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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우리는 모두 강물처럼 말하고 있었다. [도서/문학]

느리지만 분명한 것.

by 전주현 에디터
2026.04.17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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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부딪치는 강물처럼요.
그 빠른 물살 너머의 잔잔한 강물도 떠올려요.
그곳에서는 물결이 부드럽게 일렁이며 반짝여요.

내 입도 그렇게 움직여요.
나는 그렇게 말해요.

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어요. 내가 그런 것처럼요.
 
*
 
저자 조던 스콧이 펴낸 동화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시드니 스미스의 수채화풍 그림과 어우러지는 성장담이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다. 나는 서점에 가면 반드시 동화책 코너를 구경한다. 그 자리에서 빠르게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이유도 있다. 동화는 내 안에 묻혀있던 동심과 세상을 따스하게 바라보는 시선을 일깨워준다.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중고 서점을 구경하다가 제목에 이끌려 집어 든 책이었다. 구매할 생각까진 없었는데, 자리에서 단숨에 읽고 카운터로 달려갔다. 책을 읽고 콧잔등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붉어질 때면 전율이 돋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책을 사는데, '전율'을 쇼핑백에 담은 것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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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주인공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남학생이며, 말을 더듬는다. 아침마다 여러 낱말이 들려오고 그것이 목구멍에서 뒤엉키는 기분이라고 한다.

'소나무의 스-가 입안에 뿌리를 내리며 혀와 뒤엉켜 버려요.'
'까마귀의 끄-는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어요.'
'달의 드-는 마법처럼 내 입술을 지워버려요.'
'나는 그저 웅얼거릴 수밖에 없어요.'
 
한참 아이들과 떠들며 어울릴 나이이지만 소년은 그저 맨 뒷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 혹시나 선생님이 발표를 시킬까 두려워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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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선생님은 소년에게 '가장 좋아하는 곳'에 대한 발표를 시킨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아이들의 시선은 소년의 입에 지퍼를 채울 뿐이다. 소년의 아빠는 풀이 죽어있는 소년을 데리고 강가에 간다. 그곳은 소년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이다.

소년은 '뱃속에 폭풍이 일어난 것만 같다. 두 눈에 빗물이 가득 차오른다.'

강물은 굽이치고 부수어지고 작은 소용돌이를 만들지만 결국 어디론가 흘러가게 돼 있다. 소년은 그런 강물을 유심히 바라보길 즐긴다.
 
아버지가 소년을 향해 말한다.
 
"강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보이지? 너도 저 강물처럼 말한단다."
 
소년은 아버지의 말을 통해 용기를 얻는다. 그토록 좋아했던 강물도 저처럼 말을 더듬고 있었다. 더듬으면서도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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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간 소년은 발표 시간에 강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품은 조던 스콧 작가의 유년 시절을 담고 있다. 말을 더듬는 그를 두고, 언어 치료 선생님은 유창하게 말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잡고 치료를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강물을 보며 '유창하다'는 것에 대해 달리 생각하게 된다. 강물이 바다로 나아갈 때, 그 여정이 꼭 수월한 것만은 아니다. 강에도 강의 어귀가 있고, 물살의 흐름이 있고 강과 강이 만나는 곳이 있으니까 말이다. 작가는 강물이 더듬거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말을 더듬거리면서도 음식을 주문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일이 아름답다고 얘기한다.

책을 다 읽고 문득 초등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 애는 말을 자주 더듬었다. 가령, '안녕하세요'를 '아, 아, 안, 안녕'이라고 말하는 식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들 중 그 누구도 그 애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듣진 않았다. 그 애는 말을 천천히, 그리고 몇 번씩 반복할 뿐이었다. 우리는 그 애의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저 '말을 더듬는다'는 이유로 그 애를 좋아하지 않았고, 그 애와 대화하기 꺼렸다. 나도 처음에는 그 애와 같은 반이 되었을 때 약간의 거리감을 느꼈다. 친해지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뛰어놀며 웃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때 당시 나는 여자 친구들하고만 어울렸기 때문에 남자애인 그 애와 깊이 친해지진 못했지만, 그 애가 과학을 잘하고 똑똑하고 엉뚱하고. 또 가끔 눈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 애가 '말을 더듬는다'는 것을 딱히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교실에서 그 애는 '말을 더듬는 아이'로 통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애는 더욱더 많은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에, 말을 더듬는다는 한 가지 정체성으로 대표될 아이가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는 어려서부터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너무 많은 신경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아닐지. 보이는 것만이 전부라고 믿는 것은 아닐지 돌아보게 되었다. 강물도 멀리서 보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매우 치열하고 열심히, 자신만의 길을 만들며 바다로 나아간다. 그 애도 마찬가지였을 거다. 머릿속에서 엉키는 단어, 목구멍에 걸리는 낱말. 그것을 열심히 조합하고 뭉치면서 마음을 전달했을 거다. 햇빛, 달빛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가는 아름다운 강물처럼 말하고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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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대화 중에 단어를 까먹거나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거나, 혀가 꼬여 창피함을 느낄 때가 있는 것 같다. 내 말이 어떻게 들렸을지, 어딘가 밉보인 건 아니었을지 긴장하면서 말이다. 근래에 나는 영어학원에서 시간 강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한국어도 유창하게 말 못 하는 내가 영어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억지로 버티고 있다. 익숙지 않은 단어 앞에선 발음하는 것조차 어려워 얼어붙게 된다. 듣는 입장이 아니라 '말하는 입장'이 되니 단어 하나 내뱉는 게 너무도 어려웠다.

살다보면 말을 더듬거릴 때가 있다. 의도와 다르게 말이 헛나갈 때가 있고,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참아야 해서 마음에도 없는 단어를 급하게 조합할 때도 있다. 그런데도 우린 끊임없이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 나만의 길을 만들면서, 앞으로 흘러간다. 강물의 흐름과 흐름이 만나듯이, 꺾이고 부딪치고 갈라지면서도 반짝임을 잃지 않고 나아가는 우리 모두 저마다의 강물처럼 말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식으로.

어떤 이의 물살은 조금 빠르고. 어떤 이의 물살은 조금 더 잔잔하고. 어떤 이의 물살은 소용돌이칠 뿐. 누구나 조금씩은 말을 더듬는다. 그렇기에 중요한 건 말을 유창하게 하는 것보다도 상대의 진심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태도일 거다. 소년이 좋아하는 강가를 유심히 관찰했던 것처럼. 그리하여 강의 얼굴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헤아릴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 모든 이미지 출처는 (주)책 읽는 곰 출판사에서 펴낸 서적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입니다.
* 조던 스콧 글,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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