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의 베스트 셀러,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기억하는가? 도서관 한켠에 자리를 잡고 책을 펼치면 또 다른 세상이 등장한다. 오이디푸스 신화부터 트로이 전쟁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어른들이 많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가물가물해진 트로이 전쟁과 오디세우스의 귀환에 다시 한번 이 책을 집어 들게 되었다. 오디세우스의 방랑과 모험이 담긴 <오디세이아>. 오랜만에 읽게 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조금 더 어렵고, 조금 더 재밌었던 것 같다.
<오디세이아>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트로이 전쟁이 끝난 뒤,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 이타카로 돌아가는 10년의 과정과 가족을 통해 왕국과 정체성을 찾는 이야기’정도가 되겠다. 여기서 오디세우스의 ‘정체성’은 영웅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 묘사되는데, 이에서 알 수 있듯 오디세이아는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영웅이 된 한 남자가 다시 인간의 ‘나’를 찾는 여정에 가깝다.
원작 <오디세이아>는 단순히 시간순으로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가 직접 겪는 사건이 아닌 이타카의 혼란이나 텔레마코스의 성장을 이야기하며 서술의 형식으로 ‘회상’을 택한다. 하지만 레히너의 평역본 <오디세이아>는 이야기의 모든 사건을 시간순으로 재정렬한다. 더 나아가 3인칭 시점의 서술로 마치 하나의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를 선사한다.
오디세우스의 귀환 여정을 따라가며 본 것은 그가 ‘잃은 것’과 ‘얻은 것’이었다. 오디세우스는 여정의 전 과정에서 무언가를 잃고, 또 다른 무언가를 얻게 된다.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를 만난 오디세우스는 ‘아무도 아니다’ 라는 이름을 이용해 동굴에서 탈출하지만, 자신의 명예를 과시하다 이름을 말해버리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이와 같이 오디세우스의 귀환에서는 지혜로운 영웅 오디세우스와 오만한 인간 오디세우스의 모습이 공존한다.
오디세우스는 위대한 영웅이지만 계속해서 실수를 범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 살아남고, 결국에는 이타카로 돌아오게 된다. 끊임없이 실수를 저지르지만 다시 회복하고 자신의 자리를 되찾는 인간 오디세우스의 모습에서 그의 영웅성을 찾을 수 있다. ‘실수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실수와 상실을 겪고도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
이건 비단 오디세우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인간은 살아가며 수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때로는 욕심 때문에 순간의 판단을 망치고, 지나간 선택을 후회하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생각하고, 올바른 판단과 그릇된 판단을 함께 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실수를 하지 않는 것’ 이 아닌 ‘실수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영웅이었던 오디세우스가 귀환하며 ‘계속해서 선택하는 인간’의 모습으로 실패와 상실을 안고 극복하는 과정이 바로 <오디세이아>라고 생각한다.
이후 오디세우스가 겪게 되는 모든 사건에서 그는 선택을 통한 상실과 해결을 경험한다. 세이렌을 만난 오디세우스는 욕망과 자기통제 사이에서 갈등하고, 칼립소에 머무르게 된 오디세우스는 귀환을 포기하고 편안한 낙원에서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지속한다. 이처럼 모든 이야기는 각자의 주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귀환’이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동시에 자연스럽게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을 보여준다.
*AI를 통해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인간이라면 겪어야 하는 선택과 고통, 쾌락의 사이에서 보이는 다양한 인간상을 통해 <오디세이아>는 결국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수많은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주며 그 물음에 답한다. 칼립소, 세이렌은 인내와 절제 사이에서의 선택을 요구하며, 거지로 변장한 오디세우스와 텔레마코스와의 재회에서는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진리를 이야기한다. 오디세우스는 지혜롭지만 오만한 인간이며, 페넬로페는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면서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 계략을 짜낸다.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여러 사건과 인간상을 통해 스스로 내린 해답이 결국 정답인 셈이다. 귀환 여정에서 만나는 다양한 인물들은 지혜, 사랑, 충성, 탐욕, 오만, 욕망, 환대와 같이 인간이 가진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오디세이아>의 수많은 모험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회를 관찰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의 나에게 <오디세이아>는 그저 수많은 모험을 헤쳐 나가는 한 영웅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오디세이아>는 인간은 어떻게 상실을 극복하며, 또 어떤 모습의 인간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지극히 인간적인 이야기다. 특히 레히너의 <오디세이아>는 사건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따라갈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고, 번역 또한 어렵지 않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많지 않은 독자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쉽게 읽히지만 그 안에서 던지는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기에, 책을 덮은 뒤에도 인간의 선택과 삶에 대한 생각을 곱씹게 한다.
최근 영화 <오디세이>가 흥행에 성공하며, 원작 <오디세이아>에 대한 관심도도 덩달아 높아졌다. 영화를 통해 원작을 접하는 이들에게는 레히너의 오디세이아를 적극 추천한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나는 <오디세이아>를 통해 높아진 사기로 불타는 예매 전쟁에 참여할 준비가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