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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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당신이 떠올릴 수 있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 나에게 가장 어렸을 적의 기억은 이모의 결혼식이 시작되기 전, 무대에 올라가 자발적으로 노래를 부른 것이다. 평소 동요 부르기를 좋아하던 나는 노래를 불러보라는 엄마의 장난 반 진담 반의 말 한마디에 식장을 메운 긴장과 정적을 깨고 “고래아가씨와 코끼리아저씨”를 불렀다.

 

지금의 관점으로 생각해 보면 하나뿐인 결혼식에서 발생한 돌발 상황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린이에게 관대했던 20여 년 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쁘게 봐주었다.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친척들도 가끔 약주를 하시면 “너 어렸을 때 춤추고 노래하는 거 좋아했잖아~” 말씀하시곤 한다. 이제는 희끄무레해진 영수증의 글씨처럼 장면 장면으로만 남아 있는 기억이지만, 아직도 재롱 피우기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로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을 만날 때면 몹시 수줍어지곤 한다.

 

또 다른 기억으로는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원더걸스의 텔미를 추었던 때가 생각난다. 새까만 관객석 사이에 우뚝 솟은, 무대 조명을 반사하여 빛이 나는 수많은 카메라 속에서 우리 엄마 아빠의 카메라를 재빠르게 찾았던 것 같다. 그리고 당시의 공연 영상을 녹화한 비디오를 8살, 9살이 될 때까지도 계속해서 돌려보았다.

 

어릴 적의 나는 무대에 오르기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해야만 하는 흥이 많은 어린이였다. 남이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아서 개그맨을 자처했고, 가끔은 TV쇼의 스타가 되고 싶었다. 텔레비전에 나오고 싶어 혼자 방 안에 들어가 당시 유행하던 포미닛이나 비스트의 안무를 연습하기도 했고, 장윤정의 어머나를 열창하기도 했다. 동시대를 살아온 수많은 어린이 중에서도 유난히 쾌활하고 몸을 써가며 놀기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다.” 이다 작가의 「어린이 탐구 생활」은 이와 같은 문장으로 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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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게 하루를 살아내기 바쁜 어른들이 잊고 있던 진실은 정말이지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다는 것이다. 한때 어린이였던 어른들은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조리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행동한다. 유난히 어린이가 적은 요즈음, 더더욱 어린이에게 각박하다는 현실을 깨달을 때가 많다. 너무 시끄럽거나 너무 뛰어다닌다는 이유로, 사고를 치기 쉽다거나 이성적인 대화가 통하지 않는 이유로, 힘이 나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동네에 어린아이들이 많았던 과거에는 당연했던 일들에 하나둘 제한이 생기는 광경을 목격하면 나도 모르게 눈가가 찌푸려지곤 한다. 어린이가 아니었던 사람은 없다!


“어린이 탐구 생활”을 읽기 전, 독자가 해야 할 준비 운동이 있다. 바로 오랫동안 잠들어 있어서 나 또한 존재를 까먹고 있던 내 안의 어린이를 깨우는 것이다. 나는 어떤 어린이였더라? 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써 모든 준비는 끝이 난다. 이제는 이다 작가의 나레이션에 발맞추어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생각해 보자.

 

 

 

1. 오늘의 어린이


 

사실 오늘의 어린이는 과거의 어린이와 다르지 않다. 인류의 역사는 빠르게 진화의 도약에 오를 만큼 길지 않기도 하고, 오래 전의 기록을 보아도 윗세대가 아래 세대에 공감하지 못하는 일은 계속해서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책에 자주 나오던 소크라테스 또한 “요즘 애들은 폭군이라 미래가 암담하다.”라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어린이를 볼 때 가끔 이해가 안 되는 모습들은 모두 우리가 거쳐왔던 길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어른들이 묘사하는 어린이들은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 특히 무언가를 잘 못하거나, 초보의 과정을 겪고 있을 때 주저 없이 “~린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러나 성장한 지 오래된 어른의 눈으로는 쉽게 보이지 않는 어린만의 고유한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이다 작가가 말하는 진짜 어린이들의 특징에는 다음 사항이 해당한다.

 

 

1) 고집이 세고 완고하며, 적당히 맞춰 주질 않는다. (근데 유연하며 변화가능하다.)

2) 어린이는 웃길 때만 웃는다.

3) 호불호가 명확하다. 어린이는 자신의 관심 분야에 엄청나게 과몰입한다.

4) ‘제일 좋아하는 것’이 정해져 있다.

 

 

이 모습들을 조용히 곱씹어 보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 4가지 특징은 어른으로 자라나가는 동안 사라져간다. 하루 종일 사람들과 부딪히며 사회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 우리는 모두 모난 부분을 조금씩 깎아 나간다. 웃기지 않더라도 분위기를 무마하기 위해 억지로 웃음을 내보이고, 처한 상황 속에서 최대치의 이익을 얻기 위해 적절한 판단을 해야만 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경험의 폭이 넓어지는 대신, 호불호의 경계가 옅어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더라….

 

20년 전, 6살이던 내가 좋아했던 것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데. 그 시절의 나는 공룡을 정말 좋아했다.

 

 


2. 세상에는 다정함이 필요하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항상 생각나는 풍경이 있다. 나는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무리 지어 흙장난을 많이 했었다. 두꺼비 집을 짓기도 하고, 비가 많이 오면 나뭇가지로 수로를 파기도 하고, 눈이 오면 이글루를 빙자한 빙벽을 만들기도 했다. 피아노 학원에서 처음 보는 아이들과 친구가 되어 다 같이 음악 만화책을 읽기도 했고, 미술 학원에서 저녁 시간까지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러다 선생님이 퇴근길에 집까지 데려다 주거나, 방금 친해진 친구 집에서 저녁을 얻어먹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모두가 핸드폰이 없었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불안해하지는 않았다. 우리에게는 우리만의 시간표가 내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한 시각은 모르지만, 해의 움직임과 아파트에서 울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로 집에 가야 할 때를 알았다. 당연하게도 오후의 놀이터는 시끌벅적했고, 하굣길에 뛰어다니는 어린애들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왔다.


생각해보면 그 시절이 지니고 있는 다정함이 있는 것 같다. 조금은 아날로그적인 따뜻함. 그것은 이웃 간의, 사람 사이에서 타고나는 인정에 기인한 듯하다.

 

지금은 다정함의 방향이 조금은 달라졌다고 느낀달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여자아이의 책가방은 핑크색이어야만 했고, 남자아이들은 태권도를 배우는 것이 필수 코스였다. 파워레인저를 좋아했던 나는 약간의 괴짜 취급을 받았다. 파워레인저의 주인공처럼 멋있어지고 싶었을 뿐인데, 공을 차는 것이 좋아 축구화를 샀을 뿐인데, 운동을 하고 싶어 합기도를 배웠을 뿐인데 일반적인 여자아이 범주에서 벗어나는 유별난 아이로 여겨졌다. 사회의 편견과 흐름을 잘 몰랐던 나에게는 어른들이 바라보는 시선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하는 게 잘못인가? 요즘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성평등과 관련된 교육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사회의 시선이 과거보다 더 평등해지기도 했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목소리 내어 말할 수 있는 세상에 가까워진 것 같아 반갑다. 여자라는 이유로 ‘~해야만 한다’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운 어린이들이 많아지면 한다.

 

 

 

3. 나는 어땠더라?


 

이번 챕터는 그야말로 내 안의 어린이를 듣는 시간이다. 이다 작가는 자신의 열 살을 떠올리고 과거의 일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런 구구절절한 ‘어린이’의 기억을 평생 잊지 않을 줄 알았다. 스무 살이 넘어서도 어린 시절 일을 그날의 공기와 날씨까지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20대까지만 해도 나에게 추억을 저장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그 기억이 희미하다. 어린이였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 거리가 멀어서 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 어린이 탐구 생활, 107쪽

 

 

위의 문단을 구성하는 모든 문장에 공감이 가지만, 특히 가슴이 저릿하게 만드는 건 마지막 문장이다. 어린이였던 나를 떠올리려 노력하다 보면 문득 그날의 대화와 날씨, 기분이 생생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맞아, 이런 적이 있었지. 하던 순간들 말이다.

 

나의 경우, 우중충한 4월의 어느 날을 떠올리고 싶다. 가족과 벚꽃 나들이를 하러 갔을 때 즉흥 캐리커처를 하고 받아 든 결과물이 내 얼굴과 다른 것 같아 속상한 마음에 마구 운 적이 있었다. 이처럼 유난히 선명하게 그려지는 과거의 날들이 있다. 그런데도 문득 내가 아닌 것 같은 낯섦과 어색함이 다가오곤 한다. 마치 나의 얼굴을 한 타인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런 감각을 느끼고 나면, 기억이란 가늘고 긴 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조각 조각이 엮여 있는 것은 아닐지 궁금증이 밀려오곤 한다.



 

4. 어린이가 만드는 세계


 

요즘 어린이들은 심심할 틈이 없을 것 같다. 대부분의 초등학생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전원만 켜면 무한대로 쏟아지는 릴스, 쇼츠 영상을 계속해서 볼 수 있다. 짧게 편집되어 자극만을 추구하는 영상들은 어른인 나에게도 가끔 비도덕적이거나 불쾌한 영상을 추천하곤 하는데, 이럴 때마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는다면 편향된 생각의 구렁텅이로 빠질 것 같다는 아찔한 생각이 들곤 한다. 하물며 아직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하지 못하는 어린이의 경우 더욱 위험할 것 같다. 노력하지 않더라도 머릿속으로 새로운 놀거리가 쏟아져 나오는데, 어린이들은 창작에 대한 호기심을 키우기 어려워진다. 어른들이 생성하는 양질의 콘텐츠는 계속해서 공급되고, 스크롤 한 번이면 심심함을 쫓아낼 수 있다.


어렸을 적, 나에게 있어 도파민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은 책이었다. 특히 모험이나 판타지가 주제인 그림책을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보았던 책은 “아비까비꼬비까비”라는 도깨비 이야기다. 아쉽게도 읽은 지 오래되어 자세히 기억나진 않지만, 책 속의 주인공이던 도깨비들이 진짜 존재할지 궁금해하곤 했다. 이 도깨비들은 커다란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얼기설기 엮은 사다리로 이동하며 마을을 꾸렸는데, 이들의 세계에 나 또한 들어가고 싶어 그 그림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면 저절로 상상하게 된다. 만약, 내가 도깨비가 된다면 어떤 집을 지어 살고 싶은지, 그림책 속 어떤 도깨비와 가장 친하게 지내고 싶은지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

 

나는 아직도 타인이 창작한 작품에 빠져드는 것을 좋아한다.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복잡할 때 미술관에 가서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고 온다거나, 새로운 책을 발견하기 위해 도서관에 가고, 가끔은 만화 카페에서 재미있는 만화를 발굴하곤 한다. 이렇듯 새로운 창작물을 계속해서 접하고 나만의 것으로 소화하려는 행동은 유년기의 기억에 영향받은 것 같다. 당시 생각하기를 좋아하던 내가 없었더라면 아마도 지금의 행동들은 불가능했을 테니까.

 

*

 

모든 어른이 어린이였듯, 모든 어린이는 언젠가 어른이 된다. 자라난 미래의 어른들은 지금을 떠올리며 어떻게 회상할까. 2026년에 나는 유치원을 다니고 있었어~ 라고 말하는 어느 직장인들을 그려보자. 그중에는 식당이나 카페에 갔을 때 어린이의 출입을 막는 노키즈존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를 당한 기억을 가진 어른들이 있을 것이다. 대중교통에서 시끄럽다며 대화 자체를 하지 못하게 눈치 주는 사람들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어른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우리가 어린이들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미래 어른들의 회상이 바뀔 것이란 사실이다. 그렇게 접근해 보면 주변의 어린이에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많은 노력은 필요하지 않다. 하교하는 길에 조잘거리는 어린이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대하기. 용기를 내어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어린이에게 성심성의껏 대답해 주기. 어린이를 한 사람으로 바라봐 주기. 어린이를 존중하는 건 내가 사는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일이라는 이다 작가의 한마디처럼 나 또한 작은 발걸음으로나마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내가 어린이였을 시절, 분명 어른들은 나를 이렇게 대해주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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