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삶이 기나긴 고통과 인내의 시간일지라도 -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 [공연]

글 입력 2024.05.3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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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게 가장 어렵다고들 한다. 아이러니다. 특별하지 않은,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것이 ‘평범함’인데, 그것에 도달하는 일이 어렵다니. 하지만 평범함을 평균으로 정의하면 그 말이 이해된다. 모든 표본을 더해서 그 수만큼 나눈 평균. 그러나 집단 내 모든 수치를 살펴보면, 막상 평균값과 동일하거나 가까운 값은 몇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 것처럼 우리는 어느 영역에서건 우리가 규정하는 평균값, 평범함과는 조금씩 동떨어진 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남들과는 다른, ‘비정상성’을 지닌 채,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하게 주어진 듯한 그 평범함을 동경하면서.


그리고 여기, 평범함과 멀어지다 못해 그 궤도에서 영영 이탈해 버린 가족이 있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다이애나와 그를 지킬 수도, 떠나버릴 수도 없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다이애나가 16년째 앓고 있는 병명은 조울증과 과대망상. 그는 이미 죽어버린 아들의 환상과 함께 살아간다. 그의 남편 댄과 딸 나탈리는 수십 년째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다이애나와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가 없다. 언제 어디서 분출될지 모르는 그의 이상 행동에 가족들은 늘 긴장돼 있다. 남편 댄은 늘 신경을 곤두선 채, ‘돌봐야 하는’ 존재인 다이애나가 버겁게 느껴지지만 그를 차마 떠나지 못한다. 이미 죽어버린 오빠에게서 벗어나지 못한 엄마. 그런 엄마에게 제대로 돌봄과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나탈리는 그의 집과 가족에 질린 지 오래다. 엄마인 다이애나는 물론이고, 아빠인 댄에게도 나탈리는 1순위였던 적이 없다. 나탈리는 집을 떠날 수 있는 날만을 고대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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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누구보다 외롭고 고통스러운 사람은 가족들을 괴롭게 하는 다이애나다. 16년째 정신과를 전전하며 약을 복용했지만 그의 증상은 여전하다. 끝을 알 수 없는 자신과의 싸움에 지쳐가고, ‘죽음이 나를 쫓아오는’ 기분이지만 그를 온전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녀가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외롭다고 느낄수록 그는 아들의 환영에 더 의존한다. 그리고 그가 벼랑 끝에 매달린 그 순간, 자신과 함께 있어달라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는다. 수차례의 자살 시도와 자해가 이어진다.


다이애나, 댄, 나탈리, 모든 등장인물들이 괴롭고, 고통스러워한다. 그들 모두 상처로 얼룩진 자신들의 삶이 억울하기도, 불쌍하기도 하다. 이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의 상처를 제대로 알아봐 주기를, 그래서 자신을 위로하고 구원해 주길 원한다. 그리고 서로가 그 누군가가 되어주길 바란다. 하지만 결코 그럴 수 없음에 그들은 또다시 상처받는다.


결국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은 우리 모두가 타인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고, 공감할 수 없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내가 지닌 고통과 상처 역시 누군가에게 온전히, 영영 이해받을 수가 없다. 설령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족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진정시키며 ‘당신이 아픈 걸 알고 있다’고 말하는 남편 댄에게 다이애나는 발끈한다. ‘당신이 아는 게 뭔데?’ 다이애나는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남편이 결코 이해할 수 없다고 소리친다. ‘꿈이나 꿔봤어, 이렇게 사는 기분?’ 누구보다 다이애나를 위하는 댄이지만, 그는 다이애나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일 수 없다. 자신을 파괴하는 이 아픔이 온전히 자신만의 몫이라는 것, 남편을 비롯한 그 누구도 자신이 아픔을 느끼는 것처럼 느끼지 못하리라는 사실이 다이애나를 더 괴롭게만 한다.

  

흥분하는 다이애나에게 남편 댄도 외친다. 자신도 아프다고. 하지만 견뎌내야 하는 고통이 너무 커서 자신을 잃어버린 다이애나에게 남편 댄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다이애나의 크나큰 상처와 아픔에 가려진 그의 상처 역시 꽤나 크고 오래된 것임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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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지닌 상처가 너무 큰 다이애나와 댄. 그들은 자신들의 상처에 아파하느라 나탈리의 외로움과 아픔에는 무관심하다. 어린 나이부터 너무 많은 것을 이해하고 견뎌야 했던 나탈리. 가장 가까운 부모에게 늘 뒷전이어야 했던 그는 자신을 ‘투명인간 소녀’라 지칭하며 이 집에서 나는 ‘없다’고 말한다. 평생을 외롭게 지냈던, 너무 많이 참아야 했던 그녀는 약물에 손을 대는 등 잠시 자신을 놓아버리기도 한다. 나탈리는 진심을 다해 말한다. 평범한 건 바라지도 않았다고. 그저 평범함의 옆, 그 언저리라면 무엇이든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가슴 한쪽이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이 밀려온다. 그러나 뮤지컬을 보다 보면 그 답답함이 그들 각자가 처한 상황보다도, 쉽사리 서로를 저버릴 수 없는 그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두가 원치 않았지만 서로의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됐고, 외면하고 저버리고 싶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서로를 떠나기에는, 그래서 서로의 삶에서 서로를 지우기에는 늦어버렸다. 결국 괴롭고 지쳐도 서로의 곁에 끝까지 남아있는 건 서로 뿐이라서, 무언가를 더 기대하고, 실망하고, 결국엔 서로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떠나지 못한다. 떠나지 못하는 건, ‘가족’이라는 의무와 책임이 우리를 옭아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결국 내 삶의 전부이기 때문이다.


댄은 극 내내 다이애나에게 말한다. 자신은 다이애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아픈 아내를 정성껏 보살피고 사랑하는 헌신적인 남편이다. 하지만 댄이 다이애나를 떠나지 않는 것은 그녀를 향한 사랑 때문만은 아니다. 다이애나와 함께한, 그의 생애 대부분의 날들에 대한 애착 때문이다. 댄은 아들이 죽기 전, 다이애나가 정신질환을 앓기 전 행복했던 나날들을 그리워하고, 그 행복을 어떻게든 되찾고 싶어 한다. 결국 다이애나와 함께했던 그의 삶은 찰나의 행복과 지난한 고통과 괴로움, 인내의 시간들이었다. 하지만 고통으로 점철된 그 시간들이 그의 삶의 전부이기에, 그는 그것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떠나올 수가 없다.


결국 삶을 살아간다는 건 지난한 고통을 견뎌내고, 기나긴 어둠을 헤쳐 나가는 일과 같다고, 이 뮤지컬을 보는 내내 생각했다. 아픔에서 멀어지고, 고통을 떨쳐내고, 나를 괴롭게 하는 것들과 이별하는 일조차도 우리를 힘들게 하고, 결국엔 다치게 하고 마니까. 하지만 이 뮤지컬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희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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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 길었던 다이애나의 치료. 치료 덕분에 그녀는 안정을 찾지만 동시에 기억을 잃게 된다. 2막은 자신의 기억을 되짚어가는 다이애나의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꼈던 그녀는, 결국 아들의 존재를 기억해 낸다. 아들의 존재를 그저 지워버리기에 급급한 남편과 달리 그녀는 아들을 기억하고 추억하려 한다. 아들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아들을 자기 멋대로 왜곡해 왔던 다이애나와, 아들을 잊어버리려고만 했던 댄은 그렇게 서로 마주 보고 아들과 함께했던 기억을 나누며 자신들의 아들, 데이브를 온전히 추억한다. 자기의 아픔을 그제야 직면하고, 제대로 인정할 수 있었던 다이애나와 댄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선택을 한다. 다이애나는 댄과 가족을 잠시 떠나 자신에게 집중하기로, 댄은 그동안 외면해 왔던 상처를 인정하고 심리상담을 받기로 한다.


이후 다이애나는 나탈리가 받았던 상처를 생각하고 그에게 사과를 건네며, 그녀를 따스하게 안아준다. 변화한 엄마가 낯설게 느껴지지만, 그녀가 그토록 바랐던, 그 평범함 언저리로 조금씩 나아가는 가족의 모습에 나탈리는 행복을 느낀다.


‘기나긴 어둠을 지나고 만나는 한 줄기 빛.’ 뮤지컬은 그 한 줄기 빛을 노래하며 마무리된다. 어둠은 길고, 빛은 고작 한 줄기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길고 길었던 그 어둠이 있었기에 우리에게 내리는 한 줄기뿐인 그 빛은 더 반짝이고 찬란하며 소중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고통도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끝나 있으며, 나를 괴롭게 했던 상황은 어떻게든 달라져 있다. 그리고 그 시간을 어떻게든 지나온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더 단단하고 강해져있다. 화목하고 행복한, 혹은 평범하기라도 했던 가족이 아니라,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리고 그 평범함을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가족들이 전하기에, 그 메시지가 더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 모두가, 그들처럼 평범함을 갈망하는, 평범하지 못한 저마다의 모습을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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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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