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포스터0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604/20260423175720_rmdzebys.jpg)
연극 <정희>가 2026년 3월 31일(화)부터 6월 14일(일)까지 예스24 아트원 3관에서 초연된다. 연극 <정희>는 tvN에서 2018년 방영된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제작된 스핀오프 작품으로, 후계동에서 술집을 하는 정희를 중심에 놓고 독립된 서사를 새롭게 제시한다.
집 고치는 이야기
연극 <정희>의 무대는 서울 후계동의 오래된 술집 ‘정희네’다. 관객석을 기준으로 우측에는 작은 부엌이, 좌측에는 ‘정희네’ 간판이 놓여있다. 작은 소극장 무대에서 하루와 또 다른 하루는 정희가 간판의 불을 켜고 끄는 행위로 구분된다.
정희는 아무도 없는 식당에도 인사한다. 술 장사를 하지만 손님에게 파는 술만큼 본인이 마시는 술이 많다. 망가져도 일단 작동만 한다면 괜찮다는 정희의 말은, 아무리 술을 마셔도 씻고 자는 것을 잊지 않으면 괜찮다는 정희의 말은 연극이 ‘정희네’라는 공간과 정희라는 인물을 동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희는 분명 선한 인간이지만 동시에 어딘가 망가져 있는 인물이다. 정희의 망가짐은 정희의 선함과 같은 말일 수 있다. 선하게 사는 것은 분명 고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연극에서 정희의 망가짐은 세면대의 누수, 벽의 균열처럼 집을 통해 가시화된다.
친구 동훈의 소개로 젊은 수리공 가람이 ‘정희네’를 찾아오면서, 정희의 일상은 느리지만 분명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정희의 가게를 고치는 시간은 곧 정희가 자신의 삶을 다시 재정립하는 시간과 겹친다. 또한 연극은 현재의 정희만을 비추는 것이 아닌, 시대의 흐름과 함께 과거의 정희를 동시에 소환해 교차시키고 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학생 시절부터 20대까지의 풋풋하고 슬픈 시절이 정희네에 앉으면 계속 다시 떠오르는 식이다.
이를 통해 정희가 재정립하는 것이 지금의 상태뿐 아니라 역사로서 개인, 역사로서 자기 자신임을 이해할 수 있다. 어린 정희와 지안이 동일 인물인 까닭은 비슷한 시기를 보낸 정희가 지안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어른이 되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우는 얼굴에 슬픔을 느끼진 않겠다
드라마는 극적이다. 현실에서 도저히 만나볼 수 없는 인물이 등장하고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그럼에도 우리가 드라마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진실하다.
‘오글거린다’, ‘유치하다’ 말하면서도 다시 돌려보게 되는 드라마들이 있다. 그것은 드라마라는 세계관에서 설득력을 충분히 갖추었다는 의미다. 사람들은 드라마에 뉴스를 보듯 검증된 사실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극적인 진실함을 요청할 뿐이다. 클리셰라고 말하면서도, 드라마에서 통속성을 없앤다면 새로운 문법을 구성하는 데에 큰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비현실적인 설정과 거대한 규모의 인물 혹은 사건은 드라마에 익숙하다. 정해진 회차 동안 매력적인 기승전결을 만들기 위한 선택인 것이다.
가끔 어려운 선택을 하는 작품들을 만난다. 거대한 사건과 인물이 아니라 핍진한 삶을 바탕으로 극 만들기를 선택하는 작품들이다. 당연히 단지 핍진성과 사실성만으로 그것이 좋은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잔잔하더라도 충분히 극적 매력을 지녀야 한다. 그런 작품들에 사람들은 ‘힐링’, ‘휴머니즘’ 등으로 수식어를 붙인다. 충분한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섬세하고 적확하게 상황을 묘사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공감도 재미도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픈 얼굴에는 슬픔이 없다. 슬픔과 인간의 감정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기 위해서는 더욱 치밀한 설정만이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