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늘은 자기소개서를 씁니다 [사람]

글 입력 2024.04.19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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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 글쓰기 수업 과제물인

자기소개서 실습에 대한 교수님이 피드백.

글씨가 교수님답다고 생각했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소개서를 써봤을 것으로 생각한다. 나의 자기소개서의 역사는 대입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자소서를 요구하는 전형이 많이 사라진, 대입 자소서 마지막 세대였던 나는 1지망 대학에서 요구하는 까다로운 자기소개서를 여름방학 내내 끙끙대며 작성해야 했다. 일반계 고등학교에 나와서 내신 챙기기도 바빴는데, 뭐 그리 대단한 경력과 활동을 했겠는가? 아주 얄팍하고 피상적인 활동들을 긁어모아다가 현학적인 언어를 사용해 가며 나의 부족한 바닥을 필사적으로 땜질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하지만 역시나 내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알맹이는 없고 미사여구만 가득했던 나의 첫 자기소개서는 1지망 대학 탈락으로 그 빛을 잃게 된다.


대입 이후에도 자기소개서를 쓸 일은 꽤 많았다. 대표적으로 우리 학교에는 이중 전공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정량적 요소인 학점과 정성적인 자기소개서를 준비해 제출하면 다른 학과의 전공과목도 이수하여 학위를 얻을 수 있는 제도이다. 나름대로 경쟁이 치열한 경영학과에 냅다 지원했는데, 지원 2주 전에 즉흥적으로 한 결정이었다.


이유는 2학년 1학기 당시 들었던 본전 공 교수님의 경영 경제 관련 수업이 너무나 재미있었고, 교수님이 경영에서 실무적인 능력을 쌓는 것을 추천하셨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래도 나름대로 “왜” 내가 경영학과에 지원하였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납득할 수 있었기에 자기소개서를 수월하게 쓸 수 있었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지금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된 아트 인사이트 에디터 직책 역시 자기소개서를 통한 자기 어필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경우에는 내가 “문화예술을 왜 사랑하는지”, “어떻게 에디터로서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나를 진솔히 드러내야 했다.


이처럼 우리는 같아 보이지만 조금씩 다른 상황에서의 자기소개서를 숱하게 쓰게 되며 그 과정은,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꽤 지루하고 고통스럽다. 우선 내세울 경력이 변변찮기도 할 뿐만 아니라, 경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속에서 내가 어떤 것을 경험했는지를 정확하게 묘사해 내기란 생각보단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게 자기소개서는 나에게 있어, ‘필요할 때 써야 하는, 그렇지만 성가시고 나를 때론 부끄럽게 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금 공강을 기꺼이 포기하고 들은, 본전 공의 사회과학 관련 글쓰기 강의에서 ‘자기소개서 실습 과제’를 맞이했을 땐, 그래서 꽤 절망적인 심정이었다. 인권에 대해 연구하시고, 휴식 시간에는 문학을 즐겨 읽으시며 “제발 하루 만에 금세 써 내려간  잡스러운 글을 저에게 던지지 마세요.”라고 상냥하면서도 간곡하게 이야기하시는 교수님에게 제출해야 할 자기소개서라.


나에게 있어 자기소개서는 내가 얼마나 높은 경력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남들과 차별화되어 있는 인재인지를 최대한 뽐내는 글이었는데, 교수님이 원하는 자기소개서란 도대체 무엇인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평소 깔끔한 수업 방식 및 국제 윤리 및 인권에 대한 진심 어린 숙고와 애정을 가진 교수님을 진심으로 존경했기에, 정말 좋은 글을 써서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업 오리엔테이션 때 교수님께서 작가 한강의 ‘소년이 온다.’를 추천해 주신 것이 떠올랐다. 한 줄 한 줄 진심과 전력을 다해서 쓴 글이라는 교수님의 말에, 도대체 어떤 글이길래 그런 말이 나오나 궁금해졌다. 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처럼 많아 지하철에서 이동시간을 쪼개가며 소설을 읽었다. 광주 사태에 대한 글이었고, 사회과학도이면서 해당 사건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나를 부끄럽고 서늘하게 만들었으며 내가 마치 혼이 되어 그 시공간 속에 떠돌아다니는 존재가 된 것 같게 만들었다. 작가가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하는 듯한 에필로그까지를 읽었다. 자신의 살아온 발자취 속에서 우연히 마주했었던 희생자들의 목소리를 도저히 무시할 수 없어서 평생을 인권에 대해 연구했다던 교수님처럼, 작가는 하필이면 자신이 이 사건과 관련해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소설의 형식을 빌려 독자들에게 전달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나일 수밖에 없는 이유. 내가 한 일련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담은 자기소개서를 써내야 하겠구나. 고백하지만, 나는 정말 정말 특별한 것이 없는 사람이다. 수많은 내 친구들처럼 어린 시절 다른 문화권에서 오래 살다 와서 애초에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가진 것도 아니고, 뛰어난 능력이라든지 간절히 하고 싶은 목표가 있어서 열정적으로 달려온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고교 시절까지는 평범하게 입시를 한 학생이었고 대학에 와서는 그냥 하루하루 과제와 공부와 적당한 유흥을 하면서 평범한 20대 초반을 보내고 있는 사람일 뿐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내가 하는 일련의 모든 선택은 결국 ‘나이기에’ 했던 것들이며 그 선택이 점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고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선택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부여하고 연결을 시켜주는 것은 나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인’이라는 소설을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인터뷰집에서 인상깊게 본 말이 있다.

 

“문득문득 내 글 쓰는 전부 그곳의 논과 숲과 고독 사이에서 싹텄다는 생각을 해요… 스탕달이 옳아요. “유년 시절은 끝이 없다.”…. 그게 내 인생 전체를 결정지었지 싶어요. 유대인처럼, 내가 이리저리 떠돌며 갖고 다니던 그 모든 것이, 멀어지고 결여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한층 더 강렬해졌죠.”

 

우리가 한 정말 개인적이고 내밀한 경험들. 그 것들이 사회적 기준으로 사소하든 비범하든, 우리는, 이른바 모래알이 바늘구멍을 지나가는 듯한 확률의 조합들로 각자 다른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이 내 순간의 선택을 만들고 그것들이 이어져 결국 나의 역사를 만든다. 그리고 지금 나는 유년 시절의 연장선상에서 청년기의 초입을 지나고 있다. 뒤라스의 말처럼, 내 과거와 지금의 기억들은 결국 내 평생을 거쳐 더 강렬해질 것만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런 마음을 담아 자기소개서 실습 과제를 써보았다. 내가 왜 이 수업을 듣게 되었는지, 내가 무슨 마음으로 지금을 살고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그런 마음이 들게 한 나의 경험들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썼다. 미숙하고, 그래도 여전히 겉멋이 많이 들었으며, 내가 직접 손수 경험한 것들보다는 외부의 언어적인 자극으로 인해 생각한 것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내가 누구이며 왜 이런 선택을 해왔는지 자그마한 실들로 연결되는 것 같아 기뻤다.


학생들에게 실습과제를 돌려주며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기억을 재구성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 마주하기 싫어서 지금껏 덮어두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랬어요, 누구나 그런 기억은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그 기억들에 대해 재구성하고 연결하다 보면 그 것들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것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게 돼요. 그냥 나를 지금으로 이끈 중요한 사건이 되는 것이죠.”


스스로에 대해서 고민하고, 청중에게 이런 나를 소개한다. 왜 내가 필연적으로 이런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설명하면서, 동시에 나에게도 나의 역사를 납득시킨다. 너무 낭만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항상 어떤 도전의 초입에 쓰게 되는 자기소개서는, 그 도전에 앞서 나에게 나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며 그럼에도 이 도전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어보는 존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마주할 수많은 자기소개서에 대해서 또다시 나에게 나를 들려주고 물어보는 과정을 거치며 조금은 더 나다운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는 금요일 저녁이다.

 

 

[김정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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