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취향을 붙드는 유난의 여정

눈으로 즐기는 명분 없는 즐거움
글 입력 2024.03.05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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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대 머리맡의 텅 빈 벽이 허전해서 포스터를 하나 샀다. 이불 색깔과 방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고심하던 끝에 한 스웨덴 작가의 사진 작품을 골랐다. 그런데 포장을 뜯어 보니 액자 색깔이 예상치 못한 복병이었다. 적당한 우드톤이겠거니 싶어 고른 올리브색 액자는 실물로 보니 금색에 가까웠다. 액자의 소재가 알루미늄이라는 걸 간과한 게 문제였다. 금색 액자는 포스터 색감과도 따로 놀았고, 스틸 소재의 다른 가구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세로폭 1미터가 넘는 몸집 큰 액자 앞에서 고민을 거듭했다. 맞춤 제작 상품이라 교환이나 환불은 어차피 선택지 밖이고, 화방까지 가서 액자를 교체하자니 일이 커질 것 같고, 내버려 두자니 도무지 신경을 끌 자신이 없었다.


결국 포장을 뜯은 지 불과 10분 만에 거실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창고에서 페인트통과 붓을 꺼냈다. 바닥에 엎드린 채 액자틀 위로 번쩍이는 금빛이 매트한 흰색이 될 때까지 페인트를 덧바르다 보니 한 시간이 쥐도 새도 모르게 흘러갔다. 액자의 앞면과 옆면을 돌려 가며 붓자국이 남지 않게 얇게 칠하고, 적당히 말리고, 똑같이 덧칠하고, 다시 말리는 과정을 반복했다. 뻐근해진 목과 허리로 기계처럼 페인트칠을 하다 보니 평소라면 하지 않을 잡념들이 머릿속에 피어났다.


분명 평소에는 신중하다 못해 게으를 때가 더 많은 것 같은데, 난데없이 성급하게 구는 지금 같은 상황은 대체 뭘까. 상황마다 대처하는 방식이 제각각인 걸 보니 손쉽게 성격 탓을 하기엔 석연치 않았다. 좀 더 생각해 보니 지금껏 나는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새에 유독 까다롭게 굴었던 것 같았다.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접하든 외적으로 드러나는 요소들이 유독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눈으로 판단되는 정보에 촉을 세웠고, 점차 나를 표현하는 방식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고, 나아가 내 취향이 드러나는 사물에 집착하게 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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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이라는 단어로 표현했듯, 이런 성향은 미약한 강박처럼 작용해서 나에게 독이 될 때가 있었다. 남들 보기엔 사소한 일로 스스로 피곤하게 굴 때가 그랬다. 뭐가 됐건 나를 드러내는 물건을 고를 때마다 지나치게 시간을 쏟았다. 휴대폰 케이스나 지갑처럼 늘 지니고 다니는 물건일수록, 또는 접시나 벽시계처럼 한 번 사면 바꿀 일이 없는 물건일수록 만전을 기했다. 내 물건뿐 아니라 좋아하는 사람의 선물을 고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와 꼭 어울리는 아이템을 발견할 때까지 미간을 찌푸린 채 심각한 표정으로 몇 시간이고 온라인 쇼핑몰을 들여다봤다. 누군가가 소유하는 물건은 그 사람의 안목을 드러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이 생각은 물질이 사람을 대변한다는 속물적인 논리로 가지를 뻗고 자연스럽게 소비욕과 과시욕이라는 열매를 맺었는데, 딱히 가치 있는 과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손익을 따졌을 때 이런 성향이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순간도 있었다. 비단 사물을 소유하는 방법 말고도 내게는 눈으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만족의 역치가 남들보다 낮아서 긍정적인 자극을 쉽게 받을 수 있었다. 시야에 예민하다 보니 우연히 마주치는 기분 좋은 순간들도 금세 각인됐다. 자동재생 플레이리스트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음악이 찰나의 풍경을 완성할 때, 손톱에 칠해진 매니큐어 색깔이 오늘 입은 옷 색깔과 유독 잘 어울릴 때, 흡족하게 읽은 책이 마침 표지까지 예뻐서 선반에 잘 보이게 세워둘 때, 길을 걷다 우연히 피식 웃음이 나오는 포스터나 간판을 발견할 때처럼 설명하기에도 머쓱한 사소한 계기만으로 나는 쉽게 즐거워졌다.

 

하지만 이 유난이 득이 되는 순간을 생각하다가도 순간 회의감이 들었다. 디자이너도 아니고 크리에이터도 아니면서 이렇게 받은 영감을 어디에 쓸 건데? 뭐든 그저 누리는 데 그치는 향유자로서 아웃풋 없는 인풋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조금 무력해졌다. 하지만 생각의 키를 바로잡았다. 내가 직전에 쓴 글(공연 리뷰의 존재 이유를 주제로, 창작자와 관객 사이의 대화를 이끄는 주체적인 글쓰기에 대해 썼다 | [원문] )을 떠올리며, 상황은 다를지라도 생산자에 대응하는 소비자로서, 때로는 자극에 반응하는 응답자로서 이 또한 세상의 순리에 나름대로 필요한 역할이라고 정당화하기로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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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김에, 이런 삶을 이롭게 유지하기 위해 앞으로의 방향을 다잡기로 했다. 이 취미가 순수한 유희로 남으려면 민감한 동시에 둔감하게 굴어야겠다. 내 취향을 붙잡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바깥에서 밀려오는 자극에 그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확고함으로 무장해야 하겠다. 수많은 자극 가운데 내 취향이 되어 굳어진 울타리 안에 나 자신을 고립시켜야 한다. 그래야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억지 취향이나 구차한 의미 부여는 저 멀리 제쳐두고, 지금처럼 내 눈이 기뻐하는 것들만 충실히 붙잡을 수 있겠다.


작은 사색으로 채워진 짧지 않은 시간 끝에 비로소 흰색으로 바뀐 액자는 그제서야 방과 잘 어우러졌다. 유난스러운 이 시간이 내게는 그저 취미일 뿐이라는 걸 되새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뭐든 좋으면 좋은 거다. 내 공간을 완성해내는 이 귀찮은 시간 낭비가 내게는 즐거웠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성과를 내거나 가치를 부여하는 일적인 습관이 내 취미까지 방해할 이유는 없으니 그냥 마음 가는 대로만 하자. 앞으로도 내 취향을 미련하게 붙들고, 지금처럼 유난스럽게 재미있고 반짝이는 것들을 쫓으며 살자. 명분 없는 즐거움이 내 손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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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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