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 속의 고독이 더 외롭다는 것을 버지니아 울프는 「V양의 미스터리한 일생」에서 확인했다. 군중 속에서 고독이 짙어지는 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 대규모 집단 속에서 개인이 가지는 익명성은 존재를 쉽게 배제하고 소거하며, 망각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혹은 두 번째로, 군중과 나 사이의 간극이 빚어내는 ‘이방인의 느낌’ 때문이기도 하다. 나만 다른 존재 같아서 타인과 영원히 어우러질 수 없단 생각에 내 몸의 경계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기, 후자의 경우를 겪는 ‘늑대’가 한 마리 있다.
최근 프랑스의 슈퍼마켓 체인 ‘intermarché (인터마르셰)’의 크리스마스 캠페인 광고가 큰 화제가 되고 있다. 코카콜라와 맥도날드는 생성형 AI를 통해 광고를 만들었고, 디즈니는 Open AI와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단 소식이 마구 전해지는 지금, 이 광고는 유독 사람 손을 탔기 때문이다. 해당 영상은 AI 사용 없이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100% 수작업으로 한땀 한땀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2분 30초짜리 영상 광고의 제목은 ‘Le Mal Aimé’(프랑스어), ‘Unloved’(영어)로, 직역하면 ‘사랑받지 못한 이’다. 앞서 언급한 그 늑대가 바로 사랑받지 못한 자다. 인터마르셰는 식재료에 대한 관심 독려의 취지로 ‘We all have reasons to eat better (누구에게나 더 잘 먹어야 할 이유가 있다)’ 라는 문구를 영상 끄트머리에 삽입하며 캠페인을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은 사랑받지 못했던 늑대의 슬프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크게 감동 받았다.
▲ 사진 출처:Romance Agency 유튜브
영상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는 아이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아버지가 선물로 늑대 인형을 주자 아이는 주춤하는데, 늑대를 무서워하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런 아이를 위해 예전에 숲속에 살며 친구가 없던 첫 늑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늑대는 모두를 잡아먹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늑대가 나타나면 다들 도망가기 바빠, 늑대는 상심한다. 그런 늑대에게 고슴도치가 ‘다른 이들을 먹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라며 사람 말고 당근, 버섯, 과일, 채소 등을 먹을 것을 권유한다. 늑대는 채소를 어떻게 사냥하냐며 의문을 품지만, 또 다시 자신을 피하는 동물들을 보며 요리책을 한번 들여다본다.
날카로운 손톱으로 버섯도 잘라보고, 서툴지만 칼질도 해본다. 채소 요리는 태워 먹기 십상이고, 손에 잡힌 다람쥐를 보고 군침이 돌기도 하지만 다람쥐는 놔주고 하던 일을 계속해 보기로 한다. 새에 비하면 터무니없는 낚시 실력으로 추위에 덜덜 떨며 겨우 물고기 한 마리를 건지는 늑대다. 재료를 손질할 땐 먹잇감을 두들겨 패는 모습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감자로 요리를 하고 열매를 따 먹지만 입에 묻은 빨간 자국은 토끼 가족을 화들짝 놀라게, 그래서 줄행랑치게 할 뿐이다.
은은하게 흐르는 배경 음악, 프랑수아 클로드의 ‘Le mal aimé (Unloved)’를 흥얼거리는 늑대는 이제 제법 요리에 적응한 듯 보인다. 늑대는 언젠가, 누군가 방문하게 되리란 기대와 함께 집을 꾸미고 파이도 만든다. 하지만 여전히 혼자인 늑대는 앞에 둔 파이와 창밖의 무리를 보며 두 배로 외로움에 젖는다.
늑대는 용기를 내 파이를 들고 꼬리를 흔들며 군중에게 다가간다. 또 모두가 놀라 마구 도망가지만 전에 놓아준 다람쥐가 다가와 손을 내민다. 다람쥐에게 파이 한 조각을 건네는 늑대를 다들 멀리서 지켜보다가 오해를 풀고 다 함께 식사를 계속하기로 한다. 그렇게 늑대는 군중 속의 이방인, 사랑받지 못한 이에서 따뜻하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동물들의 일원이 되었다.
이야기가 끝나갈 무렵 아이가 이미 늑대 인형을 꼭 안은 채 잠들어있는 모습으로 광고는 조용히 마무리된다. 다름에서 오는 외로움, 오해를 이해로 이겨낸 늑대의 따스한 모습과 더불어 사람의 손때 묻은 정성스러운 영상이 많은 이의 심금을 울렸다.
네티즌들은 Romance Agency가 유튜브에 업로드한 해당 광고 영상의 댓글에 “다른 어떤 AI 광고들 보다 이 영상의 한 프레임이 더 열정적이다.”, “상업 광고 하나만을 위해 픽사 급, 상 받을만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네, 대단하다.”,“이 영상은 상업 광고라기보다 단편 영화로 보인다.”,“음식에 관한 애니메이션이네, 멋지다. 프랑스인들은 이 주제에 매우 진심이다.”,“너무나도 잘 만들어서 슈퍼마켓 체인의 크리스마스 광고라는 걸 잊게 만든다.”,“코카콜라와 디즈니가 인공지능에 집중하는 동안 프랑스는 예술이란 전통을 고수하고 있다.” 등의 극찬을 남기며 이 광고의 진가를 역설하고 있다.
인터마르셰는 이전에도 정상성에서 벗어난 모양을 통해 식재료를 광고한 적 있다. 일명 ‘못난이 과일’, ‘못난이 채소’라고 불리며 불량 취급 받는 제품들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다.
이 모든 광고들을 보고 나면, 인터마르셰는 식재료 홍보 이상으로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다. 조금 다른 존재, 모두가 배척하는 존재를 사람의 언어로 풀어내 다수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은 인공지능의 시대에 그들만이 가지는 특별한 장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