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케이팝스타(시즌2 우승자의) 팬이었던 내가 락앤롤스타(라는 제목의 노래를 첫 앨범 첫 트랙으로 내는 밴드의) 팬이 된 과정, 그러니까 덕질 열차가 출발하는 이야기를 풀었다. 이 열차는 나름 잔잔하게 달리고 있었는데, 나보다 먼저 달리던 열차 무리를 만나며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덕질 열차 노선 변경: 페이퍼
대학생이 되어 수도권에 올라온 이후에는 라이브 공연의 맛을 알아버렸다. 첫해에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공연 13개를 다녔다. 돈을 쓸 곳이 공연뿐이라 가능한 생활이었지만, 반대로 이런 생활을 했기에 모든 돈을 공연에 쓰고 말았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하지만 이다음 해에 팬데믹을 마주하며 모든 내한 공연이 정지되었다. 덩달아 속도를 줄이던 내 덕질 열차는 이 감속을 곁눈질의 기회로 보았는지, 새로운 경로를 탐색했다. 공연 뉴스레터 에디터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공연과 페스티벌 소식을 전해주던 인스타그램 네임드 계정이 공연 덕후를 위한 뉴스레터 ‘페이퍼(FAPER)’를 만들며 에디터 모집 공고를 올렸고, 나도 나름 공연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인지라 선뜻 지원했다.
만남을 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에디터 모임에 한두 번 참여하여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대체로 나보다 길고 뜨거운 덕질 생활을 이어온 이들이었고, ‘원정 공연’이 익숙한 집단이었다. 원정 공연은 스포츠의 원정 경기처럼, 공연을 보러 다른 나라에 가는 것을 말하는데, 가끔 작은 도시에서 큰 도시로 이동하는 경우를 포함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해외에 나갈 때 원정을 나간다고 표현한다. 가깝고 익숙하지만 음악 시장이 훨씬 더 커서 다양한 아티스트가 공연하는 일본으로의 원정이 가장 흔하고, 유럽이나 미국처럼 다른 대륙으로 원정 나가는 사람들도 꽤 있다. 그 에디터 모임에도 다양한 나라로 다양한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도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때는 분명 그런 기분이었을 뿐이다. 신기하고, 대단하고, 열정이 넘치는, 나와 다른 사람들이군. 그때는 정말 그랬다.
덕질 열차 폭주: 해외 페스티벌
이후 우연찮게 교환학생으로 유럽을 방문하게 되었다. 딱히 이유가 있지는 않았다. 그냥 수업을 부지런히 듣다 보니 조기졸업을 할 위기에 처해, 한 학기를 낭비해야 할 필요가 생겼기에 독일로 떠났다. 이유 없이 떠났다고는 하지만 행보를 보면 급조된 목적이 뚜렷이 보인다. 교환학생 방문이 확정된 뒤, 비행기표보다도 먼저 산 것이 영국의 록 페스티벌 티켓이었으니. 내 사전에 원정 공연이 등록된 뒤 실제로 사용할 일은 없는 단어라고 생각했지만, 기회가 주어지니 써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가장 유명한 영국 페스티벌, 글래스톤베리에만 갈 생각이었는데, 운 좋게 보고 싶었던 공연의 표를 쉽게 구할 기회가 주어져 콘서트 두 개를 더 가기로 했다. 그래서 출국할 때는 이 티켓 세 장만 있었다. 하지만 독일에 머물면서 독일의 록 페스티벌에 가지 않는다는 게 가오가 상해서(!) 한 장 더 사고, 벨기에 록 페스티벌 라인업이 너무 좋은 게 괘씸해서(!!) 또 한 장을 샀다.
그래서 좋아하는 밴드를 많이 봤지만, 인상적인 무대를 물어보면 조금 의외의 선택을 하게 된다. 독일에서 본 디 토텐 호젠, 그리고 영국의 엘튼 존. 정확히는 그들의 무대라기보다, 그들의 무대를 본 ‘경험’이 인상적이었다. 솔직히 둘 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은 아니다. 디 토텐 호젠은 독일의 장수 밴드로, 아마 우리나라의 부활과 비슷한 포지션이 아닐까 마음대로 생각하고 있다. 그들을 알게 된 것도 독일어 공부를 할 때 찾아본 독일 문화 뉴스에서 그들의 40주년 기사를 읽었을 때다. 이후 독일의 펍에서 동네 밴드가 이들의 대표곡을 불러 괜스레 반가웠던 적이 있지만 그들의 노래를 잘 알지는 못한다. 또 엘튼 존은, 알다시피 엘튼 존인데, 나도 그의 명성은 익히 알지만 정작 아는 곡은 몇 개 안 된다. 여하튼 둘의 공통점은 난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은 다 아는 노래를 가졌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의 무대를 보던 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고독을 느낀 두 순간이 되었다. 나는 가장 유명한 노래의 후렴만 흥얼거리는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그들의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게 따라 불렀다.
나는 원래도 공연장에 혼자 간다. 나 빼고 다 아는 이야기를 하는 장소에 있었던 게 처음도 아니다. 심지어 그때는 몇 달째 말이 통하지 않는 동양인 교환학생으로 살던 때였다. 그런데도, 그 순간이 오고 나서야 내가 정말 남의 나라에 나그네새처럼 날아온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그 순간만큼은 이 세상에 나를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고, 나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서로를 알고 있을 것만 같았다.
표현도 극단적이고, 고독이라는 단어도 꽤 무겁지만, 그때의 내 감정이 꼭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갑자기 라이브 공연의 현장감, 내 인생의 현실감이 모두 사라지고 관찰자가 되어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엔딩을 보면 화면이 작게 쪼개지며 공항에서 재회하며 포옹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여주는데, 딱 그 장면을 4D로 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 감정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리고 그 영화 장면을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나쁘지 않은 감정이었다. 오히려 좋다면 좋은. 아마도 기쁜.
덕질 열차 정차역 : 턴톤
6개월가량 이어진 교환학생 생활의 마무리는 영국에서였다. 원래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출국이 예정된 만큼, 독일 동부와 동유럽을 둘러보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변수가 생겼다. 그 이름은 또 오아시스.
오아시스의 해체 이후 갤러거 형제는 각각 활동 중이었다. 리암 갤러거는 이번 벨기에 록 페스티벌에서 보았고, 노엘 갤러거는 한국에서 몇 번 보았다. 갤러거 형제 외에 기타리스트 겜 아처는 노엘 갤러거의 밴드 활동을 같이하고 있었기에 노엘과 함께 보았고, 유일하게 보지 못한 것이 베이시스트 앤디 벨. 앤디는 오아시스 합류 이전에 활동하던 밴드 라이드로 돌아간 채였다. 유럽에 머무는 기간 동안 그들의 투어 일정도 확인했지만 가까운 행사가 없어 포기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하이플라잉버즈 투어에서 라이드를 찾았다.
노엘 갤러거의 하이플라잉버즈가 투어를 돌고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사실 그들은 내한을 꾸준히 하는 밴드라 굳이 해외에서 찾아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영국의 어느 한 공연에서만, 그들의 오프닝에 라이드가 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이플라잉버즈와 라이드를 한 번에 볼 기회라니. 리암의 무대도 이미 보았겠다, 이 공연 하나만 더 보면 이번 해외 체류 기간에 오아시스 멤버를 전부 한 번씩 보는 셈이다. 그러므로 오타쿠에게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리에 따라 티켓을 샀다.
턴톤이라는 곳에서 하는 공연이었는데, 큰 도시는 아니라 그 근처의 브리스틀에 숙소를 잡고 당일치기로 공연을 보러 다녀와야 했다. 공연장에 가니 디토텐호젠과 엘튼존의 무대에서 느낀 착각이 여기서는 착각이 아닌 현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마실 나온 듯한 태도로 온 가족 단위 관람객도 많고 이웃끼리 인사하는 대화가 들렸다. 나 빼고 다 아는 사이라는 건 과장이겠지만, 나만 외국인일 가능성은 조금 있을 듯했다.
하이플라잉버즈의 공연을 몇 번 본 상태라 큰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일단 당시의 신보를 라이브로 듣기도 처음이었고, 그들의 나라인 영국에서 보는 무대라는 게 생각보다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한국에서 공연을 할 때는 그냥 열심히 노래를 하고 간다면, 여기서는 속된 말로 ‘노가리를 까’며 공연을 했다. 그렇다고 대충했다는 뜻은 절대 아니지만, 말도 많고 더 편해 보였다. 한국에서 그랬다면 ‘시간 아까운데 수다 그만하고 빨리 노래나 해라!’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보는 모습은 반가웠다. 좋은 관계로 오래 알던 직장 동료가 사적으로는 조금 다른 모습도 있구나, 싶은. 하지만 나는 오래 알던 직장 동료가 없어서 알맞은 비유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이때도 나쁘지 않은 기분, 오히려 좋다면 좋은, 아마도 기쁜 바로 그 감정과 비슷한.
그렇게 지구 반대편 공연을 보고 일주일 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6개월 동안 유럽을 떠돌며 원정 공연 맛보기를 해보았다. 맛보기라고 표현한 이유는 진짜 원정 공연이라 함은, 해외에 있는 김에 공연을 보는 게 아니라, 오직 공연을 보기 위해 해외에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독일에 머무는 김에 유럽의 공연을 좀 본 것뿐이었다. 물론 나도 공연만을 위해 독일에서 영국으로, 벨기에로 이동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서 유럽으로 날아가는 것만큼의 부담은 없었다.
이때의 나는 내가 진짜 원정 공연을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여전히 믿었다. 그땐 정말 그랬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