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넘어갈 때마다 새로운 뮤직 페스티벌이 툭툭 튀어나온다. 뮤직 페스티벌 ‘철’이 되면 매일매일이 축제, 아니 매 주말이 축제다. 진짜 축제.
그래,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단어를 주로 쓰지만 우리말로 정직하게 옮겨 보자면 ‘음악 축제’다. 음악 축제라고 하니 갑자기 동어반복처럼 느껴진다. 애당초 축제에 음악이 없는 것이 가능한가? 음악은 논산 딸기 축제에도 있다. 나름 탄탄한 라인업이라 그 이야기를 다루는 지역 기사도 있다. 하지만 논산 딸기 축제를 ‘뮤직 페스티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다른 축제와 비교하여 뮤직 페스티벌, 그러니까 음악 축제만이 갖는 특징은 무엇인가.
쉬운 답을 다들 알 것이다. ‘축제’의 앞에 오는 단어가 그 축제의 중심이 되겠거니. 딸기 축제는 딸기를, 음악 축제는 음악을 주제로 한다. 하지만 음악이 주제라는 것만 염두에 둔다면 이제 음악 축제와 단독 콘서트의 차이점이 흐려진다. 내가 생각하는 뮤직 페스티벌(이하 페스티벌)과 단독 콘서트(이하 콘서트)의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야외
페스티벌이라고 하면 공원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날씨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큰 단점이긴 해도 그 매력을 절대 무시할 수가 없다. 파란 하늘 아래서 뛰어놀다가 정신 차려 보면 노을이, 다시 정신 차려 보면 검은 밤이 내린다. 미세 먼지가 심각한 요즘이라고는 해도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한 실내 공간보다는 쾌적하게 느껴진다. 비가 오면 낭패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 적당한 비는 낭만을 더해주기도 한다. 어쩌면 적당하지 않은 비까지도.
먹거리와 술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페스티벌의 첫 번째 이미지가 야외에서 뛰어노는 사람들이라면, 두 번째 이미지는 돗자리를 펴고 앉아 간식과 맥주를 즐기는 사람들이다. 나는 페스티벌에 갈 때마다 얼음물을 챙겨가는데, 한여름 땡볕 아래 한나절을 서 있으면서도 그 물을 절반 이상 마셔본 적이 없다. 맥주가 있으니까. 또 맥주를 그렇게 마시면서도 화장실에는 잘 안 간다. 땀으로 다 흘리니까. 어쩌면 맥주 마시기에 가장 좋은 환경. 음식도 아주 중요한 요소다. 인천의 큰 록 페스티벌에 매년 참여하는 김말국(김치말이국수)이 해당 록 페스티벌의 진짜 헤드라이너라는 농담은 팬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한 우스갯소리다. 그만큼 푸드존 라인업도 중요하고, 자세한 규정은 모르지만 보통 외부 음식도 반입 가능하다. 덕분에 공연을 보기보다는 그 음악을 배경 삼아 소풍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타임테이블
음악 축제를 뮤직 페스티벌이라고 부르듯, 시간표도 어쩐지 ‘타임테이블’이라고 부른다. 페스티벌은 공연 무대가 여러 개다. 대학에서 열린 강의 중 자기가 듣고 싶은(들어야 하는) 강의를 골라 강의실을 옮겨 다니며 듣듯이, 페스티벌에서도 자신이 보고 싶은 무대를 골라 본다. 한 번은 해외의 큰 페스티벌에 간 적이 있는데 거긴 메인만 다섯 개에 미니 스테이지까지 다 합치면 백여 곳이 되어서 시간표를 짜느라 머리가 아팠다. 투덜대는 척하지만 아주 잘 즐기고 왔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메인 하나, 서브 하나, 미니 두어 개가 익숙하다.
다른 팬들
콘서트에는 ‘그’ 아티스트를 보려는 팬들이 대체로 모인다. 하지만 페스티벌에는 여러 팬들이 모이다니 결과적으로 다른 팬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이 가수의 셋리스트 가사를 다 알고 있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은 가수 이름조차 모를 수도 있고, 나는 이 가수의 얼굴을 처음 보지만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이 가수의 사주팔자까지 알 수도 있다. 모르는 아티스트의 공연을 왜 보냐 싶을 수도 있겠지만, 처음 듣는 노래에 맞춰 흔들흔들하는 재미도 있고 가수의 리드를 따라 떼창에 섞여 드는 재미도 있다. 조금 거리감을 두고 남들의 ‘덕질’을 지켜보는 것도 묘미. 공연을 하는 아티스트들도 ‘나를 모르는 사람들도 내 공연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에 대중적인 곡을 커버해 주는 것도 일반 콘서트에서 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하루 종일
콘서트는 저녁에 한두 시간(국내 가수 콘서트는 더 오래 하는 것도 같던데 내가 간 콘서트는 90분을 넘은 적이 없다)하는 것이 전부지만 페스티벌은 해가 쨍쨍한 오전부터 늦은 밤까지 이어진다. 입장과 퇴장 시간을 맞춰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페스티벌에 온다면 대부분 네댓 시간은 머물 것이다. 하루를 통으로 투자하면 물리적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아도 여행을 떠난 듯한 기분이 든다. 이틀 혹은 삼일씩 이어지는 페스티벌이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하루만 다녀와도 일상에서 탈출한 당일치기 여행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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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야외에서, 여러 먹거리와 술을 곁들여, 여러 공연을 골라보며, 다른 가수의 팬과 함께 종일 즐기는 것이 페스티벌. 그리고 실내에서, 물 이외의 취식 없이, 정해진 한두 개의 공연을, 오직 이 가수의 팬들과 함께 한두 시간 즐기는 것이 콘서트.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페스티벌과 콘서트의 차이에 관해 질문하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게 답할 것이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렇긴 한데, 꼭 그렇진 않지.’
야외라는 특징이 페스티벌의 상징처럼 느껴지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여러 개의 스테이지 중 한두 개의 미니 스테이지는 실내에서 이뤄지기도 하고, 최근에는 전체 스테이지가 실내인 페스티벌도 몇 있다. 단일 스테이지로 운영하는 페스티벌도 생겼다. 반대로 콘서트가 야외, 혹은 천장이 없는 공연장에서 열리기도 한다. 콘서트인데 오프닝 밴드와 콜라보 공연이 많아 소규모 페스티벌처럼 느껴지는 무대도 있다. 국내는 모르겠지만 해외에서는 맥주와 간식을 파는 공연장에 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페스티벌과 콘서트의 차이가 무엇이라 정의하기 어렵다. 위에 내가 서술한 네 가지 차이점이 거짓이라는 게 아니라, 얼마든지 더 변하고 경계가 흐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페스티벌이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페스티벌이 고집해야 하는 가치가 있긴 한 걸까?
고집의 한자를 풀이하면 ‘굳게 붙잡다’. 사전적 정의는 ‘자기의 의견을 바꾸거나 고치지 않고 굳게 버팀. 또는 그렇게 버티는 성미.’ 고집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미련하고 부정적인 성질이지만 나는 고집을 꽤 좋아한다. 관성적 고집은 당연히 싫지만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보고 도출한 고집은 좀 필요하지 않나.
전통적(?) 뮤직 페스티벌은 왜 야외일까, 왜 음식과 술을 팔까, 왜 여러 가수가 오고, 왜 다른 팬들과 마주치게 하고, 왜 하루를 통째로 쓰게 할까. 다들 ‘음악’을 즐기기에는 오히려 해로운 요소들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수만 보러, 같은 걸 좋아하는 팬들과, 취식 금지의 실내 공연장에서 만나는 것이 음악에 몰입하기 더 좋을 것이다. 하루 종일 놀아야 하는 것도 그렇다. 체력의 문제든 집중력의 문제든, 페스티벌에 있는 시간 내내 음악에 몰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페스티벌에 가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잔다. 공연은 뒷전인데도 우리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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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서트와 비교해 페스티벌이 갖는 특징은, 조금의 주객전도를 허용하는, 어쩌면 주객전도를 권장하는 듯하다는 것. 사실 ‘주객전도를 권장하는 듯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정말 주객전도를 권한다기보다는 내가 알고 있던 주와 객이 틀렸다고 보는 게 맞다. 뮤직 페스티벌의 진짜 주는 음악이 아니다. 모든 페스티벌이, 모든 축제가 그렇듯, 사람이다.
축제는 ‘축하하여 벌이는 큰 규모의 행사’. 음악 축제라고 해서 우리가 뭐 음악을 축하하거나 음악 신을 기리는 건 아니다.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축하하는 거다. 일 년 무사히 잘 살았다고. 또 다음 일 년 잘살아 보자고. 모든 축제의 주는 사람이고, 그 뒤에 소주제와 수단이 따라온다. 음악을 축하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음악으로 축하하는 것이 음악 축제다.
콘서트와 페스티벌의 차이가 여기서 하나 더 나왔다. 콘서트는 투어 일정에 따라 달라지지만 페스티벌은 매년 돌아온다. 과거의 축제는 농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정해진 시기가 있다 보니 매년 돌아오는 것이 자연스러웠겠지만, 사실 음악 축제는 그냥 놀기 좋은 날을 정한 것뿐인데도 뮤직 페스티벌이 제철인 시기가 오면 몸이 반응한다.
다만 요즘은 워낙 다양한 페스티벌이 우후죽순 생겨나다 보니 과연 이 페스티벌이 내년에도 돌아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페스티벌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단연 아티스트 라인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음악 축제가 우리나라에 한두 개면 모를까, 매년 새 음악 축제가 태어나는 상황에서 매번 라인업 경쟁의 승자가 되기는 쉽지도 않고 설령 된다 하더라도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라인업은 올해의 관객은 보장할지 몰라도 내년의 관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앞서 말했듯 음악 축제의 주는 음악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 중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음악으로 축하할 것인지 충분히 고민하지 않으면 다음 축제는 열리지 못할 것이다. 적자생존으로 몇 개의 음악 축제만 남길 바라는 게 아니다. 각자의 강점을 가진 축제들이 매년 주렁주렁 열리면서 이 음악 축제 풍년이 오래 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