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고 싶지 않아도 겪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수많은 변화 속 겪는 성장은 때때로 너무 두렵고 멀게 느껴지기만 한다. 이해할 수도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달라지는 나를 마주하는 것. 사람은 매 순간 자신만의 계기를 통해 성장한다고 하지만, 반복한다고 해서 언제나 쉬운 것은 아니다.
소설 데미안은 헤르만 헤세의 대표적인 장편 소설로, 신앙심 깊은 소년 에밀 싱클레어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성장 소설이다. 데미안은 나에게 있어 처음 겪는 변화와 성장만큼 어려운 책이다. 읽고 또 읽어도 생겨나는 새로운 관점과 이해에 대한 노력은 매 순간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싯다르타, 노인과 바다 등으로 유명한 거장, 헤르만 헤세. 한국에 '헤세 붐'을 일으킨 전혜린의 번역으로 흘러가는 데미안의 한 글자 한 글자에 그녀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독보적인 감성이 녹아들어 있었다. 전혜린 타계 60주기를 맞아 출간된 복원본 데미안에는 깊이 있는 번역 과정을 거친 전혜린의 서평과 이야기가 담겨있어 끝없는 생각의 호수를 만든다. 문법부터 문장론까지, 독일어 원문에 충실한 번역본이기에 어렵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원본을 읽는 듯한 짜릿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데미안은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도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끌어안게 만든다. 여리고 어린 주인공 싱클레어는 시작부터 ‘빛의 세계’와 ‘어둠의 세계’라는 두 세계를 끊임없이 오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나간다. 데미안을 만난 싱클레어는 세상이 강요한, 그동안 자신이 생각하던 도덕의 이분법이 얼마나 불완전한지 깨닫는다.
데미안은 삶의 모든 이치를 담고 있는 성장 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하지만, 나에게 있어 가장 크게 다가왔던 것은 ‘빛과 어둠의 세계’였다. 소심하고 유약한 싱클레어를 나에게 투영해서일까, 소설 속에서 나는 내가 겪어왔던 모든 감정과 경험을 마주하게 됐다. 그리고 그 속에서 찾아낸 핵심은, 우리가 흔히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감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결론으로 다가선다.
살의, 열등감, 시기 혹은 질투. 너무 당연한 감정임을 알지만, 나는 감히 그 앞에서 솔직해질 수 없었다.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면 스스로를 단죄했고, 그것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성숙함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데미안은 그런 억압이 오히려 자기 자신을 모르는 채로 살아가게 만드는 함정이라고 말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네 안에 있는 것들을 부정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어둠의 세계더라도, 자연스러운 인간의 일부인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인정과 이해에 있다. 어떠한 감정을 느꼈든 그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 많은 시간을 돌고 돌아야 했다. 세계라는 알을 깨기 위해서는 고통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세계는 때때로 자연스럽게 깨어지지만, 그렇지 않은 세계를 깨부수기 위해서는 자신의 움직임과 힘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언제나 투쟁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데미안은 단순한 성장소설이 아니라, 마음속에 초대받지 못했던 ‘어둠의 세계’에게 보내는 초대장 같은 채이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을 모두 가진 존재이며, 어느 한쪽만이 존재할 수 없다. 머리로는 잘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고 움직일 수 없는 사실. 내 안 깊은 곳의 불편한 감정을 직시하고, 부정이 아닌 이해와 수용의 대상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또 다른 세계로 떠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데미안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있는 그대로 나를 마주하는 용기가 아닐까 싶다. 데미안은 절대 친절하고 쉬운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그 안에는 삶을 꿰뚫는 철학이 있어, 누구나, 언제 읽어도 자신만의 답을 찾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데미안은 불안한 젊음에 바치는 영원한 고전이다.
우리는 매 순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사소할지라도 소중한 경험을 통해 성장한다. 수많은 세계의 사이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인간의 성장을 다룬 데미안이 아닐까. 데미안 속 가장 유명한 문장이자 성장을 관통하는 이 문장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