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 이토록 평범한 미래 [도서]

죽음과 모두가 꿈꾸었던 평범한 미래
글 입력 2024.02.15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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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인 일상을 견디기 위해 꾸준히 소설을 읽는다.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삶 속에서 새로운 경험과 자극을 얻고 싶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게 되면 압축적인 시간 속에서 다른 삶을 관찰해 볼 수 있고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특히 한국 소설을 좋아한다. 외국 소설은 정서적인 차이 때문에 온전히 몰입하기 힘들다. 정서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한국 소설을 읽으면 어느새 내가 주인공이 되어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사는 기분을 느낀다.


작년 말, 아트인사이트 모임을 하는 에디터분께 소설책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선물 받았다. 작가가 2014년부터 2022년까지 쓴 단편소설 8편을 묶은 책이다. 단편 소설 8편으로 구성이 되어있어서 부담 없이 읽기 편했다. 각 단편별로 시간과 공간을 가로지르며 나타나는 주제나 복선 등이 총 8편의 단편 영화를 본 것만 같은 인상적인 경험을 선사했다. 난해한 내용의 단편 또한 있었지만 저자가 이끄는 대로 조금씩 전진하다 보면 영화는 끝나있고 깊은 감상에 젖게 된다. 부모님께도 적극 추천할 정도로 뛰어난 몰입감을 선사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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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평범한 미래가 특히 인상 깊었던 이유는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양한 인물의 이야기로 세련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무겁고 거부감이 드는 ‘죽음’이라는 키워드를 자연스럽게 녹여내 죽음에 대해 곱씹으며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낭만적이게 제시한다.


8편 모두 훌륭했지만 그중에서 특히 꽂히는 단편이 있다. 바로 3번째 단편인 <진주의 결말>이다. 해당 단편에 꽂힌 이유는 '진실'과 '진심'이라는 키워드 때문이다. 주제 자체도 민감하면서도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존속상해치사죄와 방화 혐의, 총 2가지 혐의의 용의자로 지목된 ‘유진주’의 이야기로 구성된 소설이다.


유진주의 아버지의 죽음과 그녀의 집에서 일어난 방화 사건의 진실을 밝혀가는 내용이다. 진심이라는 단어를 부정하고 경계하며 사건의 진실에만 냉정히 몰두하는 범죄심리학 교수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점도 흥미로웠다. 대한민국 대표 사회, 종교, 미제사건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 탐사하는 저널리즘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의 취재 과정이 떠오르는 형식이다. 특히 평소에 고민하거나 회피했던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질문과 대답 형식의 구절들이 인상적이었다.

 

 

 

존속상해치사죄


 

국가를 불문하고 존속살해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범죄 중 하나로 꼽힌다. 모든 살인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중범죄이지만 그중에서도 친족을 살해한 뉴스가 주는 충격은 더하다. 존속살해 범죄는 최악의 범죄인만큼 살해가 일어난 배경에 모든 관심이 쏠린다. 도대체 왜 부모, 형제를 살해하게 된 것일까? 어쩌다가 그런 파멸적인 결말에 도달하게 되었을까?


뉴스에서 종종 존속살해와 같은 끔찍한 사건들을 볼 때마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불쾌한 감정이 올라온다. 술을 마시고 부모를 살해했다는 뉴스, 부부 싸움 중 격해지는 감정에 자녀를 창문 밖으로 던졌다는 충격적인 뉴스 등 인간이라 불릴 수 없는 사람들의 극악무도한 행위들을 볼 수록 인류애가 상실해 갔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가족을 살해하긴 했지만 무조건적인 비난의 여론이 만들어지지 않는 뉴스도 있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지적장애인 딸을 30년간 간병하다가 살해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유튜브 썸네일을 보고 누르기가 겁났다. 오만가지 감정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꽉 채울 것이기 때문이다. 머뭇거리다가 결국 누르게 되었고 딸을 살해한 어머니의 자책하는 인터뷰를 보고 설명할 수 없는 감정들이 솟구쳤다.


소설 속 ‘사건의 결말’ 제작진은 시청률을 위해 유진주의 아버지와 관련된 사건을 자극적이게 편집을 하였다. 유진주를 아버지를 살해한 딸로 어느 정도 기정 사실화 하고 물적, 심적 증거를 찾는데 혈안이 되었다.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를 찾기 위해 노트를 뒤지고 이웃의 증언들을 모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그녀에게 한 행위에 대한 심리적으로 잔인한 질문도 이어졌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벗어난 방향으로 전개가 되는 것으로 보였다.


 
"그 집에서 살 때, 이 이야기에도 결말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빠가 죽어야만 끝나는 그 이야기에서 저는 어떤 결말도 찾을 수가 없었어요. 아빠가 죽는다는 결말도 안 되니까요. 그러다가 어느 날, 제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야기가 끝나버렸어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책을 읽을 미래의 독자들을 위해 자세한 결말은 밝히지 않겠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아버지를 죽였든, 아니든 확실한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죽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는 점이다. 위의 구절을 보면 그녀는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죽어야 결말에 도달하지만 아버지가 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뒤가 맞지 않는 괴리감이 느껴지는 표현들과 함께 그녀가 느꼈을 고통들이 느껴졌다. 지적장애 딸을 30년간 간호하다 살해한 어머니의 머릿속에도 저런 형태의 참혹하게 슬픈 문장이 매일 채찍질하고 있지 않았을까?


 
"저는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입니다. 저는 혼돈 그 자체입니다. 카오스 그 자체예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습니다."
 


그녀는 본인을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 혼돈 그 자체라 표현했다. 본인조차 본인의 상태를 정의할 수 없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붕괴된 상태를 카오스라는 단어로 표현을 하였다. 아버지의 죽음에 있어서 그녀가 느꼈을 감정. 나는 그녀의 상황에 처해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온전히 이해를 할 수 없다. 오히려 이해라는 단어를 들이미는 것조차 기만이지 않을까.

 

 

 

방화


 

강렬한 이미지가 떠오른다. 방화를 하기 전의 유진주의 모습, 방화를 저지른 후의 유진주의 모습. 유리창을 깨고 소방관들이 들어왔을 때 자유를 느꼈다는 유진주의 말.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카오스와 같은 심리적인 상태에서 표출된, 사회통념상 절대 인정받을 수 없는 과격한 행위. 하지만 이런 그녀의 행위가 이해가 될 수도 있다는 모순적인 생각들을 끝없이 회피하려고 발악하는 나의 모습까지.


 
"그래서 저는 치매에 걸려 우연히 떠오른 생각을 의심조차 하지 않고 그대로 믿는 아빠의 마음을, 마치 치매에 걸린 것처럼 사전 경고도 없이 사람들의 운명을 바꾸는 신의 마음을 이해한 사람처럼 살아보기로 한 거예요. 그래서 불을 질렀습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어요. 이해만 있었죠. 소방관들이 우리 집의 유리창을 깨는 걸 보고 제 속이 얼마나 시원했게요. 가슴이 얼마나 벅차올랐게요. 저는 비로소 자유를 얻었거든요. 그 순간 전 모든 이야기로부터 자유로워진 거예요."
 


방화와 같은 범죄들도 뉴스에서 많이 다룬다. 대부분 '홧김'에 방화를 했다고 한다. 본인 이외의 다수의 사람들에게도 막심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중범죄로 취급을 받아야 한다. 그녀의 방화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녀의 행위를 ‘홧김’이라는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단어로 표현을 할 수 있을까? 자기 자신을 억압하던 상황들을 깨부수는 행위로 보아야 할까? 그녀의 행위를 과연 옹호할 수 있을까? 해방감이라는 표현이 주는 시원함. 해방감은 단어 자체가 아닌 전후 맥락을 통해서 담겨있는 의미가 증폭된다. 그녀의 벅찬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녀가 느꼈을 해방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저는 그런 아빠를 제가 만든 이야기로 바라보고 싶지 않았습니다. 치매에 걸려 불쌍한 노인이라는 이야기로 말이죠. 그래 놓고서 아빠를 이해했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그 혼돈 속으로, 그 카오스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습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아까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그녀의 표현을 살펴보면 타인을 이해한다는 표현은 기만이다.  소설 속에서 그녀의 말들을 보면 명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녀의 상황을 온전히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내뱉었던 진심들은 항상 이렇게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표현이었을 것이다. 외로움 속에서 피어나는 그녀의 진심을 듣고 이해를 시도하려는 사람들에 대해 속으로 끝없이 일침을 날렸을 것이다. 본인의 이야기를 그들만의 시선으로 편집 말라고 외쳤을 것이다. 단편 <진주의 결말>을 다 읽고 결국 나는 그녀의 진심을 끝까지 이해하고 싶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 유튜브에서 본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고, 마찬가지로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달을 향해 걷는 것처럼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이라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끝난 것으로 보이지만 유진주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건의 결말은 이미 드러났다. 결말이 나왔다는 것은 끝이 났다는 의미이다. 그녀는 지금도 달을 보고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도 아버지를 따라갈 것인가?

 

<진주의 결말> 이외에도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 수록된 단편들을 읽을수록 만약 각각의 단편들이 영화화된다면 어떤 영상미와 함께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 줄 수 있을지에 대한 달콤한 상상에 빠졌다. 소설은 과거,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시간을 바탕으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죽음이라는 키워드로 유한한 시간임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유한한 시간 속에서 인간이 영원히 실천하고 삶을 낙관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는 결국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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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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