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삶이 내게 쥐어줄 안락사 약을 거부하며

삶의 음침한 예고에 대한 답장
글 입력 2024.06.0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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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찌개를 위해 된장과 두부를 손질하다가 냄비에 넣어만 두고 외출한 적 있다. 나는 냉장고에 넣어두지도 못하고 급하게 나가야 했던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도 집에 있는 냄비에 대한 생각을 잊어버릴 수 없었다. 그 생각은 점점 격렬한 망상으로 이어졌다.

 

상상 속에서 일분은 한 시간이 되고 일 초는 하루가 되었다. 냄비 속에 있는 두부와 된장은 빠르게 썩어들어갔다. 하얀 두부에 하얀 곰팡이가 슬고 기분 나쁜 검정 털 같은 것이 자라난다. 열려있는 냄비 뚜껑을 열고 바퀴벌레가 기어들어가 그것을 파먹고, 주방에 그 역겨운 알을 뿌린다.

 

나는 역겨움과 동시에 상실감을 느낀다. 제대로 챙겨 먹지 못했던 나에게 한 끼로서 나의 작은 소망이 담겨있었던 것,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두부의 질감, 따뜻하고 부드러운 된장 국물. 하지만 이제 상상 속에서 입에 넣을 수 없는 쓰레기가 된 것. 그것은 마치 언젠가 닥쳐올 나의 삶을 음침하게 예언과 같이 느껴졌다. 참을 수가 없어진 나는 주변에 사는 사촌 동생에게 제발 그것들을 냉장고에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내 사촌 동생은 차가운 시체 안치실처럼 하얀 천을 덮어 그것들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내가 자취하면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 중 하나는, 이 저주받을 현실의 상온에서 모든 육체와 정신이 천천히 죽어가고 썩어들어간다는 것이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야채들의 시체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은 찰나에 불과하다. 로미오가 줄리엣의 무덤을 빛으로 가득한 신방으로 묘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이 두려운 만큼이나 나이 드는 것이 두렵다. 내가 기억하지 못했던 시절 지성과 신앙심을 동시에 가졌다던 외할머니가 아무런 감정 표현도 하지 않고 하얀 마네킹처럼 앉아있는 것이 두렵다. 어머니와 나의 목소리를 따라 기도하는 목소리 중에 모든 단어가 아니라 몇 개의 단어만이 뚜렷하게 떠오르는 그녀의 삶이 두렵다. 내가 그 자리에 앉는 것도, 내가 사랑하는 얼굴들이 그곳에 앉는 것도 너무나 두려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시간의 흐름을 타고 내 살갗에도 하얗고 검은 털이 자라날 것이고 나는 그것을 털어내려고 하다가 내 살갗을 긁게 될 것이다. 살갗은 어린 시절의 탄성을 잃어버리고 맥없이 붉은 피를 남기고 떨어져 나갈 것이다.

 

나는 종종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피해 안락사를 선택하는 꿈을 꾸곤 한다. 약을 먹건, 폭탄을 누르건, 더 살고 싶지만, 고통스러운 죽음만을 피하기 위한 선택을 했다. 하지만 이 꿈을 꾼 내가 자살 희망자나 우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정말로 그 단어들은 나에게 인접해있지만, 나의 삶을 지배하지 못한다. 애당초 빈정거리는 표현이 아니라, "우리의 삶은 반드시 닥쳐올 끔찍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 안락한 죽음을 원한다"라는 것은 우리가 낭만적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이미 정해진 사실이다.

 

우리는 언제든 반드시 회복할 힘도 남아있지 않은 몸과 정신을 가지게 된다. 그것으로부터 고개 돌리기 위해 삶의 풍요로움을 바라보려고 할 뿐이다. 닥쳐올 죽음의 자리에 '안락한 죽음'을 배치하는 것은 아주 현명한 일이다.

 

물론 죽음에 집중하기보다는 아직도 세상에 아름답게 흩뿌려진 생명력에 집중할 수 있다. 비죽거리면서 나는 영원히 늙지 않는다고 헛소리를 지껄여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은 쪽을 선택한다. 어차피 다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에 의해 살해될 감정들이라면, 나라도 냉장고에 넣어 살려두고 싶다.

 

그래서 나는 공원의 노인들을 보면서 이런 질문들을 그들에게 던진다. 노인들도 섹스를 자주 생각할까? 그들이 관계를 맺은 건 얼마나 될까? 달리면서 죽어가는 자신의 몸에 대해서 생각하지는 않을까? 어린 시절과 비슷한 배앓이를 느끼면서 어쩌면 이것이 암과 같은 파국적인 병의 징후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증오가 여전히 남아 욕을 뱉을 수 있을까?

 

어머니의 성생활에 대해 집요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나는 나를 둘러싼 세상이 늙어버리길 원하지 않는다. 미추를 넘어, 생명만이 뿜을 수 있는 감정이 영원히 타오르는 것처럼 살아가길 원한다. 죽음으로부터 눈 돌릴 수 있는 것처럼 사랑과 증오를 영원히 느끼고, 얄팍한 위선과 이기심으로 타인을 대하길 원한다.

 

닥쳐올 죽음을 피하기 위해 젊은 시절에 안락사 알약을 잔뜩 삼키는 것처럼, 생명력이 사라진 미라처럼 썩어갈 바에는 생생한 피와 똥으로 색칠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병자가 되길 원한다. 부디 지금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미친 늙은이길. 나의 정신세계 속에서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손으로 토막내온 기분 나쁜 진짜 나의 감정, 그 광기와 절실함이, 그것을 간절히 원한다.

 

 

[이승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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