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흥미 기반 소비

기반?
글 입력 2024.05.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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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가 있기에 소비한다."

 

이 말은 당연했다.

 

흥미가 없으면 눈앞에 들이밀어도 선뜻 클릭하고 싶지 않은 것이 콘텐츠였다.

 

흥미롭지 않은 것을 소비하는 행위 자체가 귀찮지 않은가! 당장 할 일도 산더미고, 세상엔 재미있는 게 너무 많다. 재미뿐만 이랴, 나를 '있는 사람'처럼, 또는 나를 '교양 있는' 사람처럼 만들어주는 유익한 콘텐츠들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온다. 당장 유튜브를 키면, 어제 보았던 코미디 시리즈의 다음 편이 업로드되어 있고, 요즘 베스트셀러라던 책의 요약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 소비가 "흥미"에서 기인한 것이 맞는가? 우리는 "흥미"라는 말을 그 용어의 의미에 맞게 사용하고 있는가? 이 의문점이 발생하게 된 기저엔, 시장이 만들어낸 "아무렇지 않은" 스트리밍식 소비에 대한 자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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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are you from?


 

세계에 국적이 없어졌다. 이제 다국적이라는 말은 식상하고, 국적이란 말은 지루하다. "출신" 정도로 정리하는 것이 적절치 않을까. 안타깝게도 애국심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은 국산품만을 애용하지 않는다. 청년들 중 대다수가 아이폰을 사용한다. 넷플릭스의 시장 독점을 못 이기는 한국 토종 OTT들은 이제 서로 간의 통폐합 수순을 밟는다.

 

뭐,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콘텐츠가 경쟁력이 없다는 건 아니다. 한국 토속 신앙을 소재로 한 영화 "파묘"는 유수의 영화제로부터 초청을 받고 몇백만의 관람객을 동원하는 등 해외에서도 큰 흥행을 거두는 중이다. 그 말인즉슨, 공급과 수요가 더 이상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수직의 형태가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국적에 제한을 받지 않는 공급은 수요의 다양화를 이끌고, 수요가 다양해짐에 따라 공급되는 문화의 양과 질이 가파른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 콘텐츠 시장은 점점 더 현란해지고, 황홀해진다.

 

 

 

고개 들지 않는 사람들


 

여기서 우리가 자주 오해하는 것은, 그 다양하고 혼란한 콘텐츠 시장 속 우리가 소비하는 것들이 우리 수요에 의해 생산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망막 위를 스치는 수많은 영상들이 우리 자의에 의해 공급된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2020년대에 진입하고 AI 기반 알고리즘 시스템이 여러 플랫폼에 우후죽순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가끔은 우리 일상을 어떠한 CCTV가 찍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정말로 없었는가? 이전엔 수직적으로 공급되는 상품들을 추적하면 그 근원을 어느 정도 생각해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도 아니다. 국적이 없어진 세계에 더 이상 눈에 보이는 근원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화만 잘못 받아도 어딘지도 모를 해외의 피싱 단체로 개인정보가 넘어갔었다. 링크만 잘못 클릭해도 통장에서 돈이 빠져나갔었다. 다른 말로 하면, 조심하면 예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내 목소리를 한 사기범들이 부모님에게 돈을 보내달라 징징거린다. 내 얼굴을 합성한 영상이 돌아다닌다. 막으려 해도 막을 수 없는, 예방이 불가능한 사기와 범죄가 생겨난 것이다. 이는 개인 정보나 사생활에만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작곡가의 저작권, 가수의 목소리라는 재산, 미술가의 화풍, 댄서의 안무 등 누군가의 창작품과 재산이 "너무나도 쉽게" 도둑질을 당한다. 누가 만들어 냈는지 모를 정보들에 분별없이 접근하는 것이 "너무나도 쉽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도 고개를 들지 않는다. 자동으로 넘어가는 요약본, 알고리즘이 추천한 숏츠, 아무 내용 없는 릴스를 넘기느라 세상을 둘러보지 않는다. 누군가 만들어준 것들을 소비하느라, 내가 진짜 좋아할지도 모르는 수많은 "원전"들을 지나친다.

 

 

 

스펙터클(Spectacle)로서의 콘텐츠


 

프랑스의 사회학자인 기 드보르(G. Debord, 1931-1994)의 말에 따르면, 고도로 축적된 이미지는 자본이다. 그리고 그는 그러한 현상을 "스펙터클(Spectacle)"이라고 일컬었다. 미술 작품을 논할 때 주로 활용되곤 했던 이 용어는 이제 유튜브와 넷플릭스, 스마트폰과 인스타그램에 의해 과잉된 이미지, 말하자면 밈(Meme)과 숏츠로 둘러싸인 세상 속 우리 삶에 적용되기에도 큰 무리는 없다.


거대한 자본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대중을 현혹시키고 원전의 존재감을 소멸시킨다. 말이 조금 극단적으로 들리는데, 영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재료로서 원본을 가볍게 치부하고 있다. 수많은 편집본과 캡처본이 떠돌아다니고, 접한 적이 없는 것들을 알게 되는 것이 이상하지 않게 된 세상이다. 멋있고 근사한, 재미있고 "흥미로운" 콘텐츠들이 과연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제작되었는지. 우리 사회는 껍데기 속에 무슨 알맹이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이제 그만 화면에서 고개를 들고 시선을 순환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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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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