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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너와 우리의 물결 - 연극 너울THE SWELL

내 심장이 너울거려, 너 때문에

by 김정현 에디터
2026.05.15 08:45

 

 

"내 심장이 너울거려, 너 때문에"

   

극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였다. 익숙하지 않은 단어지만, 맥락을 알고 있었기에 왜 그 단어를 꺼냈는지 바로 이해됐다. 무언가 울렁울렁거린다는 것, 물결친다는 것, 요동치고 있다는 뜻이겠지.


역시나, 넓은 물에서 크게 움직이는 물결이라는 뜻이었다. 상대에게 그런 마음을 느꼈다는 건 참으로 큰 일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사람이 내 마음을 그만큼 크게 흔들어버렸다는 이야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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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바다에서 물결이 네모네모하게 너울거리는 걸 본 적이 있다. 신기하기도 하고, 그대로 집어삼켜질 것 같은 느낌에 친구가 부르는 소리도 못 들은 채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그 뒤로 한강이나 작은 내천 앞에 서면 습관처럼 물을 들여다보게 됐는데, 그때 같은 감각은 다시 오지 않았다. 윤슬이 예쁘다 싶기도 하고, 비 오는 날 흩어지는 물결이 신기하다 싶기도 하지만, 그때만큼 깊이 빠져드는 느낌은 아니다.


이제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순간 나를 사로잡은 건 단순한 시각적 신기함이 아니었다. 너울 안에서 살아 움직이는 내 마음소리, 그 맥박처럼 뛰어가는 내 마음소리를 직접 감지했던 거다. 그 안에서 울렁거리는 것은 바다의 물결이 아니라 내 안의 파동이었고, 그것을 마주하는 순간 나도 그 너울에 삼켜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동시에 어떤 운명처럼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너울이라는 것이 사람을 잠시 삼켜버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내 마음소리에 응답하는 또 다른 무언가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연극 〈너울〉은 세 여자 사이의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너울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그들을 어떻게 삼켜버리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연극 너울_포스터.jpg

 

 

여성 커플인 '벨'과 '플로'는 바다가 보이는 집에서 50대를 보내고 있다. 벨은 질병 후유증으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지만, 플로가 늘 그 곁을 지킨다. 그런 잔잔한 일상에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온다. 그 전화를 계기로 극은 20대 시절, 그들과 함께했던 애니와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고,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세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담아내는 데 있어, 조명과 배우들의 연기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복잡한 감정을 담은 장면들에서 색감과 조명의 밀도가 마음속 물결을 그대로 건드렸고, 배우들이 만들어내는 파동은 객석까지 진하게 전해졌다. 총 6명의 배우가 두 시절의 캐릭터를 각각 3명씩 나눠 맡아 연결하는 구조인데, 이 교차가 주는 리듬감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파동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극 안의 인물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들 역시 잔잔한 물결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다가도,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큰 파도에 순식간에 휩쓸려간다. 그 흐름을 무대, 조명, 움직임, 음악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감정의 너울로 시청각적으로 구현해낸다. 개인적으로 대학 연극동아리의 대본으로 추천해도 좋을만큼, 연출적으로도 도전해볼 만한 요소들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느꼈다.


원작자 아일리 린(Isley Lynn)은 퀴어 서사와 관계, 정체성을 주제로 꾸준히 작업해온 극작가다. 이 작품은 2023년 초연 당시 이브닝 스탠다드 씨어터 어워즈에서 신진 극작가상을 받았고, 올리비에 어워즈와 오프 웨스트엔드 어워즈에도 이름을 올렸다. 수상 이력보다 더 와닿았던 건, 해외 평단이 이 작품을 두고 "우리가 어떻게 사랑하고, 그 선택이 시간 속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지에 대한 탐구"라고 표현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극을 보고 나면 그 말이 과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된다.


2026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지원 선정작인 연극 〈너울(The Swell)〉은 사랑과 그것을 이루는 시간 위에서 끊임없이 넘실거리는 물결을 던진다. 보고 나서도 한동안 그 일렁임이 남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연극 〈너울〉은 5월 8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전 회차 한글자막해설이 제공되며, 예매는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과 NOL 티켓을 통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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