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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난 언제부터 취미에 노래 듣기, 또는 콘서트 가기를 포함할지 말지 고민하게 되었을까.


음악과 관련한 첫 기억은 아빠 차에서 들은 CD다. 가수로는 김광석, 전인권, 이승철의 노래가 많았다. 강산에의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을 참 좋아했다. 외국 노래가 많지는 않았지만 아파트 주차장에서 세차를 할 때면 꼭 영국 밴드 퀸의 시디를 들었다.


조금 더 커서는 친구들의 영향을 받았다.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는 엄마가 티브이를 마음껏 보지 못하게 했는데, 그래서인지 나는 대중문화와 거리가 멀었다. 친구들이 비스트와 B1A4, 인피니트의 팬이었지만 음악방송을 보지 않던 나는 그중에 끼지 못했다. 하지만 나도 거기에 끼고 싶은 마음에 좋아하는 가수를 일부러 찾은 게 에일리였다.

 

…정말 끼고 싶었던 게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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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 열차 탑승: 악동뮤지션


 

노력이 아니라 실제로 좋아한 건 악동뮤지션부터다. 줄임말인 '악뮤'로 정식 이름을 바꾼 지 오래되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한 시기에는 악동뮤지션이었으니 일단 악동뮤지션이라고 쓰겠다. 그들이 처음 등장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챙겨보고, 문자 투표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해봤다. 아, 친구들의 요청으로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의 투표를 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정식데뷔를 하지 않았을 때도 인터넷 팬카페에 가입해 있었다.


이 사실 외에도 악동뮤지션이 내 덕질 생활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이들에게 내 돈을 주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이 악동뮤지션이기 때문이다. 별 건 아니고 그냥 이때부터 음악 스트리밍 앱의 정기권을 쓰기 시작했다. 몇 원 가지도 않았겠지만, 그전까지는 노래를 굳이 찾아 듣지도 않았기 때문에 음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지만 악동뮤지션의 음원은 필요했다.


당시 내가 쓰던 정기권은 한 달에 얼마를 내면 30곡을 내려받을 수 있는 형태였다. 악동뮤지션을 위해 정기권 구독을 시작했지만 이들이 매달 30곡을 써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 정기권을 소모하기 위해 다른 노래도 듣기 시작했다. 100위 차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으며 골라서 내려받았다. 초기에는 노래를 하나씩 들어봐야 했지만, 점차 취향이 생겼다. 어떤 가수는 이름만 보고도 앨범을 통째로 받고, 어떤 가수는 이름만 봐도 스킵하는 등 자체 시스템이 생겼다. 마마무와 비투비를 좋아했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낸 여학생이라면 무조건 사랑했을 태연, 지금도 좋아하는 목소리를 가진 이하이 등.


그때 기숙사에서는 핸드폰을 사감 선생님께 제출해야 해서, 친구들과 내 공기계로 노래를 들을 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기숙사 친구들은 내 플레이리스트에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그 친구들을 만나 그 시절 노래를 들으면 ‘너 때문에 알고 있다’라는 말을 듣곤 한다. 그럴 때면 기묘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마치 그 시공간 한정의 인플루언서가 된 기분.

 

 

 

덕질 열차의 분기점: 낫띵벗띠브즈


 

고등학교에 들어가선 (학교에서 친구들과 아이돌 경연 프로그램이나 뮤직비디오를 보던 것을 제외하면) 한국 노래를 듣는 일이 줄어들었다. 한국어 가사가 있는 노래는 공부하면서 듣기 어려워서라는 이유로 영어 팝송으로 점차 옮겨 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 새로운 분야를 발굴한 것 같다.


션 멘데스, 시아처럼 국내에서도 유명한 사람들은 팝을 굳이 찾아 듣지 않던 중학생 때도 좋아했지만 그레이스 밴더월, 뷜로, 제임스 아서처럼 (어디까지나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가수들의 노래를 듣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그리고 이 시기에 알 수 없는, 정말 불가사의한 변화가 일어나는데, 바로 록밴드 음악을 듣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 아빠 차에서의 은근한 조기 교육이 이제 와서 발현한 것인지, 광고 음악으로 접한 이매진드래곤즈 때문인지, 정신 차려 보니 난 낫띵벗띠브즈라는 영국 밴드를 좋아하고 있었다.

 

 

 

 

어떤 경로로 이 밴드에 도달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뮤직비디오를 재밌게 보던 기억이 선명한 것으로 보아 이때부터 낫띵벗띠브즈 ‘최애’ 자리에 비집고 들어온 것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 듣던 국내외의 가수 대부분이 내 현재 플레이리스트에서 자취를 감춘 와중에 거의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이들인 걸 고려하면, 낫띵벗띠브즈를 분기점 삼아 록밴드로 옮겨간 듯하다.


가장 좋아하는 밴드 탑3에 꼭 드는 낫띵벗띠브즈지만, 남에게 말하는 게 쉽지 않다. 외국 밴드 음악을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데다가 이름도 길고 특이하고 심지어 한국인들이 어려워한다는 ‘th’ 발음이 두 번이나 들어가 이 이름을 말할 때마다 고역이다. “밴드 음악 좋아한다고? 누구 제일 좋아하는데?” “그냥… 외국 밴드…” “외국 밴드 음악 누구? 이름 알려줘.” “낫#$&@(즈” “…어어…”

 

 

 

덕질 열차 가속: 오아시스



이런 상황을 타개하도록 도움을 준 것이 오아시스다. ‘오아시스’라는 이름은 쉽고 익숙하다. 무엇보다, 유명하다.


오래전부터 밴드 음악을 들어온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나는 낫띵벗띠브즈를 오아시스보다 먼저 알았다. 심지어는 노엘 갤러거의 하이플라잉버즈를 오아시스보다 먼저 알았다. 하이플라잉버즈는 90년대 브릿팝 전성기를 만들었던 오아시스가 2009년 해체한 뒤, 메인 작곡가인 노엘 갤러거 시작한 솔로 밴드인데, 난 이 하이플라잉버즈를 통해 오아시스를, 그리고 갤러거 형제를 알게 되었다.

 

 

 

 

남매가 한 팀을 이루는 악동뮤지션 팬들 사이에는 이를 활용한 자잘한 농담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는 '절대 불화로 인한 해체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가수라는 것이었다. 두 멤버가 남매인 만큼, 아무리 심하게 싸워도 엄마가 화해시켜 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나도 그렇게 믿고 살고 있었는데, 오아시스의 갤러거 형제를 만난 뒤에는 그 믿음이 깨졌다.


어쨌든 낫띵벗띠브즈를 시작으로 내 청취 노선이 밴드 음악으로 바뀌었다면, 슬슬 굴러가던 덕질 열차에 속도가 붙은 것은 오아시스부터다. 이건 사용하는 스트리밍 앱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는데, 악동뮤지션 때부터 쭉 사용하던 그 국내 음악 스트리밍 앱에 당시 노엘 갤러거의 신보가 재깍재깍 업데이트되지 않았고, 그 하루이틀 차이를 참지 못한 나는 국외 스트리밍 앱으로 갈아탔다. 그때는 그 앱이 국내에 들어오기도 전이었는데 어찌저찌 방법을 찾아 쓰기 시작했고, 그 앱이 만들어주는 추천 플레이리스트를 듣다 보니 점점 중학교 때 듣던 100위 차트와는 백만 광년 정도 동떨어진 노래들만 남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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