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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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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상》 전시가 개막되었다. 현재 주목받는 동시대 한국 작가들을 한자리에 볼 수 있어 관심을 갖고 방문하였다. 올해 선정된 작가 4인은 권하윤, 양정욱, 윤지영, 제인 진 카이젠이다. 그중에서도 윤지영과 카이젠은 이번 기회에 처음 접해보는 작가들이라 더욱 유심히 살펴보았다.

   

윤지영의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내장을 꺼내 그물을 짓던 때가 있었다.〉(2024)는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반기는 첫 작품이다.

 

사실 반긴다고 표현하기도 모호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그물이 앞길을 가로막듯 걸려 있다. 작품명에서도 보이듯 윤지영은 그의 작업 세계에 개인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작품의 묘사는 제목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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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약하기에 피부와 살 아래 숨겨져 있어야 할 내장이 밖으로 드러나 있다. 게다가 무언가를 에워싸고 잡기 위한 그물의 형태를 띤다. 지극히 물질적이지만, 꽁꽁 숨겨진 속내를 꺼내보이는 것과 같이 심리적이기도 하다.

 

내부와 외부, 보이지 않는 것과 겉으로 드러나는 것의 관계에 대한 탐구는 작가의 작업 전반에서 보이는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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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노〉(2021)는 맞지 않는 옷을 입는 것 같은 서로 다른 여섯 개의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도형들이 뒤집어쓴 싸개는 특유의 색과 질감으로 피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변형된 싸개와 도형의 모습은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며, 한편으로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하는 괴리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억지로 착용할 때의 불편함처럼 나 자신 또는 내가 원하는 것이 사회 혹은 규범과 충돌할 때가 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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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간신히 너, 하나, 얼굴〉(2024)은 비디오 작품 〈호로피다오〉(2024)에서 그 제작 동기와 과정이 나타난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의 친구들은 서로의 안녕을 빌며 밀랍으로 작가의 두상을 만든다.

 

일종의 봉헌물이 된 이 두상 제작 과정은 함께 친구들이 나누는 고통, 불안, 우울 등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등장한다. 우리를 위협하거나 강제하는 어떤 것들에 견디고 저항하고자 하는 마음, 그러한 보이지 않는 기원들이 두상 조각에 담기게 된다.

 

작품 제목 ‘호로피다오’는 가벼운 뛴걸음을 말하며 흔히 기분이 좋을 때 나오는 걸음걸이다. 그러한 걸음걸이를 보고 싶다는 친구의 말 속에서 호로피다오는 서로에 대한 그리움과 행복에 대한 소망이 담긴, 무형의 조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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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제인 진 카이젠의 작품은 연작 《이어도(바다 너머 섬)》(2022-2024)이다. 전시장엔 7개의 대형 스크린이 공간을 구성하며, 제주에 대해 자연부터 사회 구조와 영적 문화까지 광범위한 영역에서 풀어낸다.

 

특히 비디오는 그 규모와 화질로 인해 어떤 인터렉티브 요소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전시장을 들어서서 가장 먼저 보이는 중앙의 스크린에선 〈어귀〉(2024)가 재생되고 있다. 바다 속 크고 작은 온갖 존재들을 보여주는 영상은 대상을 세밀하게 포착함으로써 마치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제주에서 전해지는 창조 신화 중, 세상 자체이면서 세상을 만든, 그리고 세상을 움직이는 근원인 설문대 할망을 모티프로 제작되었다. 바다로부터 약동하는 생명의 힘을 담아내었으며, 이러한 리듬은 우주로 확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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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귀〉의 반대편에서, 역시 전시장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심〉(2024)은 제주도에 있는 700미터 깊이의 용암 동굴, 뱀굴을 보여준다. 깜깜한 어둠 속에 몇 발자국 앞만 보이는, 텅 빈듯한 공간은 지구의 내밀하면서도 오랜 시간의 흔적이 쌓인 곳이다.

 

〈심〉과 〈어귀〉를 둘러싼 다섯 영상들은 그러한 제주라는 지리적 공간을 두고 시간에 따라 축적되어온 제주의 문화와 삶의 양식을 비춘다. 〈할망〉(2023)과 〈제물〉(2023)에서 보이는 길고 하얀 면직물은 소창으로, 생사의 순환과 영적 세계와의 연결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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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자들〉(2024)은 꼭두를 갖고 노는 어린이들을 담아냈다. 꼭두는 망자와 동행하며 저승길을 안내한다고 하여 상여를 장식하는 데 사용되었다. 꼭두로 인형놀이를 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은 죽음의 공포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혹은 인생의 덧없음을 상기시킨다.

 

〈잔해〉(2024)는 좀 더 직접적으로 최근의 역사와 결부된 서사를 담고 있다. 1945년 10월 제주도에서 촬영한 영상을 활용했는데, 일본군이 남긴 무기와 포탄을 미군이 바다에 버리고 있다. 사운드는 제주 4.3 생존자인 고순안 심방의 민가가 흘러나온다. 바다에 얽힌 슬픈 기억은 파도와 함께 흘러가며 노래를 통해 회복이 소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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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젠 작업의 묘미는 감각을 일깨우는 영상 이미지와 그에 얽힌 문화 원형이나 서사 뿐 아니라, 전시장 공간에 설치된 구조에도 있다. 큰 규모의 스크린과 그것이 비추는 영상의 생동감은 다른 우리가 한 화면만을 감상할 수 없도록 만든다. 또한, 눈 앞의 스크린에서 하나의 작품을 보고 있더라도 뒤편의 영상에서 나오는 사운드가 들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영상들간의 간섭과 중첩은 시시각각 다른 서사를 써내고 색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관람자는 2개 혹은 3개의 작품을 동시에 감상함으로써 주체적으로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번 《올해의 작가상》에 선정된 작가들의 작업 세계는 개인이든, 사회나 신화든 서사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서사로부터 우리가 공감하며 위로를 받게끔 한다.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를 어떤 시각 매체와 형식을 사용하여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지의 문제와, 이를 각자 고유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가들을 만나볼 수 있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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