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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점에서 구체, 그리고 물방울로: 김창열 회고전 [미술/전시]

국립현대미술관 김창열 회고전 관람 후기

by 정충연 에디터
2025.09.0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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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회고전 《김창열》은 익숙한 ‘물방울’의 광택을 찬양하는 전시가 아니라, 그 표면 아래 가라앉은 상흔의 기억과 형식 실험의 역사를 끌어올리는 전시다.

 

전시는 네 개의 장—‘상흔–현상–물방울–회귀’—과 별도의 아카이브 섹션으로 짜여 있으며, 작가의 사후 처음 열리는 대규모 회고전답게 미공개 기록·작품을 포함한 약 120여 점으로 커리어 전반을 재구성한다.

 

특히 그동안 상대적으로 조명이 부족했던 1960년대 뉴욕 체류기(‘현상’의 전사(前史))와 초기 드로잉·자료가 본격적으로 드러나 작가 연구의 공백을 메운다.

 

첫 장 ‘상흔’은 한국전쟁과 분단의 경험이 어떻게 회화적 언어로 인장되었는지 보여준다. 화면을 파고드는 구멍, 긁힌 표면, 제사(祭祀)라는 제목이 반복되던 시기의 작품은 기억을 환기하는 의식(ritual)에 가깝다.

 

이어지는 ‘현상’은 뉴욕에서의 냉랭한 추상 실험과 파리 이주 직전의 변곡점을 포착한다. 두터운 마티에르가 가라앉고 매끈한 화면 위에 기하 형태·방사형 레이어가 출현하며, 응축된 점(點)이 점액질처럼 미끄러지는 이미지로 변해 간다.

 

이 불안정한 형상 언어는 곧 ‘물방울’의 정밀한 환영으로 응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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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 장의 초점은 한결 분명하다. 공기 중에 떠 있거나 표면에 걸쳐진 듯한 한 방울의 체적감, 그림자와 하이라이트의 미세한 조정, 얼룩과 콜라주로 확장되는 회화적 어휘.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것이 초현실적 재현에 머물지 않고, 상처·애도·정화 같은 상징의 층위를 견인한다는 사실이다.

 

마지막 ‘회귀’에서 물방울은 문자(천자문) 위로 돌아와 기표와 기의, 육체와 기호가 겹쳐지는 장면을 만든다. 흔들리는 획과 탁한 바탕 위에 맺힌 방울들은, 곧 사라질 운명을 지닌 존재의 순간적 충일을 기록한다. 전시는 끝에서 1965년작 〈제사〉와 1991년작 〈회귀〉를 마주 보이게 배치해, 원형(구멍)과 방울 사이의 긴 여정을 응축해 보여준다.

 

이 전시의 미덕은 ‘물방울의 신화’를 반복하는 대신, 상흔–형상–기호로 이어지는 삼중의 궤적을 병치해 보여준다는 데 있다. 초기에 화면을 난자하던 구멍과 균열은 ‘살갗의 틈’이자 기억의 표식이었다. 뉴욕과 파리에서의 실험은 그 상처의 이미지를 형식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었고, 물방울은 그 번역의 정점이었다.

 

방울은 ‘기술적으로 잘 그린 물’이 아니라, 애도의 방식이며 정화의 제스처다. 문자와 만나 ‘회귀’로 확장될 때, 물방울은 더 이상 재현의 대상으로 남지 않고 사유의 촉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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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현상’과 ‘물방울’ 사이에 놓인 전환부는 주목할 만하다.

 

마티에르가 걷히고, 색띠·방사형 레이어·구체(球體)가 차례로 등장하며, 점은 구체–방울로 ‘상태변화’를 겪는다. 그 결과, 한 방울의 윤곽과 내부 굴절, 미세한 그림자 각도는 화면 전체의 시간·중력·온도를 호출하는 감각의 문장이 된다. 전시는 이 과정을 친절한 해설보다 작품 배열로 증명한다.

 

《김창열》은 방울의 광택을 ‘기술’이 아닌 ‘윤리’의 문제로 되돌려놓는 전시다. 총탄 자국 같은 구멍에서 시작해 문자 위의 방울로 귀환하기까지, 작가는 반세기 동안 한 이미지를 통해 상처를 응시하고, 사유를 응축하며, 삶을 견디는 방식을 만들었다.

 

이번 회고전은 그 과정의 미세한 층위를—특히 그동안 덜 보였던 뉴욕기의 실험과 미공개 자료를—설득력 있게 가시화한다.

 

‘물방울’의 표면에 비친 것은 결국 빛이지만, 그 아래에 켜켜이 스며든 것은 기억의 밀도라는 사실을, 이 전시는 조용하고도 정확하게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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