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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그림으로 스토리를 전달하는 최고의 이야기꾼’이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

 

이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앤서니 브라운전 : 마스터 오브 스토리텔링’에서는 <거울 속으로>부터 <고릴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제부터 변할 거란다>, <꿈꾸는 윌리> 그리고 최근작 <나와 스크러피, 그리고 바다>, <우리 할아버지>, <자그맣고 커다란 고릴라>에 이르기까지 앤서니 브라운이 펼쳐온 특별한 이야기의 세계를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은 문자와 그림 같은 매체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의사소통의 기술이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온 이 오래된 서사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책, 뉴스, 미술, 영화, 음악, 공연, 과학, 요리, 광고에 이르기까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다양하게 쓰이며 우리 곁에 머물고 있다.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중요한 방식이기도 하다. 그리고 진심이 담긴 좋은 이야기는 감동과 웃음을 주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가치와 영향력을 지닌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그림책 작가, ‘고릴라 할아버지' 앤서니 브라운은 지난 50년 동안 그런 이야기를 꾸준히 그려왔다. 그의 책은 재치 있는 유머로 미소를 자아내고, 때로는 깊은 감동을 전하며, 어른조차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스스로를 ‘그림책을 그리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으로 소개하는 그는 평소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 만나는 사람들, 자주 접하는 자연과 사물을 유심히 살피고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는 작가이다. 그가 그림책의 아이디어를 얻는 곳은 ‘지금, 이곳, 나의 일상 속에서'다. 어린 시절에 경험한 일들,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일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영화, 미술, 꿈의 이야기는 곧 그의 아이디어이자 이야기의 원천이 된다.

 

어릴 적부터 이야기 짓기를 좋아했던 그는 글과 그림의 조화를 통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데 몰두해왔다. 종종 그림만으로도 서사를 전개하며, 글이 담지 못하는 감정과 분위기를 섬세하게 그려내는 뛰어난 시각적 스토리텔링의 대가로 평가받고 있다.
 

앤서니 브라운이 처음부터 그림책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던 것은 아니었다. 브라운은 대학 졸업 후 병원에서 수술 장면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했고, 이후 고든 프레이저 갤러리에서 연하장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렸다. 그러던 중 그림책에 흥미를 느껴 여러 출판사에 자신의 그림을 보내기 시작했고, 글과 그림을 함께 담아낼 수 있는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그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그가 첫 번째 책을 펴낸지 어느덧 50년 가까이 흘렀다.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그의 창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노련한 거장은 안주하지 않고 매일 펜과 붓을 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실험적인 기법을 시도하며, 일상 속에서 영감을 포착해내는 그의 작업은 지금도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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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들어가자마자 초현실주의 미술에 영향을 받은 그의 첫 번째 그림책 <거울 속으로>부터, 글과 그림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스토리텔링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고릴라>, 한국에서 특히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돼지책>, 그리고 성격이 정반대인 남매의 신비한 모험을 다룬 <터널>등, 1970~80년대에 발표된 그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그 중 어린시절에도 재미있게 읽었던 동화책 <돼지책>이 반가웠다.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앤서니 브라운의 책이라면 어렵지 않게 <돼지책>을 떠올리게 된다. ‘아주 중요한 회사'에 다니는 피곳 씨와 ’아주 중요한 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은 아무런 집안일도 하지 않고 가사 노동은 오로지 엄마의 몫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너희는 돼지야(You are pigs)’라는 쪽지 한 장을 남기고 집을 나가버리고 피곳 씨와 두 아들은 돼지로 변하고 만다.

 

이 작품에서 브라운은 책의 곳곳에 돼지로 변하게 될 주인공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숨은 그림들을 배치했다. 벽에 비친 그림자, 벽지, 꽃병 등등 ‘돼지'들은 그림 곳곳에 숨어있다. 이런 돼지의 이미지와 상황들은 엄마가 돌아오면서 사라지게 된다. 브라운은 자신이 아는 한 가족에게서 피곳씨네 가족에 대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앤서니 브라운 특유의 흥미진진한 ‘스토리텔링'과 곳곳에 숨겨져있는 이스터에그인 ’돼지'를 찾는 재미기 쏠쏠하다. 어린 시절 한장 한장 책을 넘기면서도 숨은 퍼즐을 찾는 것처럼 유심히 그림을 관찰하느라 두번이고 세번이고 책을 반복해 읽곤 했었다. 여전히 따뜻하고 섬세한 그림체는 어른이 된 지금도 잊고 살고 있었던 동심을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앤서니 브라운이 그린 다채로운 표정의 ‘고릴라'였다. 브라운의 작품을 접한 독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그의 책에는 왜 고릴라가 자주 등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고릴라는 그의 그림책 세계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로 때로는 이야기의 중심에 놓이기도 하고, 고릴라와 관련이 없는 이이기 속에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한다.

 

앤서니 브라운에게 고릴라는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특별한 존재이다. 그에게 고릴라는 강인하면서도 다정했던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로, 고릴라를 그리는 일은 그 자체로 환상적인 경험이라고 한다. 얼굴의 세밀한 주름과 풍부한 표정, 털의 질감, 특히 사람의 눈처럼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는 고릴라의 눈을 그릴때 가장 즐겁다고 한다. 이것을 알고 다시 그의 작품들을 보자니 유독 생생하고 익살스러운 표정의 다양한 고릴라들이 더욱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졌다.

 

중간중간 마련된 포토존부터 친절하고 따뜻하게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작품들까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든 연령이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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