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현실과 환상 둘 다 놓칠 수 없다면 - 더 폴: 디렉터스 컷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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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 주변에서 논의되는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바로 AI일 것이다. 어릴 적 인공지능의 발달은 마치 터미네이터와 같이 사람과 유사한 휴머노이드 로봇을 생각했지만, 지금의 인공지능은 비물질적인 세계, 비가시적 세계에서의 압도적인 역량을 보여준다. 특히 휴대용 카메라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무수한 이미지가 생산, 전파되는 차원을 넘어 이젠 사진과도 같은 이미지를 대량 생산해내는 AI의 능력은 기술적인 복제 이후 진짜와 가짜에 대한 논란을 다시금 불러일으켰다.
가상의 이미지를 생산해내는 CG작업은 AI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분야다. 요즘 영화나 광고에서 CG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거의 드물정도로 CG는 영상매체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기술발전에 힘입어 점점 더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이미지를 생산해내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CG 기술이 마침내 현실과 동일한 감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시기가 오게 될까.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은 이에 대한 타셈 감독의 생각을 대변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더 폴”은 24개국의 비경을 CG 없이 촬영하면서 뛰어난 영상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장소 섭외와 촬영 기간까지 합치면 십 수년이 걸렸다고 한다. 수입배급사 오드(AUD)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영화에서 CG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CG는 아무리 대단하고 스펙터클하다고 한들 결국 낡고 시대에 뒤쳐져 보이게 된다. 10년, 20년 뒤에 보면 키치하고 끔찍하다. 그 다음에 더 시간이 지나서는 레트로하고 쿨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결국 낡는다. 진짜로 만든 것들, 진짜 로케이션은 절대 낡거나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게 영원히 남을 이야기라면, 나는 그 어떤 가짜도 사용하지 않겠다.” *
이처럼 “더 폴”은 “진짜”를 추구하는 감독의 고집과 끈기로 아름다운 자연과 문명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 속에서 그러한 장면들이 실제적인 다큐멘터리로서가 아닌, 꼬마 아이의 상상 속 판타지적인 모습으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 로이 워커는 스턴트맨으로, 영화 촬영 중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을 찍다가 부상을 입어 하반신이 마비되고 병원에 입원한다. 같은 병원의 루마니아 태생 꼬마 알렉산드리아는 농장에서 일하다가 역시 떨어져 골절된 팔을 고정시킨 채 입원중이었다. 로이는 자살하기 위한 용도로 모르핀을 얻기 위해 알렉산드리아에게 서사 이야기를 들려주며 꾀어낸다.
관객들은 로이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알렉산드리아의 상상 속 이미지를 마주하게 된다. 때문에 이야기 속 인물들은 알렉산드리아가 현실 세계에서 알고 있는 인물들로 등장한다. 얼음을 배달하는 흑인은 노예 전사 오타벵가로, 알렉산드리아네 농장의 인도인이 인도인 전사로, 두려움을 없애는 주문을 알려준 틀니 할어버지는 주술사로 등장하는 식이다. 또한, 로이의 이야기에 불쑥 개입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목소리와 실시간으로 변경되는 설정과 전개, 인물들의 표정 변화 등이 현실과 상상을 오가는 구성의 묘미를 더하며 소설을 읽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
놀라운 점은 이러한 이야기가 진행되는 배경, 곧 영화가 촬영된 장소가 CG로 구현하지 않은 실제 공간이라는 것이다. 끝없이 펼쳐지는 사막, 험준하고 메마른 산등성이와 기하학적인 건축물 등 초현실적인 배경에서 펼쳐지는 사건들은 꿈 속 장면처럼 느껴지며, 일종의 무대 장치 위에서 행해지는 연극처럼 보이기도 한다. 타셈 감독은 말 그대로 ‘절대 낡거나 뒤지지 않는’ 진짜 로케이션으로 환상적인 영상미를 제시했다.
감독의 ‘진짜’에 대한 열망은 영화 결말에서도 드러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모두 모여 로이가 나왔던 영화를 보며 웃는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는 나중에 로이를 그리워하면서 영화 속 스턴트맨들에게 로이를 투사하는데, 여기서 촬영을 위해 맨몸으로 분투하는 스턴트맨들이 담긴 영화의 장면들이 비춰진다. 컴퓨터로 꾸며낸 장면 없이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었던 과거 영화들을 상찬하는 대목이다.
어쩌면 로이에 대한 알렉산드리아의 마음은 전통적인 방식으로 촬영했던 과거 영화에 대한 감독의 마음을 대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알렉산드리아가 판타지 속에서 로이와 동일시하는 블랙 밴디트를 살려낸 것처럼, 타셈 감독 역시 이제는 사라져버리는 ‘진짜’를 이 영화를 통해 살려내고자 한 것이다.
* 인터뷰 내용: 데일리안, 타셈 감독 "'더 폴: 디렉터스 컷', CG 안 쓴 이유는…"
[정충연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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