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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바디호러 할거면 이렇게 해라 [영화]

바디호러의 거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초기작 엿보기

by 한정아 에디터
2025.08.13 21:59

 

 

뜨거운 여름이 끝나간다. 바람이 시원해지고 노을이 급해지면서 나도 덩달아 밀린 방학 숙제를 하기 시작한다. 여름을 즐길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 않은가. 수박을 먹고, 반바지를 입고, 물놀이를 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번 여름에는 그중에서도 바디호러를 꺼내 들었다.

 

올해 초 <서브스턴스>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바디호러가 남았다. 덕분에 한국에서 바디호러는 그렇게 생소한 개념이 아니게 되었다. 바디호러란, 인체의 부 자연적인 변형이나 파괴에 대해 인간이 본능적으로 느끼는 공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호러의 장르를 말한다. 개인적으로 바디호러 장르를 즐겨 보진 않았다. 보기 힘들다거나, 재미가 없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고. 바디호러를 잘 활용하기 어렵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적재적소에 바디호러 요소를 잘 활용해 낸 작품을 여태껏 보지 못했고. 잔인함과 불쾌감만을 퍼붓는 고어물과의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캐나다의 영화감독이다. 바디호러 장르를 개척하고 발전시킨 선구자라고 평가받는 그의 영화는 가히 독창적이다. 그의 스크린은 징그럽고 혐오스럽기보다는 날카롭고 환상적인 인상을 전달한다. 단순히 자극을 위한 자극이 아니기 때문이다. 메시지가 있고 목적성이 뚜렷하다. 공포영화, 바디호러라는 틀은 그의 위험하고 실험적인 세계를 전달하기 위하여 잠시 빌렸을 뿐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테크놀로지의 폭력성, 그리고 인간의 본연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한다. 그리고 왜곡된 신체와 끈적거리는 무언가는 그 메시지를 훌륭하게 빛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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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 <비디오드롬, 1983>은 시대를 앞서간 영화이다. 자신의 채널을 성장시키기 위해 자극적인 미디어를 찾던 맥스는 비디오드롬을 만나고, 심각한 뇌 질환과 환각을 유발하는 비디오드롬 채널에 잡아먹힌다. 텔레비전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숨을 쉬고 부풀어 오르고. 미디어는 감각의 확장자라는 말에 증명이라도 하듯 점차 과감해진다. 인간 피부 형태의 스크린을 뚫고 나오는 총 모양의 손은 직접적인 해를 가할 수 있고, 비디오드롬에 희생 당한 연인은 스크린 속에서만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느덧 맥스는 배에 뚫린 구멍에 테이프를 넣으면 그대로 재생되는 육체가 되어버린다.

 

극 중 브라이언 오블리비언이 말했듯, 40년이 지난 오늘날 TV는 현실보다 더 현실이 되었다. 눈과 귀를 통해 여과없이 흡수되는 내용들, 적극적으로 읽어내지 않아도 저절로 꽂히는 자극들. 비디오드롬이 남일 같지 않다. 알고리즘이 발달하고 자극적인 매체가 쏟아지는 요즘, 미디어가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맥스는 잃어버린 육체에 자유를 선사하기 위해 총으로 머리를 쏘았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잘 간수하고 있는가. 미디어를 그대로 재생하는 테이프 리더기가 되어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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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정신에 대한 고민은 <데드 링거, 1988>에서도 계속된다. 여기 명예로운 쌍둥이 의사가 있다. 한평생 모든 것, 심지어는 여자까지도 함께 공유하며 육체는 두 개지만 영혼은 하나라고 믿어왔다. 베벌리가 한 경험은 엘리엇이, 엘리엇이 한 경험은 베벌리가 모두 해야만 했다. 그래야 '정말로' 한 일이 되니까 말이다. 그러나 한 여자를 공유한 뒤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 시작한다. 베벌리는 사랑에 빠졌고, 사랑은 자아에 대한 깊은 고찰과 혼란으로 이끈다.

 

배가 이어져 있는 샴쌍둥이 꿈과 사랑에 빠진 여성이 지닌 배우라는 직업은 인간의 정신과 육체의 관계에 관한 질문을 증폭시킨다. 결국 베벌리는 약에 취해 엘리엇의 배를 갈라 살해한다. 엘리엇 또한 받아들인다. 마치 언젠가는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듯이 말이다. 베벌리는 죽은 엘리엇 옆에서 함께 생을 마감한다.

 

인간의 본질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같은 생김새의 육체를 지녔지만, 온전히 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가능할까. 같은 생김새의 정신을 지녔지만, 다른 생김새의 육체를 지닌 사람은 어떨까. 자아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고유성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육체와 정신을 이분법적으로 나누는 전제부터가 잘못된 것이려나.

 

인체를 왜곡하고 변형하여 비주얼적으로 불쾌감을 주는 것을 넘어선 통찰력.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바디호러에서는 그것이 빛난다. 어쩌면 가장 은유적이고 어쩌면 가장 직관적인 그의 바디호러와 그의 메시지. 아직 보지 못한 쌓여있는 작품들을 보니 든든하다. 남은 여름 동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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