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다시 돌아온 계절 : 봄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봄을 느끼며
글 입력 2024.04.1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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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두꺼운 옷가지를 여며도 찬 기운이 들어오던 겨울을 지나, 따스한 햇살 아래서 대지의 향을 만끽할 수 있는 때가 돌아왔다. 스물 몇 번의 봄을 겪었지만, 여전히 이 계절이 주는 설렘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나를 둘러싼 공기, 온도, 햇빛…. 모든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느껴져 마음이 일렁인다. 일렁이는 마음은 우리의 발 두 쪽을 대지에서 떨어뜨려 놓는다. 붕 떠있는 기분, 그로 인해 자주 미소가 감도는 얼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자주 행복한 느낌이 든다. 그렇게 봄의 시작을 느낀다.

 

따뜻함이 감도는 하늘 아래서 오감으로 봄을 느껴 본다. 겨우내 움츠렸던 것들이 하나 둘 기지개를 켜는 것을 목도하고, 거리에 옅게 깔린 꽃내음을 한아름 맡는다. 거리는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가득하고, 그들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듣고 있으면 함께 즐거워지는 것은 덤이다. 또 제철 나물과 과일을 입 안 가득 넣고 혀로 봄을 마중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손을 마주 잡고 또 껴안음으로써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잠자던 세포에게 봄이 왔음을 일러준다. 살아있음을 부지런히 감각한다.

 

이처럼 싱그러움이 충만한 계절엔 설렘이 가득하다. 설렘은 잠깐의 감정이니까 허상이라고? 그렇지만 나는 그 허상이 우릴 살게 한다고 굳게 믿는다. 일상에서 느끼는 희망과 행복이, 길고 힘든 우리 삶을 지탱해주는 대들보니까. 삶은 의미를 찾고 더하는 과정 속에서 더욱 풍요로워지기 마련이다.

 

그래서인가, 내게 있어 봄은 무엇이든 할 용기를 준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찬 착각 속에 우리를 빠뜨린달까. 그래서 3월에 학기가 시작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해가 시작된다고 해서 우리의 하루가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이전의 삶을 청산하고 다시 태어나는 기분으로 1월 1일 아침을 맞이하는 것처럼 새학기를 시작하는 거지.

 

 

봄_3.JPG

 

 

내게 있어 봄은 시작을 의미하는 계절이다. 매일 뜨는 해도 더 밝게 느껴지고, 매일 걷던 거리도 더욱 생동감 넘치게 느껴진다. 그때문에 다시 한 번 힘을 낼 마음을 갖는다. 삶의 의지에 다시 불을 지피는 순간인 것이다.

 

날씨와 계절을 많이 타는 편이라, 겨울이면 우울감을 자주 느낀다. 내게 필요한 일조량에 턱없이 부족한 겨울의 낮은 다른 이들보다 훨씬 짧게 느껴진다. 그렇게 형편없는 인생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에 마법처럼 봄이 찾아 오고는 한다. 해 뜨는 시간이 앞당겨지니 더욱 부지런히 움직이게 되는 것은 당연하고, 날씨도 좋고 풍경도 한층 싱그러워지니 마음도 쌩쌩해진다. 앞서 말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런 자신감, 그것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이다.

 

봄 기운이 만연한 어떤 날에는 만물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는다. 날이 따뜻해졌으니 밖으로 나가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은 당연지사. 한참동안 창밖을 바라 보거나, 산책을 하며 내 주위를 둘러싼 것들에 관심을 기울인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하나 둘 피어난 꽃망울들, 바람이 불면 순리대로 흩날리는 꽃비. 꽃이 진 나뭇가지엔 벌써 연둣빛 잎이 빈 자리를 메운다. 조금만 더 있으면 푸르고 풍성한 잎들을 마주하게 되겠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 인생과 퍽 닮아 있다.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들을 보고 있으면 어떤 날엔 슬퍼지지만, 대체로 아름답다는 생각만이 든다. 특히 요즘은 나무에게서 인생이 보인다. 텅 비어있던 나뭇가지가 이내 형형색색 꽃을 달고, 이후엔 온세상을 초록 빛깔로 물들이고. 점점 더 하늘에 가까워지다가, 이내 알록달록한 발자취를 땅에 남기는 것. 무거워질 대로 무거워진 열매도 다시 땅으로 돌아가고. 그리고 다시 텅 빈 몸통. 꼭 사람의 일생과도 같지 않은가. 

 

*

 

글을 쓸 때 음악을 듣는 것은 몰입을 위한 장치 중 하나다. 커다란 헤드셋으로 두 귀를 막고서 연신 빈 화면을 뚫어져라 보다 보면, 어느새 자판 위에서 손가락이 춤을 추고 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즐기는 편이지만, 가사 없는 음악을 듣는 게 집중이 잘 되므로 글을 쓸 땐 뉴에이지나 클래식을 튼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귓가에 히사이시 조의 <인생의 회전목마>가 재생되고 있다.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 삽입된 <인생의 회전목마>는 주인공 소피와 하울의 서사를 함축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과거에서 또 미래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찾아 헤메는 그들의 여정을 표현한 곡이다. 반복되는 주선율이 처연하면서도 아름다워 인상적이다. 한참 이 곡에 빠져있을 당시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인생을 너무나도 잘 그린 곡이라고. 5분짜리 곡에 몇 십년의 인생을 모두 담아낼 수 있다니. 인생의 기승전결을 음악에 녹여낸 천재적인 재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 버전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오케스트라 버전을 유달리 좋아한다. 메인 멜로디를 연주하는 구슬프면서도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 그리고 곡 전체를 풍성하게 만드는 타악기 등 다양한 악기의 소리가 만들어 내는 조화로움은 삶을 연상시킨다. 단조롭다고 생각할 수 있는 멜로디지만 다양한 악기의 소리가 합쳐졌을 때 완성되는 소리, 그 시너지는 실로 대단하다. 그냥 음악이 아니다. 인생 그 자체를 악보에 옮겨 두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이렇게 음악을 듣다 보면 마치 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꼭 소설이나 영화 속의 주연이 된 느낌. 그런데 실상 현실에서는 스스로가 조연처럼 느껴지는 경우들이 많다. 세상이 만든 어떤 기준점에 도달하지 못해서이거나, 특별하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생각이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주인공 같은 사람들을 질투하곤 했다. 나쁜 마음이지만, 그런 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어떤 행동을 취하는 것도 아니니까 하고 치부하며 문제가 아니라는 식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마음을 먹었단 사실이 깨나 부끄럽다. 이 짧은 생을 그런 식으로 허비하다니. 종종 후회가 되지만 지나간 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법이므로, 다만 앞으로의 생에 그런 일을 만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소유욕 또한 다스려 보기로 한다. 이 세상에 통제하고 가질 수 있는 것은 내 마음 뿐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내 마음처럼 되는 것은 없지만, 나의 것은 마음 먹은 대로 할 수 있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나 이외의 모든 것엔 크게 마음을 쓸 필요가 없다. 봄이 오고 가는 것처럼 그저 그것을 그대로 두며, 뜻대로 되게 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다. 이것은 비단 관계에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건 또한 마찬가지다. 쓸모가 있기 때문에 구입하여 그것을 사용하지만, 쓸모가 없어지면 그것의 생명은 끝이 난다. 그렇다면 나는 이 물건을 소유한 것인가? 소유했던 적은 있지만 완전히 소유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조연이어도, 손에 쥐고 있는 것이 없어도, 그저 지금 여기 살아있다는 감각 그리고 매일매일 작은 행복을 주워 담아 일상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 그런 태도를 갖고 인생을 대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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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인간은 죽음을 향해 간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돌아온 계절은 더욱 소중하다. 죽어가는 우리에게 지금을 즐기라 일러주는 것 같아서. 돌아온 계절을 마주할 때면 오락실에서 하던 게임이 생각난다. 동전을 하나 더 넣어, 다시 게임을 시작하는 그 순간 같아서 꼭 새로운 목숨을 얻은 느낌이 든다. 마치 새로 주어진 덤 같은 삶. 그리고 그런 삶은 매 년 봄에 찾아온다.

 

돌고 돌아 계절은 다시 우리에게로 온다. 지금 봄이 온 것처럼. 불확실한 삶에서 예견 가능한 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가. 이 현상은 자전하는 지구가 주는 선물이다. 왔다 가는 계절 속에서 추억을 만들고, 다시 돌아온 계절에 그것들을 곱씹어 보고 또 다른 레이어를 씌우고. 그렇게 자기만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 속에서 우리는 주연이든 조연이든 아름다운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돌아온 봄, 지금을 만끽하도록 하자. 현재에서 감각할 수 있는 행복을 주워 담으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자. 이듬해 봄엔 또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갈지 너무 기대가 된다. 이게 인생이지!

 

 

[강윤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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