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뇌 빼고’ 감상하라구요? 얼마나, 어디까지요? #1 [만화]

글 입력 2023.12.03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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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가 저물고 있다. 더이상 개그 프로그램을 밀어주는 방송사는 없다. 매주 일요일 밤을 책임졌던 개그콘서트조차 점차 늦은 밤으로 편성되더니 결국 사라졌다. 매일 밤 거실에 모여 앉아 시트콤을 보던 시절도 이젠 다 옛말이다. 그렇게 서서히, 매일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개그 콘텐츠는 죽어가고 있다.

 

웹툰도 마찬가지다. 가장 큰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 웹툰’만 하더라도 2010년대까지는 다양한 개그 웹툰들이 활개쳤다. 초창기 웹툰 <정글고>, <마음의 소리>, <와라 편의점>부터 <놓지마 정신줄>, <이말년씨리즈>, <웃지 않는 개그반>등 까지… 웹툰을 잘 모르는 사람도 알 법한 소위 ‘간판’ 웹툰에서 개그가 차지하는 비율은 무지막지했다.

 

그런 점에서 네이버 웹툰의 ‘ㅋㅋ단편.zip’ 공모전은 가벼운 개그 웹툰을 기다려오던 웹툰 팬들에게 희소식이었다. 개그 장르에만 국한해서 기성/신인 작가들을 가리지 않고 공모받았다는 점에서 더 새롭고 참신한 개그 웹툰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총 29개의 작품이 공개되었다. 모두 각기 다른 강점을 쥐고 각자만의 스타일로 웃음을 주는 좋은 작품들이다. 그 중 두 가지의 작품에 대해 두 주에 걸쳐 얘기해보고자 한다.

 

 

 

웃긴데 왜 눈물이 나죠, <만화가가 편한 세상>


 

나는 만화가가 아니고, 되어본 적도 없지만 나의 공감능력을 최대한 끄집어내 생각해봤다. “다음 화 내놔”라는 말이 만화가에게는 더 없이 좋은 칭찬이겠지만 또 한편으론 얼마나 그를 숨 막히고 부담스럽게 할까. 비단 다음 화도 재미있게 뽑아내야 한다는 작품성에 대한 부담뿐이 아닐 것이다. 그저 목표한 분량을 창작해내고 할당량을 채우는 행위 자체가 상당한 노고일 텐데, 그 사이클을 일주일로 잡고 돌린다면 생활이 얼마나 피폐해지겠는가. 또 그렇게 어렵사리 탄생한 작품이 매주 수만 명의 독자들에 의해 평가받고 10점 만점의 숫자로 환산된다면, 스토리에서 자유로운 ‘내 삶’이라는 것을 완결 전에 누릴 수야 있겠는가.

 

<만화가가 편한 세상>은 이러한 만화계의 현실을 개그를 통해 날카롭게 풍자한다. 작금의 웹툰 업계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을 만화 속 캐릭터가 만화 밖으로 탈출하는 서사를 통해서 말이다. 작품 속 이름 없는 남자와 여자는 모종의 이유로 웹툰 밖 세상으로의 도피를 꿈꾼다. 이런저런 방해공작을 통과해 겨우 도달한 세상은 만화가의 방. 어둡고 칙칙하다. 이윽고 만화가의 뒷모습과 함께 그의 한탄이 들려온다. 마감에 대한 부담, 숙면에 대한 갈증, 악플에 대한 두려움… 울음을 터뜨리고 마는 만화가를 보며 만화 캐릭터들은 다시 들어가자는 대화를 나누며 작품이 마무리된다.

 

실제로 대한민국 웹툰 산업의 노동 현실은 처참하다. 세상 모든 작가가 네이버와 같은 대형 플랫폼과 계약한 것도 아니고, 대형 플랫폼과 계약했다고 해서 소위 ‘워라벨’이 잘 갖추어진 작가는 정말 드물다. 상당수의 작가가 손목, 손가락, 안구 질환을 겪으며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올해 발표한 '웹툰 작가 건강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작가들은 평균적으로 주당 5.7일, 총 51시간을 근무한다. 건강 문제로 쉰 경험은 25.7%, 건강문제가 있지만 참고 일한 경험은 40.7%에 달했다. 만화 대국 일본에서는 거장이 건강상의 문제로 은퇴하거나 심지어 돌연사한 예도 존재한다. 다크판타지 장르의 걸작 <베르세르크>의 작가, 미우라 켄타로가 대표적이다.

 

그럼 이성적으로 따져보자. 그래, 만화계의 노동 환경에는 개선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웹툰 작가들의 건강 상태에 관한 조사들만 봐도 그 필요성을 여실히 느낀다. 그런데, 그래서. 나랑은 무슨 상관인데? 이것이 가장 흔한 반응이지 않을까. 콘텐츠를 즐긴다고 해서 무대 뒤에서 누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꼭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개그 만화란 주로 생각 없이 읽고 싶을 때 찾는 장르니까.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뇌를 빼고’ 콘텐츠 그 자체만을 즐기고 싶은 독자가 족히 태반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개그 만화의 독자들에게 <만화가가 편한 세상>은 경각심을 심어주었다.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제4의 벽’을 깨는 방식으로 말이다.

 

‘제4의 벽’은 연극이론에서 처음 사용된 용어로, 무대는 하나의 방이 되어야 하고, 여기에서 한쪽 벽은 관객이 볼 수 없게 제거된 것뿐이라는 개념이다. 따라서 배우들은 제4의 벽을 의식하지 않은 채 실제로 사방이 막힌 방에 있는 것처럼 연기할 수 있다. 연극에서는 무대, 영화에서는 영화 스크린이 될 것이고 웹툰에서는 전자기기의 스크린이 제4의 벽이 된다. 제4의 벽이 없는 듯 존재하는 배우/캐릭터와 달리 관객/독자는 제4의 벽을 인지한다. 저 무대 속, 저 스크린 속의 스토리는 허구의 스토리이며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로 인식하며 그 거리감을 유지한 채 관람한다.

 

그렇기에 제4의 벽이 깨지는 것은 그 분리된 두 세계가 일순간 통합되는 것이고, 나를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나와 전혀 무관한 저 캐릭터가 갑자기 나를 스토리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어두운 곳에서 은밀히 관음을 즐기다가 들키기라도 한 듯이 당혹스러운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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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개그 만화에서 제4의 벽을 깨려는 시도는 주로 그 자체가 개그 요소가 되는 경우였다. 이를테면 만화 캐릭터가 ‘작가’나 ‘연재’에 대해 언급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개그는 ‘ㅋㅋ단편.zip’ 다른 만화에서도 심심찮게 사용되었다. “그런 건 작가가 정하는 거야,” “작가: 내 맘이야” 라는 식의 대사로 말이다.

 

하지만 <만화가가 편한 세상>은 보다 당돌하다. 세계관 설정부터가 ‘만화가가 그리기 편한 세상’.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본인이 만화 속 인물임을 알고 있다. 그리고 만화가가 그리기 어려운 복잡한 조각/디자인을 창작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세계관 자체에 저항하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즉 이 작품은 애초부터 제4의 벽을 허물어버리며 시작하는 작품인 것이다.

 

결국 이들이 선택한 저항은 ‘제4의 벽’을 너머 웹툰 밖 세계로 탈출하는 것이다. 컷 밖의 세상을 가리키는 주인공은 독자를 응시한다. 다음 컷에서는 주인공의 손끝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그러니까, 컷 밖의 세상 바로 ‘너’ 말이야."라고 말하는 듯이. 결국, 만화가가 편한 세상이 만들어진 이유는 세계관 내의 감독자들도, 등장하진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어떤 권력집단도 아닌 바로 스크린 밖의 ‘나’라는 것이다. 내가 바로 이런 칙칙한 세계의 존재 이유인 동시에 이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한다. 화룡점정으로, 컷 밖의 세계에선 만화가가 마감과 댓글에 시달리며 울고 있다.

 

나는 이 만화를 읽고 난 후 별점도 댓글도 남기지 못했다. 독자이기 때문에. 소비자라는 이유로 그들의 일주일을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이 처음으로 잔인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즐기는 이 만화 뒤에, 그 백스테이지에서 갈리는 만화가를 처음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제4의 벽에 송송 구멍을 내 만화의 클리셰를 익살스럽게 꼬집는 듯이 시작했던 이 만화는 끝날 때쯤엔 나를 무대보다 더 깊숙하고 어두운 뒷면까지 끌고 갔다. 킥킥대며 빠르게 내리던 스크롤은 점차 무거워졌다. 그제서야 내 터치 몇 번의 무게를 실감했다.

 

빠르고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터넷 플랫폼의 이면에는 즉각적, 직접적으로 반응을 표출하고 찰나의 순간 만에 작품을 평가할 수 있게 되어버린 환경이 있다. 웹툰 산업의 확대와 기술적 발전의 이면에는 점차 더 높은 잣대를 들이미는 독자가 있었다. 그것들이 한데 뭉쳐 만화가의 목을 조르고, 결국 칙칙한 ‘만화가가 편한 세상’을 만들어 냈다.

 

이들의 노동환경과 나는 무관할 수 없다. 이들은 생산자이고 나는 소비자이지만, 동시에 이들은 창작자이고 나는 그들의 창작물을 사랑하는 팬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이제는 내가 사랑하는 콘텐츠 뒤에는 다른 누구도 아닌 ‘사람’이 있음을 절감했으니. 적어도 나는 무관할 수 없다. 창작자 없이는 내가 사랑하는 창작물도 없다. 이것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보다 진중한 터치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독자들의 변화가 선행된다면 작가의 노동환경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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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가 편한 세상>은 메시지-재미-연출 삼박자를 모두 잡은 균형 잡힌 한 끼 식사다.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연출적인 매력은 생략했지만, 주인공들이 제4의 벽을 넘어가는 연출은 특히 압권이니 꼭 한번 보길 바란다. 시선이 제한적인 세로형 만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참신한 파노라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각설하고, <만화가가 편한 세상>은 앞으로 개그 만화가 나아가야 하는 지향점을 보여준다. 지금의 개그만화는 저물어가지만, 사실 개그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풍자의 대상은 절대 줄지 않을 것이고, 웃음이 필요한 고된 일상은 늘어만 갈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어떤 고민으로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 개그만화도 진지해질 수 있고 영혼에 울림을 남길 수 있다. 원초적 개그로 무거운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가볍게 웃으며 감상하다가도 휴대폰을 끈 후에도 계속 떠오르는 여운 깊은 만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뇌 빼고 볼 수 있는 만화’라고 해서 작가도 정말 ‘뇌를 빼고’ 그리면 안 된다. 단순한 ‘병맛’ 개그도 실은 치밀한 계산과 숱한 고민을 거쳐 탄생한 것이며 최소한의 스토리,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뼈대와 기본기는 있어야 한다. 그건 가볍고 든든한 식사 대접에 있어 가장 필수적인 준비물이다. 작가조차 큰 고민 없이 그린 만화가 독자에게 어떤 웃음이나 줄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 원초적과 말초적은 전혀 다르며 쉬운 만화가 쉽게 만들어질 수는 절대 없음을 지금의 개그 만화는 마음속에 새겨야 할 시점이라 하겠다.


 

[박상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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