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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다들 거짓말을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악의적인 마음에서가 아니라, 그저 사랑받고 싶어서, 혹은 투명 인간 같은 나를 누군가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 뱉어버린 사소한 말들 말이다. 관심이 고픈 현대인들에게 '거짓말'은 때로 생존을 위한 비명과도 같다. 누군가에게는 비난받아 마땅한 기만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세상과 연결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던 한 소년의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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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초연된 뮤지컬 <디어 에반 한센(Dear Evan Hansen)>은 뮤지컬 역사에서 '첫 디지털 세대 뮤지컬'로 불린다. 이는 그저 무대 위에 SNS 화면이 등장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관객들이 작품의 메시지를 인터넷으로 퍼 나르며 온라인 기반의 거대한 팬덤을 형성했고, 작품 속 세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며 소통했기 때문이다. <라라랜드>와 <위대한 쇼맨>으로도 '파섹 앤 폴(Pasek & Paul)' 콤비(벤지 파섹, 저스틴 폴)는 이 현상을 더욱 극대화시켰다.


이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 <디어 에반 한센>의 간략한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회불안장애를 앓는 ‘에반’은 치료를 위해 자신에게 쓴 심리치료편지를 학교의 아웃사이더 '코너'에게 뺏긴다. 코너의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그 편지는 코너가 에반에게 남긴 유서로 오해받는다. 이 오해로부터 에반의 거짓말이 시작된다. 에반은 코너의 가족에게 자신이 코너의 절친이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자신과 코너의 사이가 얼마나 각별했는지를 말한다. 코너의 가족은 에반 덕분에 코너를 진정으로 추모할 수 있게 되고, 에반을 자신들의 가족으로 받아들인다. 이렇게 에반은 자신의 결핍을 채운다.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즉 살기 위해 에반은 거짓말을 계속 이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만적인 거짓말은 죽은 코너를 영웅으로 만들고, 남겨진 가족을 위로하며, 외로운 세상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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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에 기대어 연결되기를 원하는 세대


 

스티븐 레븐슨이 집필한 이 오리지널 스토리는 "SNS 시대의 외로움과 소통"이라는 지극히 현대적인 주제를 관통한다. 작사가 벤지 파섹은 자신의 고등학생 때 경험에 빗대어, 9.11 테러 이후의 세대가 비극적인 사건에 쉽게 동화되는 경향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분석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과 직접적 관계가 없는 비극일지라도 그 사건의 일부가 됨으로써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심리적 안정을 얻고자 한다. 이러한 세대론적 통찰은 주인공 에반의 거짓말이 어떻게 전 사회적인 현상으로 번지는지를 설명해 준다.


이 작품의 캐치프레이즈인 "우리는 모두 에반 한센이다(We’re Even Hansen)"는 이 뮤지컬이 동시대를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뮤지컬 <헤어>가 락(Rock)이라는 사운드스케이프를 통해 당대를 표현했다면, <디어 에반 한센>은 '정동(affect)'의 형식으로 시대를 포착한다. 거대 담론이 아닌, 미시적인 개인의 불안과 외로움을 깊숙이 파고들어 이를 보편적인 차원의 공감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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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은 처음에는 두려움 때문에 입을 떼지만, 점차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코너의 절친한 친구'라는 가짜 자아를 구축한다. 그럼에도 관객은 명백한 기만행위를 저지르는 에반을 쉽사리 미워할 수 없다. 이는 ‘결핍의 공유’에 있다. 거짓으로 쌓아 올린 그 자아는 에반이 그토록 갈망하던 가족의 온기와 사회적 관심을 제공하는 온전한 보호막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짓 위에 세워진 성은 필연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2막 후반부, 모든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에반은 자신의 세계가 산산조각 나는 자아의 붕괴를 경험한다. 영웅적이었던 가짜 자아가 사라진 자리에는 실수투성이이고 불완전하며, 여전히 외로운 '진짜 에반'만이 남는다.


그리고 이 붕괴는 에반에게 진정한 성장의 시작점이 된다. 화려하지만 위태로웠던 가짜 자아를 완전히 철거한 뒤에서야 비로소 에반은 남들의 기대나 환상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마주하고 받아들인다. 결국 에반의 서사는 거짓된 자아의 죽음이 진정한 자아 탄생을 위한 필수적인 거름이 됨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부족한 모습 그대로도 충분하다”는 미시적인 시선의 위로를 건넨다.

 

 


'11시 곡'의 부재가 말해주는 것


 

주목할 점은 에반이 이 붕괴로 인해 파멸을 맞는다거나, 혹은 기만 당한 코너의 가족과의 감정의 대립 따위의 극적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는 이른바 ‘11시 곡(11 o'clock number)'이 존재한다. 밤 8시에 시작한 공연이 11시쯤 끝날 무렵, 주인공이 무대 중앙에서 감정을 폭발시키며 주제를 구현하는 클라이맥스 넘버를 뜻한다.


하지만 <디어 에반 한센>에는 11시 곡이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그 자리는 에반과 코너의 동생 조이의 나직한 소통으로 채워진다. 그들은 ‘노래’하지 않으며, 코너의 가족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에반은 어느 대학에 갔는지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눈다. 스펙터클한 쇼가 걷어치워진 자리, 그 적막 속에 흐르는 ‘리얼한 감각’이야말로 개인의 내면을 다루는 이 작품만의 화법, 독자적인 형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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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영웅도, 화려한 피날레도 없다. 하지만 그 텅 빈 공간에서 우리는 비로소 발견된다(You will be found). '좋아요'와 '조회수'로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디지털 세상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을 조금 더 괜찮은 사람으로 포장하기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오가며 숨 가쁘게 가면을 쓴다. <디어 에반 핸슨>은 그 견고한 가면을 깨뜨리는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에반처럼 가면이 깨지고 난 뒤에야 비로소 마주하게 되는 '진짜 얼굴'. 그 불완전한 실존을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연결된 채로 고립되어가는 우리 세대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투박하지만 확실한 구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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