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개봉 이후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어쩌다보니 영화를 먼저 보고 레히너의 평역본 <오디세이아> 를 읽었다.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기 위해 10년간 바다를 떠돌며 온갖 모험과 시련을 겪고, 마침내 가족과 자신의 왕국을 되찾는 그 유명한 이야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본 이야기이지만, 레히너의 평역본과 영화를 함께 보니 그 매력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사실 <오디세이아>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것과 직접 읽어보는 것 사이에 꽤 큰 간극이 있는 작품이다. 원작의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이타카로 돌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한다. 원작의 복잡한 구조와 신화적 배경에 익숙하지 않다면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과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레히너의 평역본은 꽤 친절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건을 정리하고, 3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오디세우스가 어디에서 무엇을 겪고 있는지를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준다. 덕분에 사건의 순서를 이해하는 데 힘을 쓰기보다 오디세우스가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를 따라가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
영웅이자 인간, 오디세우스
평역본과 영화를 비슷한 시기에 접해서인지, 각각의 매체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주인공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에 가장 큰 흥미를 느꼈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가 지략과 전투 능력을 겸비한 영웅으로 그려졌다면, 원작의 오디세우스는 그보다 조금 더 인간적이다.
물론 그는 뛰어난 지략가다. 위기 상황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나고 단시간에 전략을 짜 실행하는 능력도 탁월하다. 그런데 책을 읽다보면 이 인물, 생각보다 호기심도 많고 고집도 세다. 오디세우스를 집으로 돌아가게 만든 것도 그의 지혜지만, 그 길을 더 길게 만든 것도 결국 그의 지혜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이었다.
예컨대 키클롭스(폴리페모스)의 동굴에 굳이 들어가는 것도,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싶다며 귀를 밀랍으로 막는 대신 자신의 몸을 기둥에 묶어달라고 한 것도 영웅 서사에서 드러나는 일반적인 영웅의 특징과는 사뭇 다르다. 위험하다는 것을 모르는 게 아니라, 위험한 것임을 알면서도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호기심과 고집이 오히려 문제 상황을 심화한다. 특히, 간신히 꾀를 써 키를롭스의 동굴에서 빠져나왔음에도 기어이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는 장면에서는 그의 자존심과 자만심까지 드러난다.
영리하고 눈치가 빠르지만 그만큼 강한 자존심과 자만심으로 위기를 초래하는 장면들은, 독자가 흔히 상상하는 ‘완벽한 영웅’의 문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오디세우스도 평범한 인간일 뿐이며, 그의 강력한 장점이 곧 결함이 되기도 한다는 점은 <오디세이아>라는 이야기 서사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고, 신과 인간의 차이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끔 한다.
인간은 신이 아니니 완벽할 수 없다. 우리는 가끔 이를 알면서도 자주 망각하곤 한다. 오디세우스같은 영리한 인물도 스스로의 욕망을 제어하기 어려우니, 실수 없이 완벽하게 살고자 하는 것은 신이 아닌 이상 불가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전쟁의 승리와 귀환
지독한 전쟁에서 승리했음에도 집으로 돌아가기까지 10년의 세월이 걸린다면 어떨까. 심지어 그 10년동안 수많은 난관을 헤쳐야만 비로소 집에 당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아득한 느낌이다.
책에서 오디세우스는 수많은 섬을 떠돌고, 동료들을 잃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도처에 널린 수많은 고난과 역경, 욕망을 뒤로하고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타카로 돌아가려 한다.
전쟁에서 승리해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러나 오디세우스의 귀환 여정 중 칼립소와 함께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갈수도 있었다. 이렇듯 오디세우스가 책 속에서 겪는 여러 사건들을 따라가다보니 오디세우는 그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고 유한한 인간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깨달았다.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는 단순히 돌아가고 싶은 고향 그 이상의 의미였을 것이다. 그곳에는 사랑하는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가 있고, 자신이 왕으로서 살아온 삶이 있으며,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자리가 있는 것도 맞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이타카에 돌아가는 것이 곧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를 다시 선택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는 오랫동안 방랑자가 된다. 전쟁에서는 영웅이었지만, 귀환하는 동안에는 이름과 정체를 숨기기도 하고 수많은 곳을 떠돌며 살아남아야 했다. 그런 그가 끝내 선택한 것은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영웅에서 방랑자로, 그리고 다시 자신의 삶을 선택하는 인간으로.
그런 의미에서 오디세우스에게 이타카로의 귀환은 책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존재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을 것 같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자신이 살아온 삶까지 지켜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디세우스에게 승리는 두 가지였던 것 같다. 트로이 전쟁의 승리가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승리였다면, 이타카로의 귀환은 오디세우스 개인의 승리였다. 전쟁에서 살아남고 승리한 영웅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 승리는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을까.
아마 이런 점 때문에 <오디세이아>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아온 것이 아닐까 싶다. 전쟁과 모험이라는 큰 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결국 그 안에서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지혜와 욕망, 자만과 책임감, 그리고 자신이 돌아가야 할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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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영화 속 영웅 오디세우스가 궁금해서 책을 펼쳤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만난 것은 완벽한 영웅이 아니었다. 지혜롭지만 자만하고, 책임감이 강하지만 때로는 독선적이며, 수없이 실수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레히너 평역본 덕분에 그 여정을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시간순으로 재구성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오디세이아>를 거대한 신화라기보다 한 사람의 긴 여정으로 읽을 수 있었다.
영화 <오디세이>를 통해 오디세우스를 먼저 만났다면, 레히너의 평역본 <오디세이아>를 통해 그를 조금 더 가까이 들여다보길 권한다. 영화의 이야기를 보다 쉽고 재미있게 따라가는 동시에, 스크린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오디세우스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