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꾸준함은 조용하지만 강력하다 - 더 발레리나

글 입력 2024.06.09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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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의 등을 보다


 

예술과의 만남은 찰나다. 예술가는 그 짧은 사이에 오랜 기간 닦아온 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관객이 마주하는 것은 매끈하게 닦인 아름다움이다. 그렇게 짧은 조우 후에는 모두가 미련 없이 떠나간다. 관객은 감동과 희열에 벅차서 공연장을 빠져나간다. 그렇게 모든 것이 마무리되고 예술이라는 인생에서도 하나의 단락이 맺어진 것 같다.

 

그렇지만 이 공연은 그것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공연 하나를 마치었다고 한껏 마시고 유흥에 젖어 긴장을 늦추는 것은 발레리나의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의 삶은 공연 하나를 기준으로 전후, 그 무엇도 단절되지 않는다. 단지 공연 하나가 끝났을 뿐, 그들의 발레는 계속된다.

 

발레는 몸으로 쌓는 예술이다. 예술가 자체가 예술이 되는 예술. 드문 종류의 예술이다. 그들의 실력은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동작으로 눈에 보이지만, 그들의 노력은 무엇보다 섬세히 짜인 근육으로 증명된다. 동작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과 철저한 관리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그들의 예술은 무대 위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공연의 기회를 기대하며, 무대를 우러러보며 꾸준히 만들어가는 인고의 시간이 모여서 예술이 된다.

 

<더 발레리나>는 발레 댄서들의 뒷모습을 조명하는 작품이다. 은은한 미소를 띠고 근사한 동작을 하는 고고한 백조 같은 발레의 모습도 있지만, 넘어지고 부딪히고 쓰러지는 발레도 존재함을 일깨워준다. 인간의 몸으로 ‘천상의 춤’에 닿기 위한 그들의 인간적인 헌신을 70분간 엿보고 왔다.

 

 

 

무대 위의 발레


 

발레에는 대사가 없다. 그러므로 발레 댄서들은 말을 제외한 모든 것을 이용하여 이야기해야 한다. 그러므로 발레 댄서들에게는 감정의 시각화가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끄는 음악, 섬세하고 강단 있는 동작, 과장된 표정을 통해 관객은 실마리를 잡는다.

 

도리어 아무 말도 하지 않기 때문에 더 큰 이야기를 본다는 것은 발레에 적합한 감상평일 것이다. 특히 프로그램 가운데 <미리내길>이라는 작품을 보며 그것을 실감했다. <미리내길>은 죽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그리움을 표현한 애절한 파드되(pas de deux, 두 사람이 추는 춤)로, 필자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한 부부를 마주했다.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안무는 발레리노가 파트너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리는 동작이었다. 중력을 거스르듯 공중에 가뿐히 날아앉은 발레리나는 다리를 휘저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 순간만큼은 지구의 모든 논리가 그들을 비껴났다. 중력의 제약에서 벗어나 바닥에서 발을 띄우고 허공을 걷는 발레리나와 그를 받치고 나아가는 발레리노의 결합은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했다. 그들은 ‘지금, 여기‘라는 제약을 뛰어넘어 자기들만의 어딘가를 걷고 있었다. 함께한 과거의 기억을 걷듯 혹은 그 허공의 걷기를 통해 과거로 건너가는 듯, 무엇인지는 몰라도 벅찬 행복을 선물 받은 것처럼 얼굴에 아련한 미소를 가득 띠고 있었다.

 

그들은 오직 자신들만이 속한 세계를 걷고 있었지만, 그들의 동작에서 관객도 그 세계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떠한 글과 발화보다도 강력한 이미지를 주었다. 글을 오래 다듬어 세상에 내놓듯, 오래 가꿔온 동작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는 무엇보다 직관적이고 분명했다. 마치 발레 댄서와 관객이 무언의 암묵적인 약속을 맺어 다른 세계로 나아가 만난 것처럼, 그런 환상을 보았다.

 

 

 

무대 아래의 발레


 

그러한 장면의 한편으로 아름다운 공연 중에도 발레 댄서들의 사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공연장 왼편은 무대 위의 공간으로 설정된 반면, 오른편은 무대 뒤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그들의 모습을 모두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는 폴짝 활기차게 뛰어오르고 발랄하게 다리를 들어 올리던 그들은 무대 뒤로 돌아오면 가면을 벗어던지고 주저앉았다. 발에 쥐가 나서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하기도 했고, 부축을 받아야만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안쓰러운 동시에 무척이나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예술이라는, 아주 순간의 아름다움을 위해 몸을 바치면서까지 헌신하는 그들이 무척이나 애틋하게 느껴진 것이다. 만나본 적도 없고 금세 일어나 씩씩하게 발돋움하는 댄서들일 텐데. 어쩐지 그들에게 깊은 애착을 느꼈다. 그것은 인간적인 동정심, 혹은 단지 미덕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겠으나 한편으로는 그것 이상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빛나는 순간은 평생으로 보면 단 몇 순간, 나머지는 모두 고통을 견디며 쌓아가는 시간이다. 발레 댄서들이 반짝 빛나고 돌아오는 무대 아래의 시간처럼, 그러한 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니 발레 댄서의 삶은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열심히,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인정을 받아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에 놓이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무척이나 희박하다. 언제 그 시기가 찾아올지 알 수도 없고, 운이 따르지 못한다면 그저 무대 아래에서 노력하다 끝이 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견딜 수 없기 때문에. 간절해서라도, 그만치의 정성은 없다면 살기 위해서라도. 잔인하지만 그것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의 무대 아래 모습이 좋았다. 아주 좌절하고 실패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모든 방해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위해 다시 일어나는 모습이 좋았다. 진정으로 삶에 위로가 되는 것은 마냥 잘될 것이라는 한 마디가 아니라 넘어져도 꿋꿋이 일어나는 누군가의 뒷모습이다.

 

 

 

우리의 오늘, 그리고 발레리나의 매일


 

관객과 발레 댄서들은 이곳에 모여 짧은 파티를 벌였지만, 오늘은 오늘로 끝이다. 내일이면 그들은 연습실로 돌아가 스트레칭을 하며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것이다. 몸 끝에서부터 열을 올리고 스스로를 단련하는 시간이다.

 

공연의 마지막에서 그들을 대변하는 큰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내레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 가지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번 반복 연습을 합니다. 한순간의 동작 뒤에는 피나는 연습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짓이 세상에 위로와 감동이 되도록 오늘도 춤을 춥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피나는 연습을 통해 이 자리에 섰다. 그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 온갖 부상과 실패의 위험을 생각하면 70분은 너무도 짧았다. 그러나 깨달음 하나를 깊이 품게 되었다. 순간의 예술이 아름다운 것은 단지 아름답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예술가로서 평생을 짊어져야 할 노력의 무게, 자기 단련의 마음가짐. 순간의 아름다움이 증명하는 것은 이러한 것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으로 반짝이는 꽃을 그들에게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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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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