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아이들은 자란다 - 아무도 모른다 [영화]

글 입력 2024.05.23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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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사람들이 있다. 무엇에도 동요되지 않은 채, 물이 바람을 따라 그저 그윽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차분하고 평온한 이들. 어렸을 땐 그들의 담담함을 닮고 싶었다. 무언가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휘둘리지 않는 차분함을 지니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누군가의 담담함이 부럽지만은 않다. 오히려 그 담담함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일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태연하게 말하는 모습이 나를 아프게 한다. 담담해지기까지, 그들이 겪어야만 했던 슬픈 시간들 때문이다.


얼마나 많이 울었으면,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을까. 얼마나 슬프고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기에 고통에 무뎌진 걸까. 세차게 쏟아지던 비가 그친 후에야 떠오르는 맑고 푸르른 하늘처럼, 담담함은 삶의 거대한 돌풍이 휩쓸고 지나간 후에 남은 흔적일 수 있다. 담담한 누군가의 모습이, 울분을 터뜨리고 눈물을 흘리는 누군가의 모습보다 더 가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보는 일이 힘들었던 이유는 이 영화가 지닌 그런 담담함 때문이다. 느리고 잔잔하게,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 아이들의 삶이 펼쳐진다. 그럴싸한 중심 사건 없이, 격정적이고 감정적인 장면 없이, 이 영화는 그저 아이들의 삶을 담은 장면으로 흘러갈 뿐이다. 부모에게서, 세상에서 버림받은 아이들은 응당 분노하고, 울분을 터뜨리고, 엉엉 울고, 소리쳐야 하는 그 상황에서, 그저 담담하게 삶을 살아간다. 기다림과 무관심이 이들에게 너무 익숙한 탓이다.


영화는 도쿄의 한 작은 아파트로 이사 온 엄마와 아들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아이 있는 집이 으레 그렇듯, 시끄럽고 골치 아픈 일이 생길까 염려하는 이웃에게 엄마 케이코는 그럴 일이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어른스럽고 공부도 잘하는 자기 아들 아키라가 문제를 일으킬 리가 없다고. 그녀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 옆에 서 있는 아키라는 나이에 비해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이다.


평범해 보이는 가족, 하지만 이들에게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있다. 바로 숨겨진 아이가 셋이나 있다는 것. 그들의 이삿짐 캐리어에서 셋째 시게루, 넷째 유키가 등장하고, 어두운 밤 아키라가 밖에서 몰래 둘째 교코를 데려온다. 케이코의 네 아이들은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다. 네 아이들 모두 학교에 갈 수 없고, 첫째 아키라를 제외하고는 외출도 금지돼 있다. 이사 온 첫날, 교코, 시게루, 유키에게 적용되는 규칙은 시끄럽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밖에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베란다에 나가는 것도 빨래를 해야 하는 교코에게만 허용된다.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베란다에 떨어뜨린 시게루는, 그것을 주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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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일을 하러 나간 사이 집안 살림을 책임지고 동생들을 돌보는 건 장남, 12살의 아키라다. 그는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한다. 편식하는 동생을 꾸짖는 것도 그의 몫이다. 밤늦게 술 냄새를 풍기며 집에 돌아온 엄마 케이코는 아키라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그와 결혼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시큰둥해 보이는 아키라, 그는 이런 상황이 너무나 익숙해 보인다. 철없는 엄마의 푸념을 들어주고, 그에게서 어떤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어린 동생들을 챙겨야 하는 아키라의 삶의 무게는 12살 어린이가 견디기에는 너무나 가혹하다.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고백 이후, 엄마 케이코는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 아키라에게 약간의 돈과,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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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이후 아이들의 삶을 담담히 쫓는다. 시간이 흘러 집은 엉망이 되고, 아이들도 점점 지쳐간다. 전기세, 수도세 고지서를 받아 들고 이를 처리하던 어른스럽던 아키라. 하지만 엄마가 준 돈이 떨어지자 집에 전기와 수도가 끊긴다. 아이들은 동네 놀이터에 있는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오고, 공원 화장실을 이용하고, 여름날 찌는 듯한 더위를 피할 길 없는 집안에서 땀을 흘리며 무력하게 앉아 있다. 교코가 좋아하던 장난감 피아노는, 아무리 쳐도 더 이상 소리가 나지 않는다. 엄마가 남긴 몇 되지 않는 돈으로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하던 아키라는 이제 편의점 폐기 음식을 받아 와 동생들과 끼니를 해결한다. 제대로 씻지 못한 아이들의 얼굴은 지저분해지고, 제대로 빨지 못한 이들의 옷은 너덜너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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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아이들의 삶을 그려낸 이 영화는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든다. 담담히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평화로운 장면이 도리어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다 보면, 이상하게도 감사한 마음이 떠오른다. 영화가 아이들을 방치한 자격 없는 부모를 질책하기보다, 이 아이들의 성장에 더 집중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강하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라난다. 자신들을 버린 엄마, 전기와 수도가 끊겨 더 이상 ‘집’이라 말할 수 없는 집, 자신들을 구해주지 않는 주변 어른들. 아이들은 자신들의 잘못에서 비롯되지도, 그렇다고 자신들의 힘으로 변화시킬 수도 없는 무력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며 나름대로 살길을 찾는다.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그렇게 끝내 살아남은 아이들은 남들보다 더 빨리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놀이터 하수구에 놓인 꽃. “누가 버렸나 봐.”, “불쌍해.” 아이들이 저마다 말한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꽃과 흙, 물을 가져와 컵라면 용기에 꽃을 옮겨 심는다. 물을 주고, 햇빛도 보게 하면서 정성스럽게 꽃을 키운다.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고, ‘누군가 버린 것 같은’ 꽃은 아이들의 처지와 같다. 그러나 아이들은 어른들과 달리, 그 꽃을 지나치고, 외면하지 않고 그것을 가져와 정성껏 돌본다.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꽃을 되살리고 키워가며 그들은 희망을 본다.


따돌림을 당해 학교에 가지 않는 사키의 외로운 마음을 알아봐 준 것도 사키와 같이 외로운 네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사키와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기도 하고, 그들의 집에서 사키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렇게 그들은 아무도 위로해 주지 않는 서로의 외로움을 치유한다.


새로운 생명을 키워내고, 기댈 곳 없는 서로의 외로움을 위로하며 아이들은 자란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이 세상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할, 삶에서 어른을 만나지 못했던 아이들의 쓰라린 성장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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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른다’는 영화 제목처럼, 아이들의 상황을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 않으니 당국은 아이들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아이들은 그들의 상황을 알아차리고 도와줄 어른을 만날 기회조차 없다. 있지만 없는 아이들. 수많은 어른들은 이들을 그저 지나쳐 버린다. 오랫동안 씻지 못한 것 같은 얼굴에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편의점에서 폐기되는 음식을 받아 가는데도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않는다. 어린아이들만 남겨진 엉망인 집안과, ‘엄마는 곧 오실 것’이라 둘러대는 아이들의 대답을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어른들이 아이들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이고, 무언가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거두고, 아이들의 학대 상황을 나와는 관계없다고 단정 짓는 그 무책임함을 떨쳐냈다면 어땠을까. 아이들은 하루라도 더 빨리 구조되어, 안전하고 정상적인 환경에서 보호받으며 자랄 수 있었을 것이다.


영화 후반부, 유키는 의자에서 떨어져 의식을 잃는다. 도움을 청할 어른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아이들은 죽어가는 유키를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키라는 이사 올 때 유키가 갇혀 있던 캐리어에 유키의 시신을 넣는다. 언젠가 유키에게 비행기를 보여주리라 약속했던 아키라는 사키의 도움을 받아 유키의 시신을 공항 근처에 묻는다. 유키를 묻기 위해 지하철을 타러 가는 아키라와 사키는 유키의 시신이 담긴 그 무거운 캐리어를 위태롭게 지탱하며 계단을 내려간다. 하지만 그들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없다. 그들이 내려가는 계단의 반대편에는 역을 빠져나가는 수많은 사람의 행렬이 이어진다. 아키라와 사키만이 있는, 두 아이가 힘겹게 캐리어를 옮기며 내려가는 그 휑한 계단과, 주변을 둘러볼 여유조차 없어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며 올라가는 반대편 계단의 모습이 대비된다. 이 두 아이가 어떤 일을 겪었고, 지금 무엇을 하러 가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 수많은 사람 중 누구도 그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무언가를 물어보지 않는다. 그저 지나칠 뿐이다.


아침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게 된 아키라와 사키. 그들은 울지도, 화내지도 않는다. 그들은 피곤하다. 그리고, 자신을 이루는 무언가가 사라진 것처럼 공허해 보인다. 다른 아이들도 유키의 죽음 앞에 담담하다.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내놓은 의문은 단 하나. ‘이제 더 이상 유키를 못 보는 거지?’


아이들에게 주어진 현실이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그러한 현실을 담담하게 그려내듯, 아이들 역시 그저 담담하게 자신들의 일상을 살아간다. 늘 그래왔듯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아키라, 사키, 교코, 시게루가 줄지어 걸어가는 뒷모습으로, 이 영화는 끝이 난다. 아이들은 이후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어른으로 컸을까. 부디 영화 내내 아이들이 보여줬던 강인함과 덤덤함으로,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었던 그 나날들로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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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무심히 지나쳤던 그 어른들과 나는 다를 수 있을까. 내가 지금껏 스쳐 지나왔던 무수히 많은 아이 중 아키라가, 사키가, 교코가, 시게루가, 유키가 있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이들의 표정을 더 유심히 살피고, 우연히 만나는 아이들이 어떤 삶을 짊어지고 사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해하는, 조금 더 귀찮고 번거로운 삶을 살리라 다짐하게 된다. 아이들이 살아가는, 또 앞으로 살아갈 그 세상이 그들의 고통과 괴로움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냉혹하고 잔인한 곳이 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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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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