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눈에 보이지 않는 규칙들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공연]

연극 「더 라스트 리턴」을 보고 난 후
글 입력 2024.05.06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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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리턴」은 연극의 마지막 취소표를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오늘 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는 오펜하이머의 연극 「힌덴부르크로 돌아가다」는 현재 매진인 상태이다. 표가 없는 사람들이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선 생길지, 안 생길지조차 확실치 않은 취소표를 기다려야 한다. 극장에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취소표를 기다리던 이들은 이내 저기네들끼리 언성을 높이기 시작한다. 그들의 모습은 그저 우스꽝스럽게 보이기 쉬우나 사실 표를 얻기 위한 과정 속에는 여러 불합리함, 편견, 폭력성이 얽혀있다. 직장 동료들과 어울리기 위해, 오펜하이머 학과장 자리를 지키기 위해, 전쟁 PTSD의 이겨내기 위해 등 모두가 각기 다른 이유로 이 극장에 모여들었다. 이 작품의 백미는 극 후반부에 모든 이들의 욕구가 극한으로 치닫는 절정 장면에 있다.


'분홍 두건 여자'는 난민 혜택을 받아 마지막 표를 싸게 구매한 후 6배 불린 가격으로 팔 의도가 있었음을 고백한다. 그녀의 말에 '우산 든 여자'는 황당하다는 듯 분홍 두건 여자를 바라본다. 우산 든 여자는 자신이 이 연극을 보기 위해 버스를 세 번이나 갈아 타고 왔다며 지속적으로 외친다. 마치 타인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자신만이 피해자라는 식으로 우기는 것처럼 보인다. 분홍 두건 여자는 무려 68번이나 버스를 바꿔 타고 지금 이곳에 있다. 그녀는 여러 나라와 수십 개의 국경을 넘어 연극 티켓을 구하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민을 떠나는 과정에서 잃어버린 딸을 찾기 위해 미국으로 온 것이다. 우산 든 여자는 버스 세 번, 군인은 비행기, 분홍 두건 여자는 무려 버스를 68번 갈아타고서. 모두 다른 사연을 갖고 있는 이들이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모였다. 지극히 일부만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 이 자리를 얻기 위해선 각자만의 고난을 견뎌야만 한다. 이러한 고난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국적, 신분, 성별, 나이, 종교 등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극장으로 오기 위해 누군가는 몇 시간, 그것도 고작 세 번의 버스 탑승만이 요구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몇 년에 걸쳐서 딸과 헤어지면서까지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기득권층으로 대변되는 이들은 제대로 된 매뉴얼도 갖춰져 있지 않은 극장 시스템 구조를 비난한다. 자신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서비스 컴플레인’을 운운하며 자리를 비운 대신 의자 위에 가방을 놓고 간 이를 욕하기도 한다. 그 가방의 주인은 한 어린아이이다. 그들은 가방의 주인이 어린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단지 주인이 자리를 비웠다는 이유만으로 가방의 주인이 테러리스트라는 등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지어낸다.


이것이 진정한 비극의 시작이다. 결국 신문 보는 남자는 주인 없는(정확히 말하자면 주인이 잠깐 두고 간) 가방을 끌어안고 있다가 테러범으로 오인받아 사살되고 만다. 안전요원들은 사람을 사살해 놓고는 태평하게 퇴근한 후 뭘 먹을지 따위의 사담을 나눈다. 본인들이 사살한 자가 실제 테러범인지 아닌지조차 제대로 검증하지 않는다. 단지 본인들에게 주어진 임무, 즉 수상하게 보여 신고받은 이를 사살하는 것에만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행위로 인해 발생한 2차 피해 따위 안중에도 없다. 이처럼 죄 없는 무고한 이를 총살한 경험은 군인에게도 있다. 그는 과거 아버지의 목소리를 따라 군대에 입대해 얼떨결에 전쟁에 참전하였다. 군인은 수많은 적군을 죽이고 전쟁영웅으로 거듭났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한 어린아이를 사살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의 이성이 절대 거부했으나 저건 아이가 아니라 개일 뿐이라고, 얼른 죽여야 한다며 고함을 지르는 내면 속 아버지가 군인을 괴롭혔다. 결국 군인은 아이를 총살하고 지금까지도 그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처음에는 군인 또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에게 당한 피해자로만 보여 연민의 감정이 일었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총살한 건 엄연히 이와 별개의 문제이다. 당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은 절대 이 비극을 정당화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 사건으로 인해 생긴 PTSD를 치료하기 위해선 이 연극 관람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군인을 보며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남의 불행을 이용해서 자신의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건 군인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누가 먼저 와서 자리를 선점했느냐


 

이는 극 초반에 대기줄 순서를 정하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보편적인 기준이 됐으나 후반부로 갈수록 그 중요도가 점차 흐려졌다. 가장 먼저 극장에 도착한 신문 보는 남자가 병리적 이유로 인해 자리에서 밀려나고 결국 가장 이른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사실 ‘그들 마지막 공연 표를 누가 차지했느냐’는 이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 '애초에 누가 이런 줄 세우기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이것이 줄을 서고자 했던 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작품 속에서 ‘취소표’는 함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풀릴 취소표는 이것을 원하는 자의 관점에 따라 단지 개인의 이득을 취하기 위한 것이 될 수도, 잃어버린 가족을 찾기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매표소 직원은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기계적인 대답만을 할 뿐이다. 상시 그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음에도 절대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억울하게 자리를 빼앗긴 사람들에게 줄 세우는 시스템은 자신이 관여할 만한 게 아니라고, 본인이 책임져야 할 서비스 영역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발뺌하는 매표소 직원의 모습을 보면 우리 사회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이 떠올릴 수 있다. 애초부터 매표소 직원은 해당 극장 소속 직업인이다. 위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안전요원을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이도 매표소 직원밖에 없지 않는가? 극 중 인물들이 문제 상황을 토로했을 때 늘 일관된 답변만을 기계적으로 내뱉던 매표소 안내원이 가장 작위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취소표는 피지배인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생존하는 것일 수도, 지배국들이 피지배국의 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의미 없는 권력 다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 후자의 관점에서 봤을 때 매표소 직원을 통해 이권 다툼을 벌이는 이들을 풍자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 매표소 직원 또한 그들의 권력 다툼을 방관했으니 사실상 공범이나 다름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누구의 편에도 설 수 없다. 눈앞에서 치열한 혈투극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무관심한 매표소 직원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본인 스스로를 발견하는 묘한 불쾌함을 경험할 수 있다.

 

 


"도대체 그놈의 연극이 뭐라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 매표소 직원의 말을 빌리자면, 극장은 세련된 공간이고 품위 있는, 알아서 질서를 잘 지킬 만한 사람들이 관객으로서 방문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공간에 있는 이들은 남에게 자신의 자리를 쉽게 내어줄 만큼의 충분한 여유가 없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반전은 갈수록 미묘하게 현실 세계를 빗나간다. 가령 우산을 든 여자가 만들어 온 프로틴 음식물 안에 독극물이 들어있다든지, 우산이 알고 보니 칼이었다는 설정 또한 현실 세계에서는 말도 안 되는,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서사나 다름없는 이야기 전개이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연은 지극히도 현실적이다. 극의 결말에는 흰색 극장 외벽에 잔뜩 흩뿌려진 붉은 피가 선명하다. 그 핏자국을 보며 극 중 인물들이 내내 떠들어대던 ‘질서’와 ‘체제’ 등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과연 우리는 무고한 누군가의 자리를 빼앗은 적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이의 자리를 빼앗았을 경우는 어떻게 따져볼 수 있는가? 극장을 나선 후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언제쯤 자리에서 일어날지 생각하고, 나와 같은 빈자리를 노리는 사람의 눈치를 보았다. 끊임없이 열차 안으로 밀려드는 승객들을 제친 후 앉고 싶은 마음은 누군가에겐 그저 ‘편함’을 위한 것이나 또 다른 누군가에겐 '생존'이 걸려있는 문제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명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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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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