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조명]
어떤 대상의 의의나 가치를 다시 들추어 살핌
익숙한 대상과 사건들이 다시 새롭게 보이는 중입니다
이 글은 당연함에 가려졌던 그 가치를 재조명한 작업입니다
좋은 이야기를 건네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쓸 글에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라는 것도 잘 인지하고 있다. 안다. 글부터 좋아야 한다. 차곡차곡 쓰며 실력을 닦아 나가야 한다. 어느 날엔 이런 생각이 든다. 안 쓰면 그뿐인 것을 왜 사서 고생하고 있나.
그러다 몇 분도 안 돼 다시 이런 것들을 상상한다. ‘몇 년생’으로 시작해 ‘-를 썼다’로 끝나는, 그간 써 온 작품이 괄호 안에 착착 담기는, 존재감 있으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그런 소개글이 적힌 책 한 권을. 책 표지 위에 위풍당당히 적혀 있는 이름 세 글자를. 북토크를 하고 있는 미래의 나를.
그렇다. 나는 ‘이름’이 무지하게 갖고 싶다. 엄청나게 ‘큰 점 하나’를 찍고 싶다. 이 말을 뱉으면 내가 날 빈 수레라고 소개하는 것 같을까 봐, 너무 없어보일까 봐 잠시 고민을 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창피한 건가 싶어 막지 않았다. 쓰고 싶다와 안 쓰고 싶다와 한가닥하고 싶다를 동시에 겪는 사람이라면 이 마음을 이해해 줄 거라 믿는다.
그냥 달랑 나로는 안될 것 같은 기분. 생각해 보면 이름이 있는데도 이름을 갖고 싶은 욕망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징그러울 만큼 여전한 것 같다. 점 하나를 찍고도 미미함을 느꼈던 그때도 그랬으니까. 보람 대신 이상하게 허기가 졌던 순간이 떠오른다.
수업을 마치고 버스를 타고 가던 중이었다. 평소라면 안 받고 지나쳤을 전화인데 덜컥 받아 버렸다. 모르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행운이 담겨 있었다. “안녕? 나 OO언닌데 혹시 나 알고 있니? OO한테 네 얘기 많이 들었어. 열심히 잘했다고. 언니가 이번에 창사특집다큐를 맡게 됐는데 네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 생각 있으면 같이 한번 일해볼래?”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머릿속에서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기회가 온다고? 작년 여름방학 때 했던 일이 이렇게 연결되는 건가? 근데 내가 이걸 할 수 있나? 깜냥이 되나? 그냥 해? 말아?’ 얼떨떨하긴했지만 긴 고민은 사치 같아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 순간부터 나는 서브작가 OOO이 되었다.
전에 없던 타이틀이 이름 앞에 붙게 되자 그제야 뭔가 일이 커진 느낌이 들었다. 일의 범위가 넓어진 만큼 어깨도 함께 무거워졌다. 자료조사는 기본이고 장소 섭외부터 출연자 섭외, 자문 인터뷰, 일정 조율을 담당하는 일까지 내 몫이 되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 쫓길 때가 많았고 이래저래 거절당하는 일도 잦았다.
무엇보다 학기 중에는 일 병행이 쉽지 않았다. 통학을 해서 피곤하기도 했고, 수업 중에 섭외 관련 전화가 오면 무조건 받으러 나가야 해서 강의 내용을 놓칠 때도 있었다. 나름의 전쟁을 치르며 어떻게든 1인분을 소화해 내려고 애쓰는 내게 제일 강력했던 보상은 ‘서브작가’라는 타이틀이었다. 섭외 메일을 보낼 때 이름 앞에 항상 붙여 썼던 그 단어가 내 이름보다 더 소중하고 좋았다.
당근 같은 네 글자에 기대어 6개월을 달렸다. 그리고 대망의 방송 날. 그 결실을 확인하기 위해 부랴부랴 집으로 가 TV를 켰다. 이날을 위해 수고한 모든 사람들의 노력이 다큐 안에 어떤 식으로 녹아들었는지 지켜보는 일은 감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나 적나라했다. 복잡한 마음이었지만 마지막 화면 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눈을 부릅 떴다.
기획 OOO, 구성 OOO, 촬영 OOO, 내레이션 OOO, 자료조사 한세희, 번역 OOO, 지미집 OOO... 목 빠지게 기다리던 내 이름은 일 분도 채 안 돼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그간의 노고가 40초 정도로 요약되는 마법에 허무함이 몰려왔다. ‘뭐야? 나 나온 거 맞아?’ 이런 생각만 들었다.
서둘러 이동한 회식 장소에는 아는 얼굴과 모르는 얼굴이 반반이었다. 맥주잔을 부딪히며 서로 수고했다는 인사를 나누고 있는데 작가 언니가 “방송 어땠어?” 하고 내게 물었다. 그 말을 전혀 예상 못한 것도 아닌데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았다. 이제 막 압박의 굴레에서 벗어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뭐가 어땠는지 이러쿵 저러쿵 얘기한다는 게 조금 잔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마냥 기분 좋게 풀어질 수만은 없는 분위기가 우리 테이블 쪽에 있기도 했다.
열심히와는 별개로 결과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상황이 어쩐지 고달프게 느껴졌다. 동시에 이 지난한 과정을 걷는 사람들이 전부 다 대단해 보였다. 화면 속 이름 세 글자의 의미는 그러했다. 복잡하고, 무겁고, 까탈스럽고, 어려운 모든 것들을 다 뛰어넘었을 때야 가질 수 있는 최종적인 트로피 같은 것.
그래서 넌 그 트로피가 갖고 싶냐고 속으로 묻고 있을 때 어떤 기자님이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이미지가 좋았나 봐요? 계속 같이 일하시는 거 보니까.” 그때 난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사실은, 정말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세상에 점 하나 찍는 건 왜 이렇게 피곤할까요? 피곤한데 트로피는 왜 갖고 싶은 걸까요? 더럽게 피곤한데 더럽게 갖고 싶어요! 저만 이래요?”
점 하나를 찍고도 미미함을 느꼈던 나는 계속 점을 찍어댔다. 이름이 갖고 싶냐와 그럼 안 갖고 싶냐가 팽팽하게 맞서면서 미미한 나를 움직였다. 그러는 동안 내가 겨우 알아낸 것은 점은 단발성이 아니라 연속성을 띤다는 것.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그 선이 모이면 면이 되고, 그 면이 모이면 입체가 되고, 그 다음은, 그러니까...아이고 머리야......
모니터 하단 상태바에는 자기를 봐주길 바라는 파일들이 줄을 서 있다. 그것들을 동시다발적으로 작업하며 내 이름을 한번 생각했다가 정체 모를 선과 면과 상자 하나를 떠올려 본다. 점 하나 찍고 말 게 아니니까 여전히 점 찍기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