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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고침을 위한 무너짐 - 정희 [공연]

평화로운 기쁨을 찾아가는 여정

by 백승원 에디터
2026.04.30 09:43

 

 

[정희]포스터0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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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리뷰는

연극 '정희'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평화로울 정(靜), 기쁠 희(喜). 서울 후계동 오래된 술집 ‘정희네’의 주인 ‘정희’의 서사를 중심으로 이뤄진 이번 연극은 tvN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한 스핀오프 작품이다. 원작 그대로를 답습하는 작품은 아니다. 원작의 정희가 누군가의 곁을 지키는 따뜻한 인물로 기억되었다면, 이번 무대는 홀로 오랜 시간을 견뎌온 '정희'를 재조명하고, 웃음 뒤에 가려진 그의 진짜 삶을 그려낸다.

 

'나의 아저씨'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이유는 누군가를 구해내는 이야기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과정을 담았기 때문이다. ‘정희’는 이러한 원작의 정서와 맥을 같이 한다. 수리공 가람이 친구 동훈의 소개로 '정희네'를 찾아오면서 무너진 정희의 삶은 아주 느리지만 확실히 회복된다.

 

이 이야기는 대단한 영웅도, 극적인 반전도 없다. 고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변화를 위해서는 먼저 부숴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다. 결국 고쳐야 할 것은 벽의 틈이 아니라, 묵혀둔 마음의 골이라는 사실을 정희, 그리고 관객은 함께 발견해 간다.

 

본 공연은 예스24아트원 3관에서 오는 6월 14일까지 이어진다.

 

 

 

정희의 의식(Ritual)


 

술 취해 돌아온 밤, 정희는 아무도 없는 방에 힘차게 외친다.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 그 적막에 괜한 민망함이 감돈다. 정희는 철저히 혼자다. 그래서 정희는 무너질 수 없다. 무너져서는 안 된다.

 

그날 입은 옷을 빨래하는 저는 취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씻고, 빨래하고, 오늘 하루도 괜찮았다고 말하는 반복된 행위는 단순한 생활 습관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지지 않기 위한 하나의 의식(Ritual)에 가깝다. 이미 속은 문드러졌을지라도 자신은 아직 고장 나지 않았음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종종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척 살아간다. 루틴이라는 건 그런 삶을 붙잡아주기도 하지만, 때론 그것은 맹목적인 의식이 될 때도 많다. 정희의 일상은 그런 현대인의 생존 방식과 닮아 있다.

 

 

 

슬픔 아닌 사랑



어린 정희의 사랑은 할머니였다. 그렇게 정희와 할머니 둘뿐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정희에게는 새로운 사랑이 필요했고, 그 사랑이 ‘상원’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상원의 세상이 넓어지고, 삶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무렵 더 이상 둘은 함께할 수 없었다. 상원은 정희를 남겨두고 산에 올라 ‘승(僧)’이 되었다. 끝내 상원을 포기하지 못한 정희가 상원을 향해 울부짖자, 그는 슬프다고 했다.

 

누가 슬퍼해달래? 사랑해달라고!

 

연극의 막이 내릴 때까지 오래 마음에 남았던 대사다. 사람들은 정희를 안쓰러워하고 그보다 더 가끔 슬퍼한다. 그럼에도 사랑해 주지 않는다. 그건 슬픔을 휘발성이고, 사랑은 지속성인 까닭이다. 그래서 슬픔과 달리 사랑에는 책임이 필요하다. 타인의 연민만으로는 삶이 복구되지 않는다. 결국 사람을 살리는 건 불같은 뜨거움이 아니라 잔잔히 지속되는 온기다. 정희에게는 그런 사랑이 필요했다.

 

 

 

고침을 위한 무너짐


 

친구 동훈의 소개로 찾아온 수리공 가람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전환점을 맞는다. 가게 여러 곳을 찬찬히 뜯어보던 가람의 해답은 담백했다. 고장 났고, 고치면 된다. 그건 ‘정희네’와 ‘정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제대로 수리하기 위해서는 이곳저곳 뜯고 허물어야 했다. 정희는 자신도 기꺼이 그것에 동참하겠다고 말한다.

 

결국 한 번의 무너짐은 필요했다. 마냥 웃으며 괜찮은 척할 게 아니라, 울고불고 난리를 쳐야만 했다. 조금은 추해질지라도 이는 평화로운 기쁨에 다가설 여정일 뿐이다. 다만, 무너질 때만큼은 함께였다. 그건 엄청난 사랑이 아니라 그냥 사람이었다. 어쩌면 나만큼, 나보다 더 큰 외로움과 사연을 안고 있을지 모르는 그런 사람이었다.

 

없으면 무너질 것 같던 벽을 허물고 난 자리에는 커다란 창이 생긴다. 외부와 단절되지 않고, 세상 모든 것과 정희네를 연결해 줄 통로다. 미남을 데려다 줄 것 같은 기대감이 드는 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정희네’로 상원이 찾아온다. 로맨틱한 결말도, 구원 서사도 없다. 누가 지어 줬을지 모를 평화로울 정(靜)에 기쁠 희(喜)라는 이름. 그 두 글자가 정희를 다시 살게 한다.

 

  

 

컬쳐리스트_백승원.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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