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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세상 최고의 인재들은 지난 주말 어디에 있었을까? 1년 365일, 하루 24시간 바쁜 일상을 보내며 매일같이 시간에 쫓기는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잠시 짬이 생기거나 주말, 휴일이면 일부러라도 바쁜 시간을 쪼개 미술관을 방문해 관람과 사색, 관조와 통찰의 시간을 갖는다. 과연 이들은 미술관에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걸까?


바야흐로 근면과 성실만으로는 최고가 되기 어려운 복잡한 시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종종 필요한건 남다른 감성,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력, 분야를 뛰어넘는 통섭력을 갖춘 문제해결 능력이다. 조직의 인재가 되기 위해선 커뮤니케이션과 의사결정, 협력과 경쟁 관계에 대한 배움이 필요하다. 이러한 배움을 우리는 과연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 따로 교육을 받거나 학원을 다녀야 하는 걸까?


우리는 다시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면서까지 미술관에 방문해 얻으려는 것은 무엇일까? - 이는 다시 두 번째 질문의 답으로 이어진다. 비즈니스적 문제 해결 능력과 지혜, 더 나아가 인생 전반에 대한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미술관은 단순히 아름다운 미술품을 모아놓거나 전시하는 곳이 아닌,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인 인간의 감성과 통찰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무한한 인사이트를 가진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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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의도에서 이 책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왜 미술관에 갈까?'는 유럽과 미국 그리고 아시아의 최고경영자, 유명한 석학 도는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재들이 즐겨 찾는다고 알려진 스무 군데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무엇’으로 일하는지, ‘누구’와 일하는지, ‘어떻게’ 일하는지, ‘어디에서’ 일하는지,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이렇게 크게 총 5가지의 챕터 분류로 나뉘어져 있다. 각각의 챕터에서는 해당 미술관과 그를 만든 사람들, 소장된 작품들, 연관된 에피소드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다루면서 기업들의 실제 경영활동과 다양한 이야기 등을 담아 보다 실질적이 배움을 얻을 수 있고 손쉬운 이해가 가능하다.


‘박물관, 오페라, 탕수육, 럭비, 그리고 레고.’ 이 다섯 가지만 있으면 무인도에 혼자 살아도 전혀 심심함을 못 느낄 진정한 오덕후로 본인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의 특이한 이력도 흥미롭다. 현재 국내 대기업 계열사에서 혁신신약 개발 팀장을 맡고 있는 부지런한 직장인이기도 한 저자는 직장인 문화예술 커뮤니티인 ‘르네상스 워커스’를 창립해 10여년간 대표를 맡아 이끌었으며,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자발적 학습 소모임 운영 지원, 대학생 멘토링 등의 재능 기부 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한다. 뭔가, 미술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 입장에서 솔깃한 활동이기도 했다.


그렇게 수백개의 미술관과 박물관 중 저자가 고르고 골라 엄선한 20개의 미술관을 보기 위해 책장을 펼쳤다.




소장품 하나 없이도 최고의 미술관은 만들어진다 – 모리미술관, 일본 도쿄


 

모리 미술관이 익숙한 이유는 1년 전의 도쿄 여행 때문이다. 친구와 훌쩍 떠났던 도쿄 여행의 행선지 후보 중 하나였는데, 결국 시간이 안 맞아 방문하지 못했던게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일본은 물론 세계에서도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롯본기, 그 중에서도 가장 노른자 위에 들어선 초고층빌딩의 최상위층에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모리 미술관은 막대한 운영비용과 상설 전시관이 없는, 미술관에 대해 좀 안다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도저히 잘될 수 없는’ 미술관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2003년 10월 개관한 이래 여러 차례연간 최다 관람객 수를 갱신하며 전무후무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우리는 모리 미술관의 ‘빌림의 미학’을 확인할 수 있다.


시작부터 ‘빌림’의 역사였던 모리 미술관은 처음 개관부터 일본인이 아닌 영국인 미술행정가 데이빗 엘리엇을 초대 관장으로 영입했으며, 입주하고 있는 모리타워의 야경을 ‘빌려’ 미술관만의 랜드마크로 만들었다. 또한 고층 빌딩의 상층부에 위치하다보니 휴식용 야외 공간이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모리타워 지상층 일부를 ‘빌려’ 미술품 중 일부를 전시했다. 새로운 기획전 홍보를 위해 베테랑 택시 기사들에게 미술관 큐레이팅을 제공하는 구전 마케팅을 시도하기도 했다.


다음에 도쿄에 방문한다면 도쿄의 야경과 함께 꼭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설 전시가 아닌 100% 기획 전시이기에, 매번 새로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악한들이 만들어낸 착한 미술관 – 대영 박물관, 영국


 

‘악한들이 만들어낸 착한 미술관’이라니, 그 모순적임에 절로 흥미가 느껴졌던 ‘대영 박물관’이다. 다른 나라로부터 수집하고 강탈한 영국 제국주의의 성과물이라는 관점에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저자는 역설적으로 ‘타협을 통해 합의를 이뤄나가는 정치력과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협상력’을 발견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실제로 과거 제국주의 시절 피지배 국가로부터 영국 정부가 받는 유물 반환에 대한 압박은 상상 이상이라고 한다. 각종 국제회의 때마다 문화재 반환이 거론되고, 대통령이나 총리 등의 국가수반이 영국을 방문하면 정상회담의 주요 의제로 반드시 언급하는 것이 ‘대영 박물관에 소장된 자국의 유물 반환’이라고 하니 말을 다 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가끔 선심 쓰듯 무기한 장기대여라는 형태로 소속 국가에 전시를 허용하는 경우는 있어도, 대영 박물관이 주요 유물을 되돌려줬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그로 인해 심각한 외교 마찰을 빚거나, 국민 간에 극단적인 의견 대립이 있었다는 소식도 들리지 않고 있는데, 과연 그 비결은 무엇일까?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관점으로 대영 박물관, 더 나아가 영국이라는 나라를 바라볼 수 있어서 유독 신선했다.




내게 뭘 원하는 거요? 대체 뭘! - 오르세 미술관, 프랑스 파리


 

개인적으로 책을 읽은 후 가장 가보고 싶은 미술관은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이 되었다. 과거 화려했던 기차역을 미술관으로 재탄생 시킨 미술관, 파리의 센 강이 내려다보이는 유독 석양이 지는 시간에 아름다운 미술관. 오르세 미술관 3층 야외 테라스에서는 몽마르드 언덕의 샤크레쾨르 성당 앞마당, 에펠탑 건너편 샤이오궁과 더불어 파리 시내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볼 수 있는 명소로 꼽히곤 한다고 한다.


동시에 알게 된 경영자의 숙명, ‘모순 경영’의 개념도 흥미로웠다. 일본 오오시마의 미하라 화산 폭발을 수습하며, 3시간째 고작 화산의 이름을 가지고 씨름하고 있는 공무원과 관료들에게 ‘화산이 터지고 생명이 위험한데, 일을 오른손으로 하건 왼손으로 하건 무슨 상관인가!’라며 일갈한 장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조직이 가장 ‘전략적’으로 의사결정을 해야 할 순간에 ‘정략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우를 범하는 경우의 대표적인 예시로 소개되었는데, 왼손과 오른손에 대한 비유가 유독 직관적이어서 와닿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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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나니 마치 20개의 미술관을 직접 방문한 듯 생생한 기분이 들었다. 일류 문화예술의 보고인 미술관과 박물관은, 다른 의미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영대학원(MBA) 못지 않나 싶다. 직접 방문하고픈 미술관이 생긴건 덤이다.


다양한 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한 지식, 더 나아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경영지식과 리더십을 배우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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