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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동물들 - 인간동물들 [연극]

연극 '인간동물들'에 대한 개인적 단상

by 문경란 에디터
2026.08.3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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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학서를 한 권 집어 들고 여러 철학가들의 주장과 마주하다 보면, 어김없이 만나게 되는 명제가 있다.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로 대표되는, 인간이 여타 동물보다 우월한 존재라는 주장이다. 인간은 왜 다른 동물보다 우월한가. 그 근거를 따라가 보면 대체로 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답에 도달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 하면 할수록, 인간이 지성을 지녔기 때문도, 본능보다 이성을 추구하기 때문도, 많은 기술과 지식을 축적했기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어쩌면 답은 단순하다. 우리가 인간이고, 스스로 우월하다고 '말하기'를, 즉 스스로를 정의하기를 시도하기 때문이라는 것.


    사실 본능을 거스르고 이성을 지키는 일조차, 생태계 전체를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았을 때는 그리 이상적인 행태가 아니다. 인간은 대체로 이성을 사용해 가장 자연적인 메커니즘을 거스르고, 그 끝에서 자연을 소비하고 오염시키는 파멸적인 행태를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 즉 타자와 자신을 구별짓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실상 인간과 동물은 다르지 않다고도, 그렇다고 같다고도 할 수 없으며, 애초에 우열을 따질 수 없는 대상들이다. 종 자체가 지닌 대체적인 특성들을 논하자면 물론 서로 다를 것이다. 다만 그 모두가 세계 안에서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를 규정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인간은 자꾸만 되지 않는 일을 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여러 비극을 야기하며, 끝내 스스로도 무너진다. 이 자기파멸적 행위를 하나의 극으로 옮겨 놓은 작품이 바로 연극 『인간동물들』이다.



    포스터_인간동물들.jpg


     

    『인간동물들』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어떻게 자신의 객관적 위치를 망각하고, 이를 오인한 끝에 처참한 비극을 초래하는지, 그 일련의 과정을 담아낸다. 극 중 유리 온실 안에 스스로를 가둔 인간들의 모습은, 묘하게도 동물원에 들어간 동물들의 모습과 닮아 있다. 더 이상 동물이 인간으로 인해 위협받는 구조가 아니라, 인간이 동물의 존재를 과도하게 인식하며 그들을 위협 대상으로 규정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이 위기의 끝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극단적인 학살을 택함으로써, 인간 한정의 최선의 방식으로 사건을 종결시키려 한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그리고 그 이해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참극은 벌어진다. 인간이 인간을 이해하려다가, 인간이 동물을 이해하려다가, 혹은 반대로 서로를 거부하려다가__그렇게 균열은 시작된다.


    균열은 대개 이러한 고집스러운 관념에서 비롯된다. 상대를 하등하다 여기고, 일방적인 시선과 감정을 쏟아내는 대상으로 삼는 것. 그렇게 유리 온실 밖의 동물들을 모두 죽이는 대량 살육의 현장이 만들어지고, 인간은 그 죽음을 또다시 제멋대로 애도한다. 그리고는 이 비극이 당연하게 곧 끝나고, 다시 인간에게 끝없는 자유와 존엄이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염원인지, 오인인지, 혹은 타당한 예측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들이 세계를 어떠한 시선과 관점으로 해석하고 있는지는 이 지점에서 어렴풋이 드러난다.


    이 극의 연출적 장치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인물들은 대체로 관객석을 마주 보고 연기한다. 그로 인해 관객은 더 이상 방관자로서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인물들과 마주 앉는 순간, 관객 역시 이 비극의 온실 속에 함께 앉아 있는 셈이 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인물 설정에서도 발견된다. 유리 밖의 동물들을 모두 학살하는 것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다 죽여야 한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갈등 양상 속에서 인물 간의 선과 악을 가르기란 쉽지 않다. 그들의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저마다의 주장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작 집중해야 할 것은, 이 일련의 과정들이 결국 전체적인 '혼란'으로 수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 극심한 혼란스러움이 실제 우리가 사는 세계와는 단절된 감각으로 느껴진다는 데서, 오히려 하나의 진실이 드러난다. 이러한 디스토피아가 도래하기 전까지, 우리는 여전히 인간 중심적 세계관에 안주하고 있으리라는 사실 말이다.


    사실 다른 동물 종들도 저마다의 우월함을 지니고 있다. 네 다리로 빠르게 달리는 치타, 날개로 하늘을 나는 비둘기, 이빨과 발톱으로 사냥감을 제압하는 숲과 밀림의 포식자들, 바다와 육지에서 모두 숨 쉴 수 있는 양서류, 헤엄에 능한 해양 생물들까지. 이러한 우월성은 동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자연 전체로 확산된다. 식물도, 어쩌면 무생물조차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러할지 모른다. 인간도 결국 동물의 한 종일 뿐이다. 인간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자신이 동물과는 전혀 다른 부류의 우등 생명체라는 착각, 바로 그 착각 자체다.


    인간은 스스로를 지구를 좌우하는 최우등 생명체라 생각하지만, 실상은 작은 균열에도 쉽게 자멸하고 마는 심약함을 지니고 있다. 다른 종들의 멸종을 방관하며 그들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내지만, 누구보다 종말을 피하려 안달하는 인간 역시 결국 그들과 같이 멸종할 수 있다. 인간이 자멸하는 이유는 이러한 사고방식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극 중 인물들이 마찰하고 갈등하는 이유는,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중심으로 저마다 자신의 입장을 정의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각자의 정의는 결코 동일하지 않으며, 서로 상충하는 지점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그 간극을 이해하지도, 수용하지도 못하는 지점에서 심리적 자멸은 시작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면,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인간도 결국 동물이라는 사실 앞에서 말이다. "딸기가 과일 중에 제일 맛있는가"를 물으면 대답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맛있다는 사람도, 그렇지 않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 이유 또한 모두 다를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종과 종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멸종의 시대를 맞이하는 것은 인간이라도 피해 갈 수 없다. 언젠가 도래할 인간 멸종의 시대, 그것은 인간 군상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자멸의 종말은 아닐지. 그것이야말로, 그저 사라지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일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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