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상대방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사람]

판단이라는 사소한 폭력에 대하여
글 입력 2019.11.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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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모카신을 신고 1마일을 걷기 전에는 그 상대방을 판단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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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수우 족의 기도문 중에 나오는 내용이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원칙으로 두는 가치관이기도 하다. 살다 보면 날 짜증 나게 하고,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 나도 그런 사람을 만나면 속에서 열불이 났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흘러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에겐 속사정이 있었다. 물론 정말 악의적으로 폐를 끼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일지라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생각은 여러 일을 겪으며 차츰차츰 빚어진 것이었다.

 

 

 

마감 이틀 전에, 못하겠다고 선언한 작가님.


 

작가 지망생들의 소설들을 모아 소설집으로 출간하는 오라드리밍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였다. 그때 한 작가님이 마감 날짜가 다 되도록 작품을 올려주지 않았다. 오라드리밍 팀원들이 소설을 읽어야 합평을 해줄 수 있는데 시간을 좀 더 달라고 계속해서 요청했다. 이미 소설을 쓸 시간은 3주 정도 준 상태였다. 이해하고 마감 날짜를 늘려주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중에 결국 약속한 마감일 이틀 전에 연락을 받았다.

 

“팀장님. 죄송합니다. 저 소설 못 쓰겠습니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하차하겠습니다.

 

끝까지 믿고 기다리고 있던 나로서는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이 작가님이 하차하면 소설집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작가의 수가 너무 적어지게 되었다. 나는 내색은 안 했지만 속으로 그 작가님을 원망했다.

 

‘전에 충분히 공지했고, 한 달 정도를 시간을 주었는데 그동안 뭘 한 거지? 게다가 마감일 이틀 전에 말해주다니.’

 

시간이 흘러, 나중에 이 작가님과 일대일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나에게 다시 한번 사과하며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았다. 자신이 그때 맡은 일이 너무 많았기에 오라드리밍 프로젝트까지 하면 자신에게 마음의 병이 생길 것 같았다고 말이다. 소설을 끝까지 써보려고 원고를 붙들고 늘어졌지만, 도저히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마감일 이틀 전에 알려주게 된 것이었다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어서 시작한 프로젝트인데 그 프로젝트로 인해 우리 팀원이 마음이 아프면 그게 무슨 소용일까 싶었다. 정확한 사정도 모르면서 그 작가를 속으로 원망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이 작가님은 비록 오라드리밍 프로젝트에 작가로 참여하진 못했지만, 팀원으로서 끝까지 오라드리밍 프로젝트를 도와주었다.

 

 

 

사람은 생각보다 바보가 아니야.


 

가정환경이 어려운 친구가 있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에서 친구가 자신의 상황을 이야기해줬다. 가정에서의 폭력을 못 이겨 집을 준비 없이 뛰쳐나왔다고. 나는 그 친구가 밖을 나다니는 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안타까운 마음에 나에게 연락을 하지 그랬냐고 말했다. 난 내가 아끼는 친구가 나에게 연락을 했다면 분명 도와줬을 거였다. 하지만 친구의 다음 말을 듣고 나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친구는 그때 가장이 자신의 핸드폰을 통해 위치 추적을 할까 봐 핸드폰을 켜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그 친구와 헤어진 뒤 혼자서 생각했다. ‘이렇게 하지 그랬어.’라는 말은 그 사람이 그 방법은 생각도 안 해봤을 거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과연 그 사람이 그 방법을 생각을 못 해봤을까. 사람은 생각보다 바보가 아니다. 내가 봤을 때 ‘왜 저런 방법은 하지 않지?’ 생각할 때쯤엔, 그 사람은 이미 그 방법을 시도해봤는데 안 되었거나 그 방법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나는 친구가 어떤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닿기도 전에, 힐책하는 말을 먼저 한 것이었다.

 

 

 

타인을 이해하는 건 왜 필요할까?


 

대학교 3학년 때 팀플을 하던 중, 피피티 제작을 맡은 사람이 올려준 피피티를 보고 나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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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대학생이 만들었다기엔 믿기지 않는 퀄리티의 피피티였다. 나는 단톡방에 올라온 저 피피티를 보고 정말로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 일단 저분은 나보다 나이가 많은 선배 언니였는데, 고학년이 되도록 피피티 하나 제대로 못 만든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다음으로는 어떻게 상황을 해결해야 할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이미 각자 해야 할 일을 공평하게 분배한 상황이었는데, 피피티를 누군가 새로 만들어야 할 것이 뻔했다. 나는 아빠에게 그 선배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했다. 내 편을 들어주길 바랐건만 아빠는 네가 조장이니까 책임지고 상황을 잘 해결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서운해하자, 아빠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생각해봐. 저 언니가 저렇게 피피티를 못 만드는 이유가 뭐겠니. 너네랑 같은 조인데 설마 조 점수 꼴찌 하고 싶어서 일부러 저렇게 만들었겠어? 정말 피피티 만드는 법을 모르는 거야, 저 사람은. 누군가 알려줘야 해.”

 

그 말에 나는 불만에 찬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 나이 되도록 피피티 하나 만드는 법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아마 아무도 안 알려준 거야. 그냥 저 언니 이름 빼고, 피피티 우리끼리 만들자 식으로 하는 팀플들이 많았겠지. 근데 그러면 저 사람은 영원히 피피티 만드는 법도 모르게 돼. 네가 조장이니까 알려줘.”

 

그 말이 일리는 있었던 게, 나는 그 언니가 평소에 누군가와 같이 다니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어딜 가도 혼자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다. 나는 나도 바쁜데 저 언니에게 피피티 만드는 법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에 오만상을 찌푸렸다. 그 모습을 본 아빠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생각해 봐. 네가 어느 회사에 들어갔는데, 네가 전혀 할 줄 모르는 일을 맡은 거야. 그래서 네가 알려달라고 대리님 찾아갔는데 대리님이 '그 나이 되도록 이거 할 줄도 몰라?'라고 말한다면 어떻겠니."

 

그 뒤에 아빠가 하신 말씀은, 내가 어떤 인간 관계를 맺을 때마다 드문드문 떠올랐다.


 

대리님이 ‘신입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한다면 넌 도움을 받게 되겠지. 하지만 대리님이 ‘저 나이에 할 줄 모르는 건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을 하신다면 너는 한순간에 한심한 애가 되는 거야.

 

 

 

 

넌 이런 사람이야,라는 사소한 폭력.


 

“과거 제 모습이기도 한데 그땐 ‘넌 이런 사람이야’라고 하면서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고 단죄했어요. 실제로 우린 서로를 다 알지 못하잖아요. 다 안다고 생각하면 결과적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쇼코의 미소’와 ‘내게 무해한 사람’ 책을 쓴 최은영 작가님의 인터뷰 내용이다. 한 사람의 존재는 그 끝이 없는 우주와도 같다고 하는 ‘소우주’의 개념이 있다. 한 존재를 오롯이 이해하는 건 우주를 아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생 타인을 모르고 살 것이다. 쟤가 왜 저러는지, 왜 나와 다른 행동을 하는지. 

 

하지만 우리는 아는 척을 하고 싶어 하고, 한 존재 앞에 내가 정의한 타이틀을 붙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걸 스스로 경계하고자 한다. 어떤 행동엔 분명히 원인이 있을 텐데, 그 원인을 모르고 판단해버리는 건 맥락을 잘라버린 문장이나 다름이 없다. 그리고 그런 문장은 억지로 깨진 그릇의 조각처럼 날카롭다는 것도 잘 안다. 누군가의 이해가 없다면 나도 얼마든지 이상하고 영원히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최은영 작가님의 작품 모래로 지은 집 구절 중 항상 마음에 남는 구절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고통을 겪는 당사자를 포함해서 어느 누구도 그 고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단할 권리가 없다는 것도.”

 

 - 작품 모래로 지은 집 中

 




[박해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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