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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의
줄거리 및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독하고 있던 OTT 서비스에서 몇 년 전부터 꼭 보고 싶었던 영화가 있었는데 이번 달 말에 종료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혐오스런 마츠코의 일생>이라는 영화다.
문득 생각이 난 7월 10일 밤에 영화를 봤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영화의 시간적 배경이 2001년 7월 10일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24년 전의 마츠코를 보았다.
마츠코의 일생 속 인물들
마츠코의 일생을 그토록 ‘혐오스럽게’ 만든 원흉은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일생에 이름을 남긴 여러 남성들이 스쳐 간다.
아버지, 제자였던 류 요이치, 교감 선생, 동료 교사 사에키, 작가 지망생 야메카와, 남동생 노리오, 야메카와의 라이벌인 오카노, 기둥서방 오노데라, 이발사 시마즈, 아이돌 히카루겐지. 이 중 교감 선생, 오노데라를 제외한 모든 남자에게 마츠코는 순수한 믿음과 사랑을 주었다. 특히 마츠코가 연인으로서 사랑하며 가정을 꾸리길 원했던 남자들은 야메카와, 오카노, 시마즈, 류 요이치, 이렇게 네 명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집에 올 때마다 몸이 약한 여동생 쿠미의 선물 하나만 사 왔고,
제자였던 류 요이치는 마츠코에게 절도 누명을 씌웠고,
교감 선생은 권력을 이용해 마츠코를 성희롱했고,
작가 지망생 야메카와는 돈을 요구하며 폭력을 일삼다 마츠코의 눈앞에서 자살했고,
남동생 노리오는 절연을 선언했고,
오카노는 마츠코의 몸만을 원했고,
오노데라는 마츠코가 벌어온 돈만을 원했고,
시마즈는 마츠코가 옥살이하는 동안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어른이 된 류 요이치는 마츠코의 끝을 알 수 없는 사랑에 겁먹은 채 도망쳤고,
아이돌 히카루겐지는 마츠코의 일생을 담은 수십 장의 편지를 무시했다.
살아생전 수많은 남자들에게 돌려받을 길 없는 깊은 사랑을 주었던 마츠코는 정말 그 사랑을 돌려받지 못했다. 마츠코 본인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해 그저 “왜?”라는 질문만 반복할 뿐이었다.
반면, 몸이 약한 여동생 쿠미, 교도소에서 만났던 친구 메구미는 마츠코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들이다. 그러나 정작 마츠코가 그녀들에게 깊은 사랑을 주지 못해 관계가 무너졌다. 마츠코는 사랑을 주는 법만 알았지, 받는 법은 몰랐다. 심지어 자신을 사랑하는 것조차 하지 못해 자기 삶과 그들의 삶을 비교하며 쿠미와 메구미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쿠미와 메구미는 마츠코가 뿌리치고 부정해도 끊임없이 손을 내밀어준 유이한 사람들이었다. 마츠코가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되어 쿠미와 메구미의 노력에 부응했더라면, 혹은 마츠코가 사랑했던 남자들 중 한 명이라도 마츠코를 따뜻하게 대해줬더라면 마츠코의 일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말미에 마츠코가 쿠미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메구미에게 다시 연락해 보려고 시도한 것은, 마치 쿠미와 메구미의 믿음에 뒤늦게라도 보답하려는 마츠코를 보는 것 같아 좋았다. 더 이상 삶에 대한 희망을 갖지 않을 것처럼 보였던 마츠코를 움직이게 해준 인물들이 다른 누구도 아닌 쿠미와 메구미라는 점이 따뜻하게 와닿았다.
마츠코와 사랑
마츠코에게 큰 상처를 안겨준 사건은 너무나도 많지만, 마츠코가 직접적으로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라고 말한 순간이 몇몇 있다.
류 요이치가 수학여행에서 절도 사건에 휘말려 담임이었던 마츠코가 그 누명을 뒤집어쓰고 학교에서 해고당했을 때, 마츠코의 첫 번째 남자였던 작가 야메카와가 눈앞에서 죽었을 때, 그리고 오노데라를 홧김에 죽였을 때까지, 마츠코는 총 세 번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던 순간, 마츠코의 삶에 대한 의지를 일깨워준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학교에서 해고되었을 때는 야메카와를 만나 사랑했고, 그런 야메카와가 죽었을 땐 오카노를 만나 사랑했고, 오노데라를 죽였을 땐 시마즈를 만나 사랑했다.
마츠코가 꾸준히 삶을 살아가게 해준 원동력은 마츠코의 일생을 타락하게 만들기도 한 사랑이었다. 진정한 사랑을 받아보지 못해서일까, 그녀는 사랑하지 않아도 될 것마저 바보같이 사랑했고, 포용했다.
마츠코를 포함한 영화 속 대부분의 인물들이 사랑하는 방식이 참 아쉽고 안타까웠다.
마츠코가 인생의 심연으로 빠지는 모습을 보면 그녀의 아버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편애가 심했던 아버지로 인해 마츠코가 갖게 된 결핍은 결국 끊임없이 남자들의 사랑을 갈구하는 행동으로 드러났다.
마츠코의 일생을 험난하게 만든 첫 사건이 절도 사건의 누명을 쓴 것임은 맞지만, 그 이후부터 그녀가 한 다소 이해되지 않는 여러 선택들은 아버지로부터의 애정 결핍 때문일 것이다. 분명 마츠코에게는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을 여러 선택지가 있었다.
그렇다고 마츠코의 아버지가 마츠코를 사랑하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다. 마츠코가 집을 나간 뒤부터 마츠코의 아버지는 매일 일기장의 마지막을 ‘마츠코 연락 없음’이라는 문장으로 마무리했다. 사랑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방식과 표현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모로 안타까운 사랑이 가득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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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시사하는 바가 너무 많아 글에 모두 담기는 어려웠다. 마츠코의 일생을 험난하게 만든 인물이 중학생(류 요이치)이었던 점, 마츠코를 살해하며 마츠코의 일생을 강제로 끝내버린 인물 또한 중학생(노숙자 사냥꾼)이었던 점은 당시 일본 사회의 청소년 문제를 짐작게 한다.
또한 교사, 작가 지망생, 이발사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던 남성 인물들에 비해 몇 안 되는 여성 인물들은 (그마저도) 성적으로 착취당하거나 몸이 아픈 것으로 묘사되었다. 마츠코가 아버지를 비롯한 모든 남성에게 자신을 맞추고자 지극히 노력했던 것까지, 수동적이었던 여성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화의 암울한 흐름과 대비되는 밝은 포스터와 중간중간 등장하는 뮤지컬식 구성은 영화의 비극성을 더 극대화하는 장치로도 느껴졌다.
꿈을 꾸는 건 자유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고 행복한 인생을 보내는 사람들은 극소수.그러니까 그 외 대다수는 슬픈 한숨을 짓거나 술독에 빠져 있거나일찌감치 인생을 끝내거나 웃어넘기거나 돌연 범죄를 저질러 형사에게 쫓기거나뭘 해도 인생이 캄캄하다.- 마츠코의 조카, 쇼의 내레이션
어릴 땐 누구나 자기 미래가 밝을 줄 알아.하지만 어른이 되면 자기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고괴롭고, 한심하고, 열받고그런 걸 전부 네 탓으로 돌리고.- 쇼의 꿈속 마츠코의 내레이션
우리는 모두 각자의 인생에서 주인공으로 살아가며 다양한 꿈을 꾼다. 마츠코 또한 그랬을 것이다.
매 순간 치열하게 사랑했던 마츠코를 과연 혐오스럽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영화를 본 사람들은 대부분 마츠코가 아니라 마츠코의 일생을, 또는 마츠코의 일생을 그렇게 만든 사회와 주변 사람들을 혐오할 것이다.
‘구부렸다 몸을 쭉 뻗어 하늘에 닿아보자’라는 노래를 계속 부르던 마츠코는 가사 그대로 계속 구부려지고, 계속 뻗어내는 것을 반복하다 결국 하늘에 닿았다. 하늘에서 쿠미를 만나 못 다한 말을 나누는 마츠코를 상상하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