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는 모두 외계인 [도서/문학]

어떤 물질의 사랑, 천선란 (2020)
글 입력 2022.10.11 12:00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우리는 모두 서로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에 있어 각자의 세계에서 이방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에 완벽한 공감이라는 건 불가능한 것이라 생각했고, 회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설령 상대가 나와 비슷한 일을 겪어보았다고 해도, 상대와 내가 처한 상황은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 다르니까. 상대와 내가 그 일을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까지 전부 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들에게 듣는 위로는 최악이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고, 이미 지나왔기 때문에 쉽게 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반발심. 당신은 절대로 나의 힘듦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묘한 오기.

 

'널 이해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듣기보다는, '너는 내 마음을 100% 이해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에 초점이 맞춰져 삐딱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마음의 여유가 없던 시절에는 그 가시 돋친 태도가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 버리는 바람에 난처했던 기억도 있다. 그 시절 난 섣부른 위로가 오히려 상대에게 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내가 누군가를 위로하는 말도 꺼내지 못했다.

 

 

131.jpg


 

소설 <어떤 물질의 사랑 (2020)>의 표제작인 '어떤 물질의 사랑'은 남들은 모두 가지고 있는 배꼽이 본인에게는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주인공 라현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라현은 어딘가 좀 특이하다. 사춘기 시절에 겪게 되는 2차 성징은 라현이 '어떤 성별의 상대를 사랑하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이를테면 라현이 남자를 사랑하게 되면 변성기마냥 목소리가 굵어지거나 코 아래가 거뭇해지고,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인중의 수염도 옅어지고 묘하게 가슴 쪽 살이 뭉쳐 봉긋해지는 식이다.

 

어느 날 라현은 자신보다 한 학년 위의 언니를 사랑하게 된다. 언니가 보건실에서 생리통으로 고통스러워하자 라현은 언니의 등을 연신 문지른다. 이후 원하던 예고 입시에 성공하였지만 줄곧 우울과 스트레스를 받던 언니와 헤어진 뒤에도 라현은, 언니가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란다.

 

 

언니의 행복을 바라는 것에 이유는 없다.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고도 언니의 등을 쓸었던 것처럼, 사랑했기에 그것은 당연한 바람이었다.

 

<어떤 물질의 사랑> 중

 

 

남들과는 조금 다른 라현은 당연히 생리통이라는 고통을 경험해보지 못했을 터. 생리통을 경험해보지 못한 라현이 언니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도 (할 수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언니의 등을 쓸었던 행위는 과연 무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소설 속 대목처럼, 우리는 눈도, 코도, 귀도 다 다르고 손가락의 크기, 머리카락이 나는 방향도, 심어진 눈썹의 개수도 모두 다르다. 그렇기에 그들에게서 내가 겪었던 만큼의 온전한 크기로 공감을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에 대한 사랑과 위로를 건넬 수 없는 건 아니다. 우리에게는 서로의 진심을 전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은 내가 멋대로 쉽게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돌이켜 본다. 라현이 자신에게만 배꼽이 없어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 엄마가 라현에게 해주었던 말.

 


배꼽이 없으면 어때. 틀린 것도 아닌데.

 

<어떤 물질의 사랑> 중

 


누구보다 '서로 다름'에서 오는 이해를 이해하지 못하고, '다르다'에 초점을 맞춰 저 사람은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거라 단정 지었던 날들. 순도 100%만이 진짜라 믿는, 공감이라는 틀에 갇혀 남들의 진심을 의심했던 지나온 날들.

 

지금껏 나는 오히려 감정에 있어 통달한 척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위로가 들어올 틈도 없이 스스로가 내 마음의 문을 원천 봉쇄하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누군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은, 꼭 공감이라는 두 글자에 기반하지 않는, 별개의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꼭 상대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공감해야지만 위로를 건넬 수 있는 건 아닌데.

 

소설 마지막에서 엄마는 라현에게 미지근한 온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한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어떠한 범주에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의 사랑.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음을, 나는 <어떤 물질의 사랑>에서 배웠다.

 

 

 

백소현.jpg

 

 

[백소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