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생존자를 위한 정의를 찾아서 - 진실과 회복

글 입력 2024.03.2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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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하버드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이자, 트라우마 치료 및 연구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주디스 루이스 허먼. ‘트라우마를 겪는 이들을 위한 정의’라는 부제를 단 그의 저서 <진실과 회복>을 처음 받아들 때는, 트라우마 극복 및 치료에 관한 심리 혹은 정신의학적 설명을 기대했다. 하지만 책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저자는 트라우마를 겪는 개개인이 어떻게 이를 극복하고 치료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보다,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가 보다 거시적인 사회 공동체의 문제임을 짚는다. 따라서 이 책은 폭력 생존자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선 ‘생존자 정의’가 실현되는 ‘윤리 공동체’를 만들어야 함을 역설하며, 생존자들의 증언을 통해 이들이 원하는 정의와 그것이 구현된 공동체를 논한다.


그가 담당했던 환자 대부분이 성폭력, 아동학대, 가정폭력 생존자였기에, 그는 개인의 트라우마를 일으키는 폭력의 기저에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또 가장 많은 사람들을 억압해 온 ‘가부장제’가 놓여 있음을 밝힌다. 그는 생존자 정의가 실현되는 윤리 공동체와 생존자 치유를 위한 단계적 해법을 제시하기 전 가부장제가 어떻게 작동하며, 그것이 어떻게 한 개인의 인격을 말살하는지 충분히 설명한다.


답답했던 속이 시원해지는 기분이었다. 폭력 피해와 그로 인한 트라우마가 그저 개인의 불행으로만, 한 개인이 직접 ‘극복해야 할’ 문제로만 치부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트라우마를 야기하는 폭력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폭력적 사회 시스템의 결과로써 발생한다. 상처와 트라우마를 딛고 일어서기 위한 개인적 차원의 치료도 물론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의 트라우마가 ‘사회적 문제’라는 공동체의 합의로 공동체가 이들의 치유와 회복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폭력이 용인되는 사회 시스템을 바꿔 내야 한다. 사회가 폭력 생존자들을 공동체에서 배제하고, ‘피해자성’을 운운하며 공격한다면 개개인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치료는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결국 생존자들을 치유하기 위해, 즉 그들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다시 일상을 되찾기 위해, 다른 무엇보다도 사회 정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진실과 회복>은 폭력 생존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원하는 사회 정의를 제시하고, 그것이 구현된 공동체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고민하며 여러 사회적 해법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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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을 고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폭력 생존자들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시도는 늘 존재해 왔다. 모든 폭력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만들어 낸 침묵과 고요의 상태를, 폭력에서 벗어난 ‘평화’ 상태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대부분 권력의 열세에 있는 폭력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기득권자들은 자신의 특권을 침해하는 ‘분란’과 ‘공격’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폭력을 당해온 피해 집단들에겐 늘 ‘말썽꾼’이라는 비방이 잇따랐고, 사회적 폭력에 문제를 제기하고 연대하고자 하는 이들의 시도에는 ‘사회질서를 폭력 수단으로 전복하고자 한다’는 오명이 씌워졌다. 생존자는 그렇게 폭력 피해뿐 아니라 사회의 공격도 받아내야 했으며, 가해자를 비롯해 폭력을 너무나 쉽게 용인해 준 사회 시스템과 수많은 방관자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받고, 공동체에서 고립됐다.


이러한 현실에서 생존자들이 말하는 생존자 정의의 첫 단계가 공동체로부터 자신의 피해를 ‘인정’받는 것임은 놀랍지 않다. 주디스 루이스 허먼 교수가 인터뷰한 생존자들은 모두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자신의 폭력 피해가 어떤 것이었으며, 그것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훼손했는지, 그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를 공동체 구성원들이 제대로 인정하고, 이해해 주길 바랐다. 공동체가 생존자가 지닌 울분과 분노를 공유하며 그것의 정당성을 인정해 주고,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 생존자는 비로소 자신이 공동체의 온전한 구성원으로서의 자리를 되찾았다고 느낄 수 있다.


생존자들은 자신의 피해를 왜곡하거나 외면하고, 침묵을 강요하는 수많은 방관자들을 마주할 때 고립되고, 공동체로부터 무시당한다고 느꼈다. 그러나 생존자 정의가 실현된 윤리 공동체 내에선 그동안 침묵해 온 방관자들은 폭력 피해에 공분하고, 생존자들을 지지하며 그들과 함께 연대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흔히 생존자가 지닌 울분의 감정, 또 이에 공감하며 분노하는 공분은 파괴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울분과 공분은 사람들 간의 연결을 창출해 내는 유익한 감정이다. 윤리 철학자 버나드 윌리엄스는 공유된 감정이 사람들을 감정 공동체로 묶어주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쯤에서 생존자들이 이야기하는, 생존자 정의가 구현된 윤리 공동체가 어떤 모습인지 짐작이 간다. 단순히 가해자를 엄중히 처벌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폭력 피해를 공동체 차원의 문제로 보고, 자신의 울분을 공동체 내에서 함께 나눌 수 있으며, 공동체 구성원들이 자신의 문제에 함께 분노하고, 폭력 피해를 용기 내 고발한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것이다.


가장 우선하여 이야기되는 생존자 정의는 공동체의 경청과 공감, 지지다. 그 기본적인 정의와 너무나 동떨어진 우리의 현실을 본다. 용기를 낸 생존자들의 목소리는 사회가 강요하는 완전무결한 ‘피해자성’에 의해 왜곡되고 공격받는다. ‘피해자가 뭐 저래?’, ‘진짜 피해자 맞아?’하는 폭력적 의심은 피해자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규정한다. 그 ‘피해자성’은 성별, 나이, 인종, 외모, 옷차림, 말투, 가해자와의 관계, 폭력 피해 이후의 삶에 이르기까지 ‘피해자’의 거의 모든 것이 어떠해야 하는지 규정해 두었다. 이런 팍팍한 기준을 통과한 ‘진짜’ 피해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폭력으로부터 피해받았음에도, 그들은 사회로부터 자신이 피해자일 수 없는 수많은 이유를 들어야 한다. 도서 <진실과 회복>과, 그에 대한 나의 글에서 피해자라는 말 대신 생존자라는 말을 쓰는 이유도 피해자성에서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들을 폭력 피해를 ‘당한’ 사람으로만 규정해 그들에게 수동성, 약자성을 부여하기보다, 그들이 폭력 피해로부터 ‘살아남은’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진짜’ 피해자로 승인되지 못하고, ‘가짜 피해자’, 즉 거짓말쟁이로 몰린 생존자들은 자연스럽게 그가 속한 사회에서 무시당하고, 고립된다. 그들에겐 지금까지 유지돼 온 조직의 가짜 평화를 깬 괘씸죄도 추가된다. 사회 여러 조직에서 성폭력 피해 신고를 하고, 조직 내 폭력에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그 조직을 떠나는 상황은 비일비재하다. 그들은 자신의 문제 제기를 왜곡하고 외면하며 도리어 피해를 입은 자신을 비난하는 조직을 마주한다. 공동체 내에서 그들이 서 있을 곳은, 그렇게 사라진다.


도서 <진실과 회복>은 가해자의 처벌보다 생존자의 회복, 공동체로의 복귀를 우선시하는 생존자 정의를 말한다. 공동체로부터의 인정에서 시작된 이 정의는 각 챕터 별로 사죄, 책임지기, 배상, 재활, 예방으로 이어진다. 각 챕터마다 폭력 피해 생존자들의 바람과 그들 각각의 정의가 담겨 있다. 생존자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다 보면, 무엇이 생존자를 위한 최선의 시스템일지 고민하게 된다.


가해자를 처벌하는 일에만 초점을 둔 현재의 사법 시스템이 생존자를 위한 정의와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도 생존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된다. 그들은 검사와 피고인 변호사의 법정 싸움에서 그저 ‘증인’으로서만 존재해왔다. 가해자가 폭력 행위를 부인하는 것이 늘 유리한 선택인 시스템 탓에, 피고인 변호사의 생존자 흠집 내기와 모욕도 감당해야 했다.

 

이러한 사법 시스템하에서 정의는 늘 숫자로 이야기된다. 물론 가해자의 가해 행위에 걸맞은 형벌이 내려지는 일도 흔치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그러나 긴 형량을 선고하면 그것이 정의일 수 있을까? 엄중하면서도 적절한 형량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생존자들은 폭력 행위를 저지른 가해자들이 사회로부터 분리됨으로써 또 다른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나, 그들은 단순히 가해자가 높은 형량을 받는 것이 자신들을 위한 정의라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가해자 처벌, 분리보다 이전 생활로의 복귀를 더 우선시했다. 그렇다면 생존자를 위한 가해자의 ‘책임지기’는 어떠해야 하는가. 가해자는 자신의 가해 행위를 어떻게 생존자와 공동체에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 생존자가 배제된 시스템 하에서는 판사가 형량으로서, 숫자로서 정의를 실현했지만, 생존자를 위한 정의 실현에는 보다 많은 고민과 논의, 복잡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 보면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한다. 각 챕터 별로 당연하게 생각했던 사죄, 책임지기, 배상 등의 형태를 처음부터, ‘생존자를 위하는 방식으로’ 다시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까지 우리의 법적, 제도적 시스템이 생존자를 철저히 배제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진실과 회복>은 각 챕터 별로 생존자를 위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나름의 대안들을 제시한다. 생존자와 가해자, 그리고 여러 이해당사자와 담당자들이 모여 앉아 생존자의 폭력 피해 경험과 그가 원하는 가해자의 사죄, 책임지기의 방식을 들으며 이에 대한 합의를 이뤄나가는 모델도 있다. 이러한 대안적 방법들의 실효성 연구나 현실화 가능성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하지만 책이 제시하는 여러 대안과, 또 이러한 형태의 정의를 외치며 기존 시스템을 비판하는 생존자들의 외침을 읽다 보면 현재 우리의 ‘효율적’ 정의 시스템이 결코 최선의 정의일 수 없음을 깨닫는다. 정의를 위해, 우리 윤리 공동체가 지켜 내야 할 가치를 위해 보다 번거로운 시스템과 이를 생각해 내는 복잡한 상상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오로지 '옳음'을 위해 비용과 시간을 포기하고, 더 느리고 복잡한 길로 돌아서 가야 할 때가 있다.


아직 생존자 정의를 구현할 수 있는 실체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는 안타깝게도 없다. 무엇이 생존자를 위한 정의이고, 이를 어떻게 현실에서 실현할 것인가? 저자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면서도 뚜렷한 방안을 내놓진 않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저자는 내내 말하고 있다. 생존자들의 목소리에 경청해야 함을, 한 인간에게 가해진 사회적 폭력에 우리 모두가 함께 분노해야 함을. 그리고 주디스 루이스 허먼은 이렇게 제안하는 듯하다. 그들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의가 무엇인지 한 번 찬찬히,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부터’ 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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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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