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말이 되지 않는 걸 말이 되게 하라 -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

글 입력 2024.03.15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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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눈으로 본 그림, 혹은 문학과 회화의 만남. 두 분야를 선두에서 이끌어왔음은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미래의 미지를 미학이라는 지도로 그려나가는 두 작가가 만났다. 시인 채호기가 ‘감응‘해 온 화가 이상남의 작품세계,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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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오랫동안 애정하고 오랫동안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관없이 어떤 것을 깊이 애정하게 된다면 대상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어떠한 사소한 것이라도 다 알고 싶어진다고 생각한다. 일명 ‘덕질‘이라고도 부르는 이러한 애정이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그에 대한 지식이 누구보다도 많이 쌓이게 되고, 그렇기에 때로는 어떠한 전문가보다도 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은 이러한 ‘덕질 전문가‘의 면모를 읽는 내내 엿볼 수 있었다. 이 책의 부제는 ‘시인 채호기가 감응해 온 화가 이상남의 작품세계“인데, 부제에서 드러나듯이 40여 년의 시력을 가진 시인이 오랫동안 자신이 주목하고 추적해온 화가 이상남에 대해 이야기 한다.


사실, 처음 책을 접하고 제목을 보았을 때 나는 시인 특유의 부드러운 느낌의 언어로 서술된 작품에 대한 감상이 주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개인적으로 다양한 문학 작품과 시를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기에 편견을 더 강하게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머리말을 접하고 첫 장에 첫 문장을 읽었을 때 이러한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의 저자는 오랫동안 문학과 예술을 넓고 깊게 탐독해 온 식견을 가지고 냉철하고 정확한 어조로 화가 이상남에 대한 회화 비평을 넘어, 쉬이 발견되지 않는 화가의 핵심과 역량을 포착해 온다.


물론, 냉철한 어조를 사용하였다고 책 또한 차갑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차가운 어조로 한 겹 가려져서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작품에 대한 열렬한 애정을 책 전반에 걸쳐 드러내고 있기에, 독자는 책을 읽는 내내 그의 ‘덕질 일기‘를 엿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뉘어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화가 이상남 작품의 설명을 시작으로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행위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에 대해 잘 모르는 이에게 작품의 매력에 대해 알려주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화가의 작품을 접했을 때 개인적으로 조금 당혹스러움을 느꼈었다. 예술작품을 좋아하는 편이라 작품전시를 찾아가는 편이긴 하지만, 따로 그 분야에 관해 공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일반인의 시선에서 그의 작품이 어떠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의 그림은 도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한 번에 화가의 시각을 이해하기에 어려웠는데, 책이 이러한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고 있다. 작자는 화가 이상남의 작품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회화보다 음악에 한 발짝 더 다가가 회화에서 좀 더 멀어진 즉, ’음악으로서의 회화‘라고 말한다. 다르게 말한다면, 음악에 빗대어 표상 없는 사유로서의 회화란 의미로 ’감응의 회화’라고 불러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감응‘이란 단어는 채호기 시인이 이상남의 작품을 독해하는 핵심 키워드이다. 이는 주관과 객관 구분 이전 역량의 차이로 작품 속에서 힘의 역량으로 나타나며, ‘표상 없는 사유로서의 회화’를 읽어내게 해준다고 말한다.


책에서 감응의 회화는 그림과 그 수용자의 공동 생산에 기초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를 ‘이미지를 츄잉한다‘하고 말하는데, 이때 ‘츄잉’에는 운동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림이 시각적인 것만이 아닌 미각과 촉각의 감응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씹는다‘는 것은 외부의 것을 잘게 부수어 몸과 결합시키는 행위로, 즉, ‘감응’이란 이질적인 것을 뒤섞는 힘의 결합을 의미한다.


확실히 이상남의 그림을 보았을 때 작품이 시각적인 부분에 많이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 마치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매끄러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매끄러움 뒤에 숨어있는 화가가 수동으로 기계로 뽑아낸 듯한 그림을 그려내는 노력은 이 책의 제목인 ‘그리되, 그리지 않은 것 같은‘을 떠올리게 해준다.


2부에서는 채호기 시인과 화가 이상남의 대담을 다루고 있다. 대담 동안 이루어진 대화 내용을 정제 없이 솔직하고 사실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대담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1부 원고를 화가에게 보여주지 않고 진행할 정도로 많은 신경을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이러한 노력 덕분일까 대화의 생생함을 글에서 느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작품은 작품 그 자체로 즐기는 것 이외에도 작가의 생각, 배경을 알아야 작품을 좀 더 깊게 감상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2부에서 실린 대담은 나에게 작품을 한층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고, 화가의 작업 과정과 그의 자부심을 엿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말이 되지 않는 걸 말이 되게 하라”

 

- 화가 이상남의 말

 

 

말이 될 때까지 지속하는 성실성. 동시에 강제도 투쟁도 혁명도 아닌, 어느 순간 “넌시시“ 그 옆에 자리해 또 다른 열린 세상으로 관객을 초대하는 회화. 그것이 바로 이상남 작품의 매력이 아닐까.

 

 

 

정소형 (1).jpg

 

 

[정소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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