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한한 가능성 속 만난 ‘지금, 여기’에 다정함을 새기자 -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영화]

글 입력 2024.03.2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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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따갑다’고 느낄 때가 많다. 방향 잃은(대개는 약한 자에게 향하는) 분노가 넘쳐나고, 최소한의 인간성과 합리성이 사라진 자리에 상대 인간을 향한 비난과 혐오가 들어선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와 잘못에도 공감과 이해보단 공격이 쏟아지고, 약자를 향한 차별이 ‘공정’과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타인을 지배하고, 짓밟고자 하는 인간의 못된 마음이 인터넷에서, 사회 각 조직들에서, 정치권에서 마구 배설된다. 이 사회의 공기가 너무 따가워서, 가끔은 참기가 힘들다.


그럴 땐 무해하고, 사랑스럽고, 마음을 따땃하게 해주는 것들을 보고, 생각해야 한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괴상하지만 사랑스럽고, 보고 있으면 마음이 뜨거워지기보단 따땃해지면서 싱긋 웃음이 지어지는 영화다. 약간의 코믹함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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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으면 어때, 난 ‘지금, 여기’를 더 사랑할 건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다중우주를 소재로 이 우주, 저 우주를 넘나드는 다소 정신없는 영화다. 다중우주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 다중우주 세상 속 무한한 가능성과 모험을 주제로 하는 반면, 이 영화는 무한한 가능성을 뒤로 한 채 수많은 한계에 갇힌 ‘하찮은’ 나와 내 삶으로 눈길을 돌린다.


우리는 가끔 ‘만약에’라는 질문에 빠진다. 만약에 이런 선택을 했더라면, 혹은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내 인생은 달라져 있을까?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삶이 포기의 연속임을 의미한다. 어떤 삶을 선택한 대가로, 다른 수많은 삶을 포기하게 되니까.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포기했던 그 삶을 살았다면 지금보다 행복할지 생각한다. ‘만약에’는 후회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주인공 에블린은 수많은 ‘만약에’를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남편과 함께 세탁방을 운영하는 이민자로, 최근 세탁방 운영과 관련된 ‘오류투성이’ 영수증 때문에 국세청에 고발당했다. 이 돈은 왜 썼는지, 세탁방 운영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몰아붙이는 국세청 직원의 질문이 쏟아진다. 남편과 딸과의 관계도 삐그덕거린다. 한때 의절했던 아버지를 돌보는 일도 힘겹다. 그녀의 인생은 수많은 포기로 점철돼 있다. 


정신없는 에블린의 삶에 알파 우주의 웨이먼드(에블린의 남편)가 찾아온다. 다중우주를 파괴하려고 하는 우주 빌런 ‘조부 투파키’를 물리칠 사람은 너무나 많은 포기를 하며 살아온, 최악의 가능성을 지닌 ‘지금, 여기’의 에블린일 것이라 확신하며. 


현실의 에블린이 너무 많은 포기를 하고 살아온 탓에, 다른 우주 속 에블린은 무엇이든 될 수 있었다. 에블린이 삶의 갈림길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면 펼쳐졌을, 그녀가 포기하고 저버린 삶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알파 우주의 에블린은 다른 우주 속 자신에게 향하는 ‘버스 점프’의 알고리즘을 만든 천재 과학자였다. 에블린은 버스 점프를 통해 다양한 우주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본다. 남편과 결혼하지 않은, 이민을 가지 않은, 딸을 낳지 않은, 세탁방을 운영하지 않는 다중우주 속 자신의 모습은 지금보다 행복해 보였다. 개중에는 스타 배우가 된 화려한 삶도 있었다. 에블린은 다중우주 속 자기 모습에 도취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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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은 결국 아무것도 될 수 없는 무(無)의 세상이다. 한때는 황홀할지 몰라도, 결국 우리에게 공허함과 허무감을 안겨준다. 조부 투파키는 어린 시절의 실패와 후회를 빚어, 사람들에게 삶과 세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허무함과 무력감을 가져다주는 거대한 ‘베이글’을 만들었다. 가운데가 뻥 뚫린 베이글의 모습은 채워지지 못하는 우리의 텅 빈 마음과 같다. 아무것도 아닌 삶과 세상. 그 ‘아무것도 아님’이 향하는 종착지는 그저 사라지는 것, 죽음이다. 


하지만 에블린은 ‘만약에’라는 이름으로 자신의 다른 세상에 도취하지도, 삶의 무한한 허무함을 느끼며 조부 투파키의 베이글에 빨려 들어가지도 않는다. 영문도 모른 채 버스 점프를 반복하며 자신을 공격하는 수많은 다중우주 빌런들에게 정신없이 대항하는 에블린이 결국 향하는 곳은 ‘지금, 여기’의 삶이다. 국세청 조사를 받고, 세탁방을 운영하고, 남편과 불화 아닌 불화를 겪고, 레즈비언인 딸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해 딸과 갈등하고, 나이 든 아버지를 돌봐야 하는 그 삶. 

 

삶이 허무로 가득 차 있어도, 아무것도 아니어도, 상식이 통하는 시간이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에블린은 허무함을 느끼고 무력감에 빠지기보다, 그 찰나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갈 것이라 모든 우주에 있는 조이(에블린의 딸, 조부 투파키는 조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에게 말한다. 어떤 우주에 있더라도 너(조이)를 지켜내고 너와 함께할 것임을 다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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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한계가 그어진 그저 그런, 하찮은 삶. 하지만 우리 삶의 한계는 우리 삶의 토대이기도 하다.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삶은 어디로도 향할 수 없고, 기댈 수 없는, 뿌리내릴 수 없는 삶이다. 그렇기에 우리 삶의 한계는 우리가 머물 곳이 어디인지, 우리가 지금 당장 사랑하고 집중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에블린에게는 그것이 자신의 가족이었고, 세탁방을 운영하고, 국세청 조사에 성실히 임하는 자신의 삶이었다. 영화는 붙잡히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기보다,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무력하게 있기보다, 그저 그런 ‘지금, 여기’의 하찮은 삶이 지닌 찰나의 행복과 사랑스러움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친절함이 늘 이긴다



왜 싸우는 거에요? 제발 서로에게 친절해지세요. (Please be kind)


수많은 우주빌런과 에블린의 싸움을 바라보던 현실 세계의 웨이먼드가 말한다. 


친절함. 상대에게 베푸는 친절이 무색해진 세상을 살고 있다. 때로는 그 친절함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친절이 희소해진 세상에서 이상하게도 친절이 지닌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는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에블린은 그런 그가 순진하면서도 바보 같고, 매번 일을 더 키울 뿐이라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 동안 바쁘고 정신없게 살아온 에블린에게는 타인에게 친절할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에블린이 바보 같다고 생각한 웨이먼드의 친절함은 - 국세청 직원에게 귀여운 모양의 쿠키를 선물하고, 세탁방을 찾는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춤을 추고, 세탁방 곳곳에 사람들이 잠시 웃을 수 있도록 인형 눈알을 붙이는 - 그 어떤 공격보다 강했다. 조사에 제대로 임하지 않는 에블린에게 화가 난 국세청 직원을 설득해 영수증 제출 기한을 늘리는 데 성공한 것도 그다. 에블린이 처한 상황을 잘 설명하면서 그는 엄격한 국세청 직원의 마음을 돌렸다.


영화 초반 에블린은 버스 점프를 통해 수많은 싸움의 기술을 가져온다. 다중우주 속 쿵푸 고수인 자신, 간판 돌리기 장인인 자신에게서 말이다. 하지만 현실 세계의 웨이먼드가 지닌 친절과 다정함의 힘을 본 에블린은 영화 후반부에서 자신만의 친절과 다정의 기술로 자신과 대적하는 이들의 마음을 알아주고, 따스하게 안아준다. 강력한 힘으로 상대를 공격하고, 짓누르고, 물리치기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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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이다, 라는 표현이 오글거리거나 과장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동료 인간을 향한 따스한 관심과 애정, 공감과 배려가 결국엔 모든 것을 이기는 그 장면에서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강함’의 개념이 달라져야 할 때다. 누군가를 무시하고, 힘으로 짓밟고, 통제하는 건 강한 게 아니다. 진짜 강인한 사람은 친절하고 따뜻하며, 친절함을 얕잡아보고 그것을 이용하려는 적의에도 자신의 다정함을 쉽게 잃지 않는다. 


전통적으로 ‘여성성’의 영역에 머물던 친절함과 다정함이 남성 등장인물인 웨이먼드를 통해 전달돼 그 메시지가 극대화되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웨이먼드가 알려준 친절함으로 에블린은 남편이 붙여대던 인형 눈알을 이마에 붙인 채, 싸우기보단 갈등을 봉합하며, 조부 투파키의 텅 빈 베이글과 같은 마음을 사랑으로 채워낸다. 


세탁방 손님들이 세탁 과정을 기다리는 동안 잠시 웃을 수 있도록 웨이먼드가 붙여대던 인형 눈알을 생각한다. 하찮고 괴상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럽다. 피식 웃음이 나오며 닫혀있던, 지쳐버린 마음이 살짝 누그러진다. 우리 삶에서 필요한 건 웨이먼드의 인형 눈알, 혹은 그것을 붙이던 웨이먼드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무해한 다정함과 약간의 유머 말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B급 감성의(그러나 영화가 B급인 건 아니다!), 피식 웃게 되는 유머들로 가득 차 있다. 수많은 다중우주 중에는 손가락이 소시지인 우주도 있다. 그 우주에서 에블린은 발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고, 자신을 몰아붙이던 국세청 직원과 사랑하는 사이다. 버스 점프를 위해선 황당한 행동을 해야 한다. 그것은 종이에 손가락 네 번 베이기, 항문에 뾰족한 것을 집어넣기 등과 같다. 황당하고 어이없지만, 어느새 영화 속 세계관의 괴상한 사랑스러움에 매료돼 피식 웃게 된다. 우리를 둘러싼 한계, 적의, 공격성,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과 무력감은 이렇게 별거 아닌 유머로 생각보다 쉽게 무너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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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정말 필요한 건, 영화에 넘쳐흐르는 무해한 친절함과 피식 웃게 만드는 유머, 그리고 따스한 사랑스러움이다. 남을 짓밟고 상처 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그것을 진짜 ‘강함’이라 착각하는 따갑고, 누구보다 나약하면서도, 텅 빈 베이글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을 본다. 글쎄, 그게 진짜 강한 건가? 강한 사람일수록 다정과 친절, 사랑을 쉽게 저버리지 않는다. 동료 인간에게 친절해지자. 가끔 생각 없고 우스워 보이면 어떤가, 웃는 사람이 되자. 일단 사랑으로 안아주자. 우리의 텅 빈 베이글을 채워내는 건 다정한 사랑뿐이라는 걸 잊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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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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