었다. 무슨 곡인지도 모르는 채 진행되는 연주를 들으며 이 공연을 리뷰에서 어떻게 이야기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이 머릿 속에 가득 차자 공연에 몰입할 수가 없었고, 2부부터는 리뷰에서 무언가를 설명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고 오직 연주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곡 중 하나는 Chopin - Nocturne No. 20이다. 이 곡은 피아노의 매력을 백분 체감하게 해준 음악이었는데, 부지런히 오르내리는 열 손가락이 누르는 음계의 흐름에 따라, 점차 커지고 작아지는 소리의 강약에 따라, 시시때때로 분위기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때로는 내면에 침잠하고 싶어 눈을 감아버리게 되는 묵직한 어두움을, 때로는 다른 관객이나 연주자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살며시 눈을 뜨게 하는 여리고 서정적인 감각을 동시에 지닌 곡이었다. 상반되는 감정이 한 번에 촉발되는 경험은 설명이 직접적인 가사있는 음악으로는 쉽게 느낄 수 없다. 가사가 특정 상황으로 음악을 몰고가기 때문이다.


공연 며칠 후, 책 <아무튼, 클래식>을 읽었다. 책의 작가는 클래식을 전공했던 사람으로 현악기, 화음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개인 오피니언을 전개했다. 안타깝게 나는 아직 음악의 흐름과 개인적인 내면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클래식에 있어서 난 아직도 철저히 이방인인 것이다. 그런데 어쩌면 이방인인 내가 되려 음악의 배경, 구성, 해석 따위를 몰랐기에 클래식 음악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잘 모르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 규정되지 않은 상태의 스스로가 더욱 자유로운 것처럼, 클래식의 세계도 그렇게 언어의 바깥에서 설명하지 않는 모호함으로 내게 진정 문화 자체를 향유하는 자유를 선사한다.

 

 

 

전문필진 명함.jpg

 

 

[권기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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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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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월드를창조한그는전설이다
    • 좋은 글 정독했습니다.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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