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익숙한 것'이 낯설어지는 공포 [영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Das Cabinet Des Dr. Caligari), 1920
글 입력 2024.06.09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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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대표적인 독일 표현주의 영화로, ‘칼리가리’라는 이름의 흥행사가 몽유병 환자인 '체사르'를 이용하여 살인을 저지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이 영화가 ‘표현주의 영화’임과 동시에 ‘가장 오래된 공포영화’ 중 하나라는 것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에서는 현대의 공포영화에서 흔히 활용되는 기괴한 CG, 갑자기 튀어나오는 귀신, 청각적인 효과음 등 관객들에게 직관적인 두려움을 줄 수 있는 화려한 장치들은 사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충분히 묘하고, 불편하고, 무섭게 느껴지는데, 과연 우리가 느끼는 이러한 감정들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1. 표현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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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영화의 근원적인 바탕인 표현주의는, 정서적 효과를 위하여 색채와 형태를 과장하고 왜곡하는 예술 사조를 뜻한다. 이에 따라 표현주의 작가들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를 거부하며, 예술가의 감정과 감각을 그들만의 선, 형태, 색채를 통해 표현하기 시작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역시 ‘객관적인 세계의 재현’을 목적으로 삼았던 기존의 영화들과는 달리 현실 세계를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일체의 것들을 거부하였으며, 모든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튜디오에서 촬영하며 영화에 사용된 모든 배경은 표현주의 화가들의 2차원적 무대 세트로 대체되었다.

 

 

 

2. 왜곡된 현실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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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이 영화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현실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경에 사용된 모든 선들은 일그러져 있으며, 현실에서 볼 수 없는 방식으로 왜곡되었고, 애초에 3차원의 공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로우키 조명의 사용으로 의도적으로 명암의 대비를 극대화시켰으며, ‘밀실’이라는 공간의 폐쇄성을 통해 인간 본연의 두려움을 자극하기도 한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영화의 공간적 배경은 절대 초현실적인 곳들이 아니라는 것이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천상계 혹은 지하계, 혹은 그를 뛰어넘는 미지의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천막, 언덕, 지붕, 정신병원 등 오히려 현실적이다.

 

그리고 이 현실적인 공간들은, 표현주의 특유의 재구성 방식을 거치며 ‘낯설게’ 해부된다. 따라서 이 영화의 배경은 낯설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들이 낯설어지는’ 이중성으로 인해 해소될 수 없는 불안함을 야기하는 것이다.

 

 

 

3. 등장인물의 이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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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이중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배경뿐만이 아니다. 이 영화의 주요한 등장인물인 프란시스와 체사르, 칼리가리 모두 이중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일반적으로 제시되는 담론은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바로 칼리가리가 ‘정신병원 원장’과 ‘미친 사람’으로 분열된 인물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본래 정신병원 원장과 미친 사람은, 한 인물로 표현될 수 없다. 왜냐하면 정신병원 원장은 ‘치료하는 자’이고, 미친 사람은 ‘치료 받아야 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논리적인 구분이고, 이성적인 상식이며, 절대적인 대립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내부적인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결국 ‘정신병원 원장’이 ‘미친 사람’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데, 바로 이러한 지점에서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괴리가 생겨난다. ‘치료하는 자’가 사실은 미치광이라면, 과연 누가 그 정신병원의 환자가 되려고 하겠는가?


그러나 이러한 괴리는, 어쩌면 당시의 독일 사람들에게 뿌리박혀 있던 회의감이나 불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왔던 체계가 한순간에 전복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모든 삶의 덕목들이 무너졌으며,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광기를 목도하며 느꼈을 끝없는 공포와 무력감의 순간들. ‘미치광이 정신병원 의사’라는 말도 안 되는 명제가, 바로 이 비현실적인 현실을 표명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4. 욕망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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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두 번째 담론은, 카세르가 사실은 약혼녀를 쟁취하고 싶었던 프란시스의 분신이었다는 방향으로도 전개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프란시스는 친구인 알란과 제인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선택을 기다리는 인물이다. 아무리 자기와 절친한 벗이라고 해도, 세상에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를 다른 이에게 순순히 넘겨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프란시스와 알란은 친구였기에, 아무리 그녀가 좋다고 해도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드러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는 ‘친구’라는 인간관계에 요구되는 예의와 덕목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망은 억압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되돌아올 뿐이다. 따라서 이 영화의 본 줄거리를 프란시스의 정신 망상으로 이해한다면, 프란시스는 사랑에 눈이 멀어 친구를 죽이고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칼리가리라는 인물을 살인마로 매도한, 미친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라는 영화의 주제 자체를 지나치게 개인적인 이야기로 환원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으나, 이 또한 완전히 의미 없는 작업이라고 평가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언제나 가장 개인적인 것은 가장 사회적이고, 가장 사회적인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 사회는 지나치게 권위적인 체제를 앞세워 국가적 사명에 개인들을 희생시켰고, 이에 따라 개인은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프란시스의 사랑 역시 이러한 ‘억눌린 욕망’의 표상으로 본다면, 카세르라는 분신을 통해 저지른 살인은 어쩌면 독일인들이 갈망했던 원초적인 감정의 배설이자 정제되지 않은 욕망의 귀환으로 여겨질 수 있지 않을까?

 

 

 

5.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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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주의 예술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이성과 비이성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래서 낯설고, 그래서 기괴하며, 그래서 흥미롭다.

 

‘온전한 주체가 될 수 없다’는 당시 독일인들의 절망은 세상과 단절된 내면의 도피로 이어졌고, 그 속에서 인간은 또 다른 세상을 창조해냈다. 따라서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이들이 만들어낸 울퉁불퉁한 세계이자, 상처받은 자아를 방어하는 방공호였을지도 모른다.

 

 

[김보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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