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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소원을 비는’ 행위는 인간 역사 중 가장 오래되고 본질적인 기원이다. 풍년이 들게 해달라고, 비가 오게 해달라고, 나와 주변을 안전하게 해주고, 사냥에 성공하게 해달라고,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은 갖가지 방법을 활용해 원하는 것들을 빌어왔다. 이 막연한 욕망의 행위는 뗀석기로 동굴 벽에 잡고 싶은 사냥감 그림을 죽죽 그리던 시절, 혹은 어쩌면 그 이전까지로도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의 대상은 보통 하늘이지만, 가끔은 사람들의 염원이 모이는 신비로운 영물이 되기도 한다.

 

<녹나무의 파수꾼> 속, 달빛이 깃드는 월향신사(月鄕神社) 깊숙이에 자리 잡은 괴물 같은 녹나무가 바로 그런 존재다. 지름 5미터, 높이 20미터도 훌쩍 넘을 성싶은 압도적인 크기의 이 녹나무는 찾아오는 사람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낮 동안 신사가 개방될 때면 전국에서 수많은 여행객들이 몰려와 나무를 향해 인사를 하고, 기도를 올린다. 그런 뒤 해가 저물면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고, 신사와 나무는 다시 고요와 어둠 속에 잠긴다.

 

하지만 이 녹나무의 진가는 밤이 되고 달이 뜨는 순간 드러난다.

 

그리고 그 곁에는 항상 나무를 지키는 녹나무의 파수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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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 어머니는 술집 접대부로 일하고, 그마저도 일찍이 사고로 돌아가 결국 부모 없이 자란 아이. 그래서 젓가락질을 올바로 하는 법도, 똑바른 존댓말을 쓰는 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이. 그의 이름은 나오이 레이토다.

 

장래도, 의욕도 없이 하루하루 벌어 살던 레이토는 그가 일하던 공작기계 재활용업체에서 손님에게 상품의 결함을 알려줬다는 이유로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잘린다. 그 때문에 생활이 힘들어지자 돈을 마련하기 위해 회사에 침입하지만, 보안 장비에 덜미가 잡혀 결국 경찰서로 끌려가고 만다. 젊은 나이에 주거 침입, 기물 파손, 절도 미수로 기소당할 일만 남아 눈앞이 캄캄한 레이토의 앞에 마법 같은 구원의 손길이 다가온 것은 그때였다.

 

 

나오이 레이토에게.

 

만일 자유의 몸이 되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을 이와모토 변호사에게 맡겨라. 이와모토 변호사에게 맡기면 분명 일이 잘 풀릴 것이다. 그리고 무사히 석방되었을 때는 신속히 나를 찾아오도록 하라. 너에게 명할 것이 있다. 그 지시에 따르겠다면 이번 건의 변호사 비용은 전액 지불하겠다.

 

- 의뢰인.

 

 

의뢰인의 전언을 들고 찾아온 이와모토 변호사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전적으로 레이토의 의사에 달렸다고 이야기한다. 수상쩍기 그지없는 제안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한 채 전과범이 되거나. 어느 쪽을 고르든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을 뒤흔들 두 길 사이에서 고민하던 레이토는 이렇게 말한다. “동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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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설이는 일이 생길 때면 레이토는 언제나 동전을 던진다. 앞면이 나오면 이렇게 하고, 뒷면이 나오면 저렇게 하고. 그러면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 없이 순식간에 결과가 나온다. 게다가 운이기 때문에 결국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라고 합리화하기도 쉽다. 자신의 인생, 자신의 일이지만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은 무섭기 때문이다.

 

결국 동전을 던져 의뢰를 받아들이는 쪽으로 결정이 나지만, 레이토를 의뢰인이 머무는 곳까지 데려다준 이와모토 변호사는 떠나기 전 덧붙인다.

   

 

“협상이 성립된 뒤에 도요이 사장이 말했어. 결함 있는 기계는 아무리 수리해도 또 고장이 난다. 그 녀석도 마찬가지여서 어차피 결함품, 언젠가 훨씬 더 나쁜 짓을 저질러서 교도소에 들어갈 것이다, 라고.”

 

레이토는 입술을 깨물었다. 뭐라고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부디, 라고 변호사는 뒤를 이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예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해.”

 

레이토는 이와모토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어떻게 살아가면 되는데요?”

 

“그에 대한 답이 그 방에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이와모토는 레이토가 들고 있는 메모지를 가리켰다.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하지.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다음부터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고 분명한 자기 의사에 따라 답을 내는 게 좋아. 동전 던지기 따위에 기대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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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를 통해 의뢰를 준 사람은 레이토가 여태껏 존재조차 몰랐던 이모였다. 자신을 레이토의 엄마의 배다른 언니라고 소개한 야나기사와 치후네는 육십을 넘긴 여인으로, 레이토에게 갑작스레 녹나무의 파수꾼이라는 특이한 일을 맡긴다. 그녀에게 거액의 변호사비를 빚진 레이토로서는 거부할 선택권이 없는 이야기였다.

 

치후네는 레이토에게 파수꾼으로서의 일을 가르쳐주지만, 낮보단 ‘밤의 일’이 녹나무 파수꾼의 참된 임무라고 하면서도 막상 그게 정확히 어떤 일인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레이토가 직접 몸으로 부딪쳐가며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종류의 일이다. 어리둥절한 채로 파수꾼으로서의 일을 시작한 레이토에게 점차 ‘밤의 예약 손님’들이 찾아오기 시작하고, 레이토는 새로운 인연과 함께 자신에게 맡겨진 일의 진실을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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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작가의 <녹나무의 파수꾼>은 미스터리와 판타지가 한 스푼 섞인 힐링 소설로, 주인공 레이토와 주변 인물들이 자신만의 삶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따뜻한 메시지의 작품이다. 최근에는 히가시노 작가의 작품들 중 최초로 애니메이션 영화화되어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다.

 

작품 속 녹나무는 상대에 대한 추억을 공유하는 혈연관계 사이에서 주고받고 싶은 메시지를 맡아주는 일종의 우체국 같은 역할을 한다.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은 그믐달이 뜨는 밤에 녹나무를 찾아 나의 메시지를 받았으면 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전하고 싶은 내용을 염원한다. 그것을 예념(預念)이라고 한다. 그러면 녹나무는 그의 생각과 감정을 기록해두었다가 보름달이 뜨는 밤에 상대가 녹나무를 찾아와 수념(受念)하면 선물처럼 전해준다.

 

“말로는 설명을 못 하겠어.” 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하곤 한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장면을 완벽하게 똑같이 상대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단순히 그림처럼 보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끼는 감정, 그 당시 했던 생각을 포함해 그야말로 모든 것을 상대에게 투영하는 것이다. 언어는 인류와 함께 발전해온 최고의 소통 도구지만 완벽한 도구는 아니다. 말로는 전할 수 없는 마음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의 상상을 이루어준다는 점에서 <녹나무의 파수꾼>은 분명한 판타지다. 주인공 레이토는 어려서부터 불우하고 어렵게 자라온 탓에 초반에는 사람들과의 교류에 서툴렀다. 치후네는 그에게 식사 예절, 사회생활, 올바른 몸짓이나 말씨 등 많은 것을 새로 가르쳐야 했다. 하지만 치후네나 다른 사람들과 점차 알아가고, 그들의 사정을 이해하고, 사람들이 녹나무를 통해 간절한 애정을 주고받는 것을 지켜보게끔 하는 녹나무의 파수꾼 자리는 자신의 인생조차도 동전 던지기로 결정하던 레이토를 성장시켰다.

 

나의 마음을 상대에게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아쉬운 염원이 녹나무라는 판타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녹나무를 넘어서자 사람들은 더욱 진실한 상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답답해서 오른쪽 주먹을 세게 휘둘렀다.

 

“지금의 내 기분을 예념하고 싶네요. 언어 같은 걸로는 안 돼요. 녹나무를 통해 치후네 씨에게 전하고 싶다고요.”

 

“고마워요. 하지만 녹나무의 힘은 필요 없어요. 방금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해져오는 게 있다는 걸.”

 

치후네가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 여윈 손을 레이토는 두 손으로 감쌌다. 치후네의 마음이, 염원이, 전해져오는 듯한 마음이 들었다.

 

 

현실의 우리에겐 마법 같은 건 없다. 하지만 여전히, 상대와 마주 보고, 눈을 맞추고, 손을 잡을 수는 있다. 어쩌면 그게 우리의 녹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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