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 연주가이자 밴드 잠비나이의 멤버로 활동 중인 김보미는 최근 에세이 『음악을 한다는 것은』을 출간하며 작가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책은 국악과 현대 음악의 경계를 넘나들며 쌓아온 그녀의 음악 여정과 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연주자이자 창작자,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의 시선이 담긴 이번 인터뷰를 통해, 음악과 삶이 겹치는 지점에서 고민과 더더욱 단단해진 믿음을 들여다보았다.
안녕하세요. 독자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해금 연주가이자 밴드 잠비나이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있는 김보미입니다. 이번에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이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 작가라는 타이틀도 추가하게 되었어요.
에세이집을 퇴고하고 시원섭섭한 기분이 드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일단은 큰 프로젝트를 끝낸 거라 엄청 홀가분해요. 사실 이렇게 긴 호흡으로 글을 써본 건 처음이라 꽤 힘들었거든요. 정신적으로 에너지를 많이 써서, 시원한 감정이 가장 크게 남았던 것 같아요.
그럼, 에세이집 퇴고 후 변한 일상이 있을까요?
사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요. 이제껏 해오던 대로 잠비나이 활동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은 계속하고 있어서 큰 변화는 없어요. 그래도 독자분들께서 조금씩 올려주는 리뷰를 보며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게 소소한 변화예요.
작가님께서 표현하고 하는 감정을 음악으로 풀어오셨잖아요. 음악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언어이기도 하고요. 그런 감정들을 이번엔 글로 옮기게 되셨는데, 어떤 지점에서 어려움을 느끼셨고, 또 의외로 수월하게 다가왔던 순간도 있었을까요?
음악은 제가 느끼고 있는 감정을 비교적 직관적으로, 그러니까 소리로 표현할 수 있잖아요. 제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해금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 익숙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글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감정을 단어로 골라내고 문장으로 다듬어야 하니까, 그게 과연 내가 진짜 표현하고자 했던 감정이 맞는지 계속 고민하게 됐어요. 아직은 글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보니, 감정과 문장이 완벽히 겹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가장 어려웠고요.
그래도 글이라는 방식이 더 많은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는 통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은 듣는 이마다 다르게 받아드릴 수 있지만, 언어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규칙과 의미가 있으니까요.
책을 쓰면서 해금을 처음 연주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셨을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면서 해금이라는 악기를 대하는 감정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사실 처음 시작했을 땐 국악과 관련된 학교에 다니다 보니, 시험을 치르고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금을 대했어요. 다행히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면서 재미를 붙였지만요. 지금은 재미만 느끼던 시기를 지나, 책임감이 더 커진 것 같아요.
해금을 연주해 온 시간이 쌓이다 보니까, 이제는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어떤 소리를 내야 하는지, 어떤 연주를 더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많아졌고요. 이제는 내가 하는 연주에 책임을 져야 하는 시기가 온 거죠.
기본을 닦는다는 것
작가님께서는 스스로를 ‘무언가 납득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하셨어요. 그래서 책에서 산조 공부를 하며 막힐 때마다 가락의 근원으로 돌아간다고 하셨는데요. 지금도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도 여전히 도움이 되나요?
그렇죠. 제가 쓴 곡은 태생부터 저 자신에서 시작해요. 그래서 잘 표현할 수 있죠. 하지만 제가 창작하지 않은 곡을 연주할 땐 ‘가락의 근원’을 꼭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작곡가의 의도를 더 잘 파악하고, 제대로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이건 연주뿐 아니라 감상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음악을 단순히 즐기기 위해 듣는 것도 좋지만, 아티스트가 어떤 배경에서 이 곡을 만들었는지 알게 되면 더 깊이 와닿더라고요.
그러면 산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볼게요. 국악은 거대한 지층, 거대한 에너지가 응축된 것 같다고 하셨잖아요. 또 나이가 들면 태초로 돌아가듯 국악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많다고 하셨는데요. 작가님이 느끼시기에 축적된 역사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나요?
활동을 하면서 창작 음악 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음악적으로 고갈되는 지점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택한 방법이 산조를 연습하는 거였어요. 그러니 뭐든 해낼 수 있는 에너지가 다시 생기면서 마음가짐 같은 것들도 바로잡혔어요. 나아가야 할 스텝을 알려주는 정답이 있는 소리, 단단한 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큰 대지 같이 느껴지고 그 안에서 묘한 위로를 받게 돼요.
잠비나이, 감정과 소리의 언어
잠비나이를 시작할 때 ‘국악기로 팝송을 연주하지 말자’는 다짐이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그전에 그런 무대에 서셨던 경험도 있으셨다고 들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도 결국 지금의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방향에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그 경험들이 작가님께는 어떻게 남아 있나요?
말씀하신 대로 저희가 실제로 국악기로 팝송을 연주하는 무대를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국악기가 너무 단순하게 소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통음악을 연주해 보면 그 깊이나 감정이 분명히 느껴지는데, 그런 무대에서는 그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는 것 같았고요. 우리가 평소에 좋아하고 감상하는 음악들을 보면, 자기 색깔과 영혼이 담긴 음악들이잖아요. 국악기로도 그런 음악이 가능하지 않을지 그런 고민이 자연스럽게 생겼고, 그게 잠비나이를 시작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은 그때와 조금 다른 시선도 갖게 됐지만, 그 시절의 경험 덕분에 ‘우리만의 감정과 영혼이 담긴 음악’을 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고, 그 열망이 잠비나이라는 팀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국악에는 정형화된 문법처럼 ‘정확한 소리’가 존재한다고 느껴지는데요, 잠비나이의 음악에서는 미분음이나 노이즈 같은 거친 소리를 통해 전통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유롭게 표현하고 계시잖아요. 그렇다면 그런 ‘정확함’과 ‘자유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어떻게 맞추고 계신지 궁금해요.
우리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기본적인 규칙을 지키면서도 그 안에서 자유를 느끼잖아요. 음악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자유롭게 자기표현을 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음악을 감상하고 함께 즐기려면 모두에게 통용되는 최소한의 보편적인 법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이 정형화된 틀에서 오는 경우가 많고요.
그래서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으려면, 두 영역을 계속 오가야 한다고 느껴요. 저는 ‘정확함‘의 답을 산조에서 찾았고, 또 잠비나이 활동을 하면서’자유로움‘을 표현하는 방법도 찾아가고 있어요.
무대 위의 나
코로나 시기, 온라인 공연을 얘기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만큼 힘든 시기였다고 하셨어요. 그 이후에 만난 무대는 어떠셨나요?
코로나 시기가 끝나고 처음으로 유럽 투어를 나갔을 때, 같은 공간 안에 관객들과 멤버들, 모두의 에너지가 응축돼서 터지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환호하고, 함께 따라 부르고… 그 장면들이 너무 생생해서, 지금도 떠올리면 약간 울컥해요. ‘아, 이게 공연이지. 이게 음악이지.’ 그 순간 그렇게 실감했어요. 코로나 시기에는 무대에서 직접 관객들과 마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연주자로서 생기를 잃었거든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냥 천장을 바라보면서 하루를 시작했고, 그렇게 비슷한 날들이 반복됐어요. 그 시기에 식물을 키우면서 ‘생명’이라는 게 뭘까, 스스로 계속 되물었고요.
코로나 이후 공연이 재개됐을 때 무대는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가장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끼게 됐어요.
혹시 공연을 하며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무엇보다도 앙상블이 가장 중요해요. 같은 곡이라도 날마다 멤버들과의 합이 조금씩 달라요. 그래서 ‘오늘은 어떤 느낌으로 합이 맞을까?’ 하며 궁금하기도 해요. 그런 합을 공연 중에 실시간으로 느끼게 되면 웃기도, 울기도 하죠.
공연 중 무대 아래에서 온전히 즐기는 관객을 바라보면 그 감정이 공연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그런 감각이 다음 무대의 연주 방식에 반영된 적이 있나요?
무대 위에서 관객의 기운을 받으면 연주자의 에너지도 실시간으로 증폭되는 것은 맞아요. 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곡을 연주하면서 제가 강조하거나 힘을 뺄 타이밍을 즉흥적으로 결정할 때가 있는데, 그 시도가 음악 전체를 더 잘 빌드업시키는 데 효과적이구나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럼, 다음 공연에 바로 반영하기도 해요.
지금까지 서태지 오프닝 무대부터 글래스턴베리, 평창동계올림픽 폐막식 무대까지 정말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셨잖아요. 그런 여정을 떠올리며, "진심으로 원하면 우주의 기운이 모인다"라는 믿음이 생겼다고 책에서 말씀하셨어요. 그 확신은 지금 작가님의 삶과 음악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있나요? 그리고 가장 서고 싶은 무대는 어디인가요?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냥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평소의 태도가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잠비나이와 더불어 제가 하고 있는 모든 음악이 그렇죠. 진심이라는 에너지가 고스란히 담긴 음악은 관객들과 함께 서로의 교감을 만들어내요. 그렇게 만난 무수히 많은 진심과 교감들이 모여 지금의 잠비나이, 그리고 제가 되었다고 믿고 있어요. 지금도 그 믿음은 여전히 유효해요. 그래서 생각을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더 커졌어요.
그리고 언젠가는 그래미(GRAMMY) 무대에 서서 더 다양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잠비나이이 음악을 들려주고 싶어요.
진심을 다 하면 이루어진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운 순간들이 분명히 있었을 것 같아요. 특히 투어를 다니면 정말 힘든 순간도 많으셨을 것 같은데, 그 순간들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지금도 투어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든데, 음악하는 사람들은 되게 단순한 것 같아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게 육체적으로는 힘들어도 정신적으로는 너무 행복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무대에 서고 관객 피드백을 받으면 힘든 걸 다 잊어요. 그게 너무 강렬해서 중독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투어 끝나고 나면 ‘다음은 못 갈 것 같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다음 일정 잡히면 또 설레고 가방 싸고 있어요. 결국엔 좋아하는 마음이 가장 큰 원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예술가로서의 질문들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음악’이란 어떤 모습일까요?
책에서는 환경 얘기를 하려고 쓴 챕터였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음악에도 적용될 것 같아요. 일단 지속 가능해지려면 다시 듣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실험도 중요하고 이벤트성도 좋지만, 결국 다시 듣고 싶고 자꾸 손이 가는 음악이 좋은 음악인 것 같아요. 그 속에는 새로움만으로는 부족하고, 익숙함을 안고 있어야겠죠. 그리고 반드시 창작자의 정체성이 담겨 있어야 하고요.
결국 우리가 예술을 좋아하는 건, 작가의 영혼이 담긴 그 표현 자체에 끌리기 때문이잖아요. 저도 음악을 만들 땐 늘 제 안의 것들을 담으려고 해요. 그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생각이고요.
그럼, 해금을 연주할 때 가장 ‘나만의 소리’라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나요?
그건 제가 연주하는 모든 순간인 것 같아요. 예전에 해금을 연주하는 후배가 잠비나이 공연을 보러 왔는데, '이건 언니만 할 수 있는 거예요'라고 하더라고요. 그 곡이 엄청 어려운 선율도 아니었거든요. 누구나 연주할 수 있는 반복적인 선율인데, ‘그건 언니만 낼 수 있는 소리’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같은 곡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서로 다른 음색과 감정이 표현되고, 그게 곧 그 연주자만의 독창적인 소리인 것 같아요. 이것은 산조도 마찬가지고요.
지금 여기, 음악을 한다는 것
지금 이 시점에서 작가님께 ‘음악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 책에 대한 리뷰를 읽다 보면, 책을 읽고 난 후에야 잠비나이와 김보미라는 사람을 알게 되고, 거기서 다시 음악을 찾아서 듣고, 해금을 검색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음악을 한다는 건 세상과 연결되는 일’이라는 걸 실감하고 있어요. 그래서 음악이란 삶의 한 방식이자, 저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느껴요.
앞으로 작가님의 음악이 닿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누구일까요?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시기가 있잖아요. 외롭고 고통스러운 순간들요. 그런 순간에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손에 쥐고 그 터널을 건널 수 있었으면 해요. 그런 순간에 제 연주나 이 책이 함께할 수 있다면, 그걸로도 참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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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한다는 것은』이라는 제목처럼, 김보미에게 음악은 단순한 직업이 아닌 삶을 이루는 본질적인 방식이었다. 해금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고, 잠비나이를 통해 세계와 호흡하며,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보인 그녀의 여정은 분명 수많은 이들에게 닿을 울림을 품고 있다. 음악과 글, 무대와 일상, 전통과 실험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신만의 길을 찾는 김보미의 이야기는, 오늘 누군가의 터널을 밝히는 작은 빛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