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들어줘, 너희를 위한 연주를 [영화]

이곳은 서울. 사람들이 떠난 재개발 지역이다. 임진평 -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글 입력 2022.02.14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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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OTT 사이트를 둘러보며 볼만한 게 있나 찾아보던 와중에 발견한 한 다큐멘터리 영화.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그 제목이었다.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이라니, 동물을 사랑하는 나에게 딱 맞는 영화가 아닐까.


그렇기에 오늘은 임진평 감독의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재개발로 인해 사람들이 떠나간 노원구 중계동의 백사마을. 사람들은 떠나갔지만 개와 고양이는 남겨졌다. 감독은 담백하고 잔잔한 시선으로 남아 있는 이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전에 없던 새로운 사회 문제를 조망하거나 획기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영화는 아니지만, 꾸준히 제기되어 오던 문제를 다시 한 번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여러분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2019년 서울. 떠나간 이들 그리고 남겨진 것들. 그 남겨진 떠돌이 동물들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좋아해서 조금은 불행해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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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그 사이 하나둘씩 떠나갔고, 버려진 집에는 버려진 개들이 남았다.

 

그리고 목줄이 풀린 개들은 산으로 올라가 들개가 되었다고들 했다.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中]

 

 

영화의 시작에서 감독은 이 다큐멘터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밝힌다. 도심에 나타난 들개 무리. 그들의 위험성. 아니, 도시에 들개라니.

 

국어사전에서 들개의 정의를 살펴보면 '주인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는 개'라고 되어 있다. 주인은 어디로 간 걸까. 주인은 왜 버렸을까. 영문도 모른 채 남겨진 개들은 그렇게 거리를 배회한다. 편안하게 제 한 몸 뉠 곳도 제대로 찾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그저 연명한다. 그렇게 떠돌다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들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아빠, 엄마, 주인님. 왜 나를 두고 가셨어요?'

 

착하고 온순한 개는 거리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없다. 사나워져야 한다. 독해져야 한다. 그래야 음식물 찌꺼기나마 먹을 수 있고, 깨끗한 물이나마 마실 수 있다. 버려졌지만 그래도 살아가야 하니까.

 

버린다, 버려졌다는 말이 꽤나 묵직하게 다가온다. 우리가 버리는 것은 보통 쓰지 않는 가구, 낡은 옷가지, 생활 쓰레기 등이다. 개는 쓰지 않는 가구도 낡은 옷가지도 생활 쓰레기도 아니다. 그럼에도 버려진다. 같은 생명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않는 것일까? 귀여운 인형, 집 지켜주는 경보기 등으로만 생각했기에 그렇게 쉽게 버리고 떠날 수 있는 것일까?

 

"아, 안되겠어요. 너무 낑낑거리고 짖어대는 통에 이웃에 민폐가 될 것 같네요. 혹시 환불할 수 있을까요? 결제는 신용카드로 했는데."

 

사람을 좋아해서 인간 사회에 깊숙이 들어온 개들의 이야기. 사람을 좋아해서 조금은 불행해진 이야기.

 

 

 

미안해. 너희를 아프게 하려는 게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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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사람을 제외하면 고양이 포식자가 따로 없다. 그렇다 보니 인위적으로라도 개체 수를 조절해 주어야 할 필요가 생기고, 이때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은 현재로서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다.

  

고양이는 어쩌면 인간이 만든 도시에서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동물일지 모른다.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함께 산다는 것. 이보다 더 멋진 일이 또 있을까.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中]

 

 

고양이는 독립적인 영역 동물이다. 작고 유연하고 날렵하기까지 해서 거리에서 살아남기 비교적 용이하다. 사람을 제외하면 생명을 위협할 만한 존재도 딱히 없다. 그렇기에 개체 수가 쉽게 늘어난다. 고양이는 물론 귀여운 생명체이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으로 인간에게 유익하기만 하지는 않다. 그래서 TNR(Trap, Neutuer, Return) 사업을 민간단체와 지자체에서 시행 중이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그 도시 속에 고양이들이 이미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존재하기에 공생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누군가는 '아무리 좋은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도 결국엔 일방적으로 잡아들여서 중성화 시키는 것 아니냐, 고양이들이 그것을 원하는지 아닌지도 모르면서'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종 자체가 다른 이들과 원만한 소통이 가능한 방법이 현제 있는지 되묻고 싶다. 혹은 지금의 TNR 사업보다 더욱 효과적으로 고양이와 인간의 공생을 꾀할 수 있는 방안이 있는지 묻고 싶다.

 

있다면 나는 그것에 전적으로 동의하겠다. 절대적으로 피해를 보지 않는 방법은 없는 듯하다. 길고양이에게 음식을 절대 주지 말라고 하는 것도, 무조건적으로 주라고 하는 것도, 잡히는 족족 안락사를 시키라는 것도, 그들은 그들대로 살게 내버려 두라는 것도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고 본다.

  

영화에서 백사마을의 여러 고양이들은 그렇게 중성화를 마치고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미안해. 너희를 아프게 하려는 게 아냐. 우린 같이 살아갈 방법을 찾고 있어.'

 

 

 

들어줘, 너희를 위한 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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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과 때로 침묵할 수 없는 것들을 표현한다.

  

"마을에 살고 있는 개와 고양이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아이들을 위해서 가지는 연주회입니다."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中]

 

 

2018년 가을 노원구 중계동의 백사마을에선 '개와 고양이를 위한 104 콘서트'가 열렸다. 백사마을의 남겨진 개와 고양이들을 위한 콘서트다. 러닝타임 중 꽤나 많은 시간이 할애되었는데, 어찌보면 영화의 주제 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개와 고양이를 위한 시간.' 감독이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버려지게 해서, 남겨지게 해서 미안해. 너희를 위해 준비한 노래야. 부디 들어주렴."

 

음악을 연주하면서 카메라는 백사마을의 여러 곳을 비춘다. 휑한 골목길. 무너져가는 대문, 눈 오는 날의 버려진 집 마당, 비 오는 날의 처마 끝.

 

음악을 연주하면서 카메라는 백사마을의 개와 고양이들을 비춘다. 골목길에 나른하게 누워있는 개, 무너져가는 대문 사이로 술래잡기하는 아기 고양이, 눈 오는 날 총총거리며 발자국을 새기는 개와 고양이들, 비 오는 날 어느 집의 처마에서 비를 피하며 하릴없이 비를 바라보는 이들, 싱그러운 풀들의 냄새를 맡는 이들을 비춘다.

 

그들은 104 콘서트를 즐겼을까? 그 노래가 그들에게 닿았을까? 후에 동물들의 말을 정확히 번역해 주는 기계가 상용화된다면 백사마을로 찾아가 묻고 싶어진다.

 

"그 때 울려 퍼지던 음악, 기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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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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