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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감히 영원을 바라는 순간이 있다. 영원히 잊고 싶지 않은 아름다움을 마주하는 순간이 있다. 그러나 무한한 우주 속 찰나의 먼지에 불과할 뿐인, 필연적으로 유한한 존재일 수 밖에 없는 우리는 그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음악'을 듣는 것이다.


누군가가 그랬다. 디즈니가 환상적인 곳으로 가는 느낌이라면, 지브리는 우리가 그리워했던 곳으로 가는 느낌이라고. 그래서일까, 지브리 작품을 보고 나면 마치 나만 덩그러니 현실로 돌아온듯한 상실감에 잠시 멍해진다. 이젠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어린시절 단짝과 '내일 다시 여기서 보자'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던 그날처럼. 터널을 지나 찬란하고 환상적이었던 여름날의 모험을 잊고, 하쿠의 이름도 잃어버렸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치히로처럼 말이다.


그 여운에 한 몫하는 건 잔잔하고 아름다운 지브리 속 음악이다. 부드럽고 차분하게, 때론 귀엽게 통통 튀는 지브리 OST를 들을 때마다 우린 언제든 우리가 사랑했던 지브리 속 장면을 떠올릴 수 있다.

 

한여름의 후덥지근한 바람같기도, 그리운 어린날의 추억같기도 한 멜로디는 언제 들어도 아름답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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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브리 페스티벌'을 관람하기 위해 롯데콘서트홀을 찾았다.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작품들로 가득한 지브리인만큼, 설렘으로 반짝이는 눈을 가진 관객들로 관객석이 꽉 차 있었다.


공연 1부는 다양한 클래식 작곡가별 스타일로 재해석한 지브리의 음악, 2부는 남녀노소 사랑받는 스튜디오 지브리의 오리지널 OST 연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간중간 송영민 피아니스트의 곡 설명과 해설을 통해 이 곡이 어떤 식으로 편곡되었는지, 어떤 느낌을 더 잘 살렸는지 포인트에 집중하며 더욱 풍부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첫 곡 '이웃집 토토로'의 OST '바람이 지나가는 길'로 공연이 시작되었다. 프랑스 클래식 작곡가 드뷔시 '꿈'의 편곡 버전이었는데, 드뷔시 특유의 뭉게구름같은 선율이 원곡의 부드러운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가 배가 되었다. 그 뒤로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익숙하고 반가운 작품들의 ost 연주가 이어졌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로 잘 알려진 '언제나 몇번이라도'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클래식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로 편곡된 버전이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프랑스 작곡가 라벨이 상상 속의 스페인 왕녀를 떠올리며 작곡한 곡이었는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ost인 '그날의 강'의 잔잔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와 유독 잘 어울렸다.

 

1부 공연을 감상하는 내내 시대도, 장르도 전혀 다른 두 곡들이 마치 운명처럼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점이 신기했다.

 

익숙한 지브리의 선율에 클래식이 더욱 친숙하게 다가왔던 점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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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적이었던 곡은 작곡가 드뷔시 '눈 위의 발자국' 편곡 버전이었던 '원령공주' ost였다.

 

작품의 강렬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부분이었는데, 동양에 관심이 많았던 작곡가 드뷔시의 5음계의 조화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얼어붙은 눈밭의 풍경에서 앞으로도 뒤로도 더 나아가지 못하는, 부드럽고도 슬픈 '눈 위의 발자곡'의 분위기가 '원령공주'의 아름다운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2부 지브리 오리지널 곡에서도 유독 반가운 곡들이 많았다. 대표적인 지브리의 명국인 '하울의 움직이는 성' OST인 '인생의 회전목마'부터 '벼랑 위의 포뇨', '마녀 배달부 키키'의 OST가 이어졌다. 때론 아름다운 하프의 선율에, 부드러운 피아노와 선명한 바이올린 독주에, 웅장한 호른의 연주에 압도되고 또 감동하는 시간들이었다.


음악이 어떤 아름다움을 담는 그릇이라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또 들었던 어떤 날 내게 필요했던건 위로였을까? 희망이었을까. 지브리 음악엔 희망이 있다. 아름다웠던 어떤 순간의 그리움, 반가움, 그리고 낭만이 있다. 풍성한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가득한 공연 내내 내 안에 행복함이 가득 차는 것을 느꼈다.

 

지브리와 클래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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