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저 먼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 도서 '호라이즌'
누군가 달아나려 한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일까?
글 입력 2025.01.2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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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먼 바다 끝엔 뭐가 있을까, 다른 무언가 세상과는 먼 얘기’
작년 여름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달리며 보아 ‘아틀란티스 소녀’를 흥얼거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평생을 내륙(?) 지방에서 살아온 내가 바다에 가까워질 때마다 부르게 되는 노래다. 파란 하늘과 그보다 더 파아란 바다가 만나는 드넓은 수평선을 마침내 마주했을 때까지. 철썩거리는 파도와 끼룩거리는 갈매기의 소리를 배경음 삼아 바라본 반짝이는 바다엔, 언제나 내가 꿈꿔온 낭만이 가득 뿌려져 있다.
그래, 정말로 저 먼 바다 끝엔 대체 뭐가 있을까?
막연한 물음을 넘어 용감히 해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저 파아란 수평선 너머로 평생을 나아간 사람이 있다. 미국의 자연주의 작가이자 여행가 ‘베리 로페즈’가 그 주인공이다.책 ‘호라이즌’은 ‘우리 시대 가장 중요한 자연주의자’인 베리 로페즈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집필한 장편 논픽션으로 북태평양 동부, 캐나다 북극권, 갈라파고스 제도, 아프리카 케냐, 호주, 남극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얻은 평생의 경험과 배움을 집대성한 저술이다. 이 책에서 로페즈는 지구라는 장소와 시간이 선사해주는 경이로움을 만끽하는 한편, 그곳을 지나쳐 간 오래전 인간들의 삶을 공감 속에서 반추하고, 지금의 인간들을 연민의 마음으로 떠올린다.바닷물이 턱에 닿자 아이가 멈춰 선다. 이제 어머니는 아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아이는 더 멀리 가고 싶고, 해협의 머나먼 가장자리에 있는 작은 섬 터키록도 헤엄쳐서 지나고 싶고, 아니 그보다 더 멀리 스카치캡스섬 너머까지도 가고 싶다. 그 너머에는 수평선이 있다. 텅 빈 페이지 하나가.- 도서 '호라이즌' 중이 책은 머매러넥 항구에서 물장구를 치는 남자아이와, 하와이에서 손자와 함께 대참사에 관해 이야기하는 할아버지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모두 같은 사람, ‘베리 로페즈’ 본인이다. 서두에 작가 본인이 밝혔듯 ‘호라이즌’은 작가의 평생에 걸친 여행기이자 자서전이며, 결국엔 남자아이와 할아버지인 두 시간 사이의 세월에 관한 이야기이다.
평생에 걸쳐 저 수평선 너머로 떠났던 누군가의 여행은 곧 인생의 길이 되었고, 삶이 되었고, 이야기가 되었다. 그 기나긴 여정 속에서 베리 로페즈는 의미 없는 죽음을 목도했고 어린아이 때 배웠던 모든 계율이 깨어지는 것을 목격했으며 숨 막히게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다고 고백한다. 천진난만하게 바닷가에서 물장구를 치던 어린 남자아이는 그 모든 세월을 겪고 손자와 함께 다시 그 바다 앞에 섰다. 평생 떠나곤 했던 그 무한히 새파란 수평선 앞에서 그가 이제 느끼는건 다만, 가슴 뛰는 모험심 뿐만이 아닌 수많은 고통과 죽음과 삶, 그럼에도 찬란한 어떤 아름다움이다.
특유의 통찰력과 관찰력으로 묘사되는 그가 경험한 세계 곳곳의 이야기와 함께 개인적으로 이어지는 베리 로페즈 작가의 삶 자체가 매우 흥미진진했다. 정확히 말하면 정말 ‘파란만장’한 삶이라고 느꼈다.
작은 머메러넥 항구에서 유년기를 보냈던 작가는 캘리포니아 남부, 맨해튼으로 거주지를 옮기며 살아왔고 뉴욕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미술가를 꿈꿨고 사진을 찍었으며 연극계에 관심을 가졌다. 1950년대 제 1,2차 세계대전 직후라는 시대적 상황 안에서 항공 엔지니어를 꿈꾸고 관련 학과에 진학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 어디론가 떠나는 ‘여행’을 즐겼다.
주기적으로 대학을 떠나, 캠퍼스 밖에 불법으로 주차해두었던 1951년식 뷰익로드마스터를 타고 미국 중서부 지역 북부와 남부의 풍경 탐험했을 젊은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미시건주 북부나 미시시파 강 서쪽에 잇는 아이오와주 차를 몰고 수백 킬로미터를 달리며, ‘여행이 내 안의 무언가를 달래준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닫게 되었을 한 젊은 대학생의 모습을 말이다. 지리, 예술, 음식, 상인들과 나눈 대화 등 여행을 통해 만난 자극은 언제나 그를 들뜨게 했고, 그의 삶에서 그가 살아가는 방식의 틀이 되었다.
가정을 꾸리고, 석사 과정으로 공부를 이어가며 직업을 가지게 될 때까지도 그의 여행은 멈추지 않았다. 미국 동부와 서부, 더 나아가 호주, 일본, 남태평양, 그리고 남극과 북극까지... 그 모든 걸음마다 그를 매료시켰고 깊이 성찰하게 한 풍경들이 고스란히 이 책 속에 담겨져 있다. 세심하고 담담한 시선으로 작가가 바라본 풍경 사이사이엔 그 모든 여정을 통해 깨닫게 된 삶의 진리가 물 흐르듯 섞여 있다. 때론 티 없이 맑은 물 안을 들여다보듯 투명하고 청명한 느낌이 들곤 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동부 적도 아프리카, 투르카나 호수 서부 고지와 투르크웰강 유역의 ‘자칼 캠프’ 여행 부분이었다. 우리에겐 지명조차 낯선 아프리카에서 작가는 인류학자들과 함께 그 지역 원주민인 투르카나 족과 교류하며 생활한다. 낮에는 염소를 흥정하고, 밤에는 쏟아질듯한 별을 관찰한다. 고인류학자들과 함께한 다윈의 ‘진화론’을 뒷받침할 흥미로운 사례들을 발견하고 소개한다. 잔혹했던 과거 제국주의시절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적인 삶을 응시한다. 마치 눈 앞에 가본 적도 없는 아프리카의 한 마을이 생생하게 펼쳐지는 느낌이었다.평생 이런저런 결심에 이끌려 다닌 나의 인생은 이따금 느끼는 황홀과 이따금 느끼는 슬픔으로 이루어진 삶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의 인생과 그리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머나먼 장소들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 그리고 그 갈망에 부응하여 그토록 큰 결단력으로 행동한 것이 나에게, 그리고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여한 의미를 들 수 있을 것이다.나는 거의 의도치 않게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방랑자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도서 '호라이즌' 중그가 책 속에서 재차 말했듯, 어쩌면 작가는 꽤 행운인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평선 너머를 꿈꾸지만, 실제로 그 너머를 향해 훌쩍 떠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임지고 있는 일상, 돈, 시간, 기회 그 모든 것들이 우리를 지금 이 곳에 계속 머무르게 붙잡는다. 남극이나 북극, 세상의 오지와 같은 곳은 방문조차 쉽지 않은 곳이다.
그렇기에 작가가 전달하는, 평생에 걸친 그의 여정과 그 속의 투명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신선함과 새로움을 준다. 그는 일평생 감사한 행운으로 그가 겪었던 모든 경험과 삶의 깨달음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개인적으론 그 모든 여정의 중간중간 작가가 발견하고 순수히 감탄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이 참 마음에 들었다. 지나친 예찬이나 감탄사 없이도, 그저 순수한 관찰과 담백한 묘사로 이어지는 글 속에서 작가의 진심을 발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고 잔혹한 그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세상이란 삶이란, 지금 이 순간이란 참 아름답다는걸 새삼 깨닫게 되었다.
수평선 너머로 훌쩍 떠나 나의 삶을 물들일 새로운 풍경을 마주하고 싶어지는 책이었다.[박주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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