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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글쎄요, 무언가 바뀌었을까요?” [도서/문학]

김병운의 소설집 『기다릴 때 우리가 하는 말들』의 단편「윤광호」를 읽고서

by 최은파 에디터
2025.09.1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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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청년 윤광호,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을 향해 이렇게 간절하게 이름을 불러 보고 싶었던 적이 없었다. 광호 님도 아니고 광호야, 도 아닌 광호 씨. ‘~씨’는 누군가를 높이거나 대접해서 부르는 말로 무언가 슬픔의 감각을 넘어서는 각성을 가져온 듯하다.


결국 소설은 한 인물이 같은 박자를 가지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소설 속 ‘나’라는 인물과 소설 너머의 독자들 역시 각기 다른 박자로 변화한다. 누군가는 공감, 누군가는 외면할 수도 있다. 이는 소설과 현재 사회에도 모두 적용되고 있다. 퀴어라는 이야기에 대한 태도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한 번 깨어난 감각의 변화는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과연 끝까지 변화할 수 있을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아주 작은 변화여도 괜찮다. 소설이 주는 작은 위로이니 미미한 형태라도 광호 씨를 나의 마음에 기록하고 싶다.


저자가 밝혔듯 소설 「윤광호」의 광호 씨는 작가 이광수의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정말로 광호 씨의 존재에 대해 많은 의문점을 가지게 된다. 이 모든 의문점을 뒤로 하고 광호 씨를 보게 된다면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와 광호 씨, 그리고 밍밍


 

소설 「윤광호」에는 주목할 만한 인물 세 명이 등장한다. 시점 인물인 ‘나’와 서술의 대상인 광호 씨,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연결하는 밍밍이다. 소설에는 변화할 가능성이 있는 인물,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 그래야지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윤광호」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그 힘을 가지고 있다.


먼저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시점 인물은 퀴어라서 퀴어 이야기를 쓰지 않고 싶어 한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채 바리케이트 안에서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광호 씨를 만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바리게이트를 치워 밖으로 나온다. 퀴어에 대한 글을 쓰고 나중에도 쓸 것이다. ‘나’는 광호 씨의 말처럼 되었기에 지금 자신의 소설을 쓰고 광호 씨에게 편지를 보낸다.


또한, 그와 대화하며 경험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신과 다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보며 우리는 경계와 선망을 동시에 가진다. 즉, ‘나’는 소설에서 바리케이트 안에 있던 사람이 밖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광호 씨는 어떤가. 우리는 광호 씨를 ‘나’라는 시점 인물의 거름망을 통해서 걸러서 보게 된다. 이는 시점 인물 역시 일부 마찬가지이다. 한 번의 만남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그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광호 씨의 어머니인 신귀영 씨의 말을 듣고 그를 파악하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다. 군대를 기점으로 삶에 큰 변화를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한다. 그의 성격은 ‘게이 라이프스타일 보고서’의 원고 작업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에는 주저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인물이다. 그리고 광호 씨가 쓴 글의 문장처럼 그는 망가뜨리는 힘과 망가지는 힘을 모두 가진 힘 있는 사람이다.


또한, 광호 씨는 도움을 갚아야 할 때 갚을 줄 알고 빌려줘야 할 때 빌려줄 수 있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말하는 ‘그러면 안 된다.’라는 규정에 속박당하지 않으려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물로 인해서 기존 사회에 대한 통념을 부수는 망치를 들 수 있게 되었다.


시점 인물은 길거리에서 검은 치마를 입은 그를 보며 처음에 “미친 걸까, 사람들이 안아 주고 응원해 주니”(99쪽)라고 생각한다. 즉, 두 사람이 다른 것처럼 퀴어라고 해서 다 똑같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광호 씨는 정말 반대의 인물이다. 누군가가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 똑같은 재료로 이루어진 하나의 선(이 선은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음)에서 끝과 끝의 꼭짓점에 서있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밍밍은 두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인물로 그가 등장함으로써 소설은 한 가지 힘을 가지게 된다. 바로 이야기의 템포, 속도를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절묘한 타이밍에 등장하고 퇴장하면서 이야기에 힘을 실어준다. 비록 그의 본명을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그가 나올 때마다 독자는 소설의 의미 있는 사건과 마주한다. M 단체의 인터뷰, 작가가 오는 도서 모임, 광호 씨의 투병 생활의 사건들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글쎄요, 하고 뜸을 들일 수밖에 없는 순간들


 

소설을 끌고 가는 디테일은 “나는 글쎄요, 하고 뜸을 들일 수밖에 없고”(87쪽)와 같은 한 문장, 한 문장에 담겨 있다. 인물과 상황, 행동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독자를 기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점 인물이 정의하지 못하는 광호 씨는 누구일까, 무엇으로 그를 대변할 수 있을까, 와 같은 질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끝내 작가는 이 질문에 편지로 응답한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115쪽)와 같이 강조를 하기도 한다. 비록 소설을 다 읽은 후에도 광호 씨의 인생을 모두 이해했다고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만은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제목에서부터 윤광호를 명명하고 있는 소설, 만약 광호 씨의 본명인 선민을 주목해서 보면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다. 인간에게, 인물에게 이름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사명은 사전적으로 맡겨진 임무라는 의미이다. 세상에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 이루어야 할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은 이름을 통해서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의 광호 씨, 그는 어떤 한자를 쓰고 있을까? 소설을 읽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나만의 한자 뜻으로 해석해 보았다. 베풀 선(宣)에 강인할 민(敃)으로 베풀어서 강인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소설 106쪽에서 광호 씨는 종이와 시간을 넘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건 용기의 문제가 아니에요. (…) 시간의 문제죠. 중요한 건 시간이에요.”라며 글을 쓰는 것엔 용기가 아닌 시간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나’는 처음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퀴어 글을 쓰면서 변화한다. 우리 역시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변화를 경험한다.


결국 소설 「윤광호」는 M 단체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함께 광호 씨에게 편지를 쓰게 만드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한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좋은 소설은 소설 그 뒤의 이야기를 상상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독자의 마음에서 새롭게 생겨나고 시작되는 이야기를 말이다. 과연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붙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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