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씨어터 쿰에서 공연 중인 연극 <워크맨>(부제: 걷지 않고 일하지 않아 발생한 비극에 관하여)를 보고 왔다. 공연은 7월 5일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연극 <워크맨>은 2060년 서울을 배경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34년 후의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2060년을 살아가는 미래의 현대인과 2026년을 살아가는 현재의 현대인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근미래를 다루는 SF이지만, 머지않아 도래할 가까운 현재를 비추는 동시대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기후위기와 AI, 노동의 가치와 같은 현대 사회의 핵심 의제를 전면에 내세운 연극 <워크맨>은 우리가 이미 겪고 있는 문제들이 어떤 미래를 초래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최양현 작가와 예술창작공장 콤마앤드는 미래의 현대인을 그린 추상적 이미지를 구체적인 사건과 인물로 구현해 관객 앞에 보여준다.

연극은 ‘워크맨 운동’을 창시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김민준’의 라이브 방송으로 시작된다. 걷기를 통해 급격한 기후변화와 고질적인 우울을 극복하자는 메시지와 함께 경쾌한 음악, 배우들의 힘찬 몸짓이 무대를 채운다. 초반의 활기가 사그라지면 우울, 고립, 불안과 같은 부정적인 정서가 극 전반을 지배한다.
무대 위의 모든 인물들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중증 우울증, ADHD, 분노조절장애, 만성 불면증 등 다양한 증상을 지닌 인물들을 통해 작품은 현대인이 겪는 정신적 문제의 근원을 파고든다. 지금 우리가 막연히 걱정하고 있는 문제들이 2060년에는 더욱 선명하고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다.
제목인 ‘워크맨’은 노동(Work)과 걷기(Walk)의 이중적 의미를 품고 있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최양현 작가는 노동과 걷기를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행위이자 존재론적 사투라고 설명했다. 점차 노동과 이동의 필요성이 줄어드는 사회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잃어가고, 결국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먼저 노동의 문제를 생각해보자. 작품 속 2060년에는 AI가 대부분의 단순 노동을 대체하면서 인간의 노동시간이 주 3일, 하루 3시간으로 축소된다. 얼핏 보면 이상적인 미래처럼 보인다. 하지만 노동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경제 활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은 일을 통해 성취감과 자기효능감을 얻고, 사회적 정체성을 형성한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관계를 맺으며 소속감을 느끼고, 반복되는 노동 속에서 삶의 리듬과 목적의식을 발견한다.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은 성장의 경험이 되며, 자신의 일이 사회에 기여한다는 감각은 삶의 보람으로 이어진다. 연극 <워크맨>은 이러한 노동의 가치가 희미해질 때 인간에게 무엇이 남는지를 질문한다.
물론 AI가 가져올 변화는 노동시간의 단축만이 아니다. 동시에 인간은 언제든 자신의 역할을 대체 당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 실제로 고용노동부는 2025년 국내 직업 종사자의 61.3%가 AI와 로봇으로 대체 위험이 높은 직업군에 속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걷기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더 이상 움직일 이유를 잃는다. 사회적 연결은 느슨해지고, 신체적 활동은 최소화된다. 여기에 기후위기까지 겹쳐진다. 작은 면적 안에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와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은 인간에게 지속적인 불안을 안긴다.
햇빛은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해 기분을 안정시키고 활력을 제공하지만, 일조량이 감소하면 우울감과 무기력함이 찾아온다. 실제로 계절성 우울증과 같이 일조량의 변화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정신질환도 존재한다. 걷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연결되고 자신의 몸을 감각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걷기는 노동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중요한 행위이다.

노동과 걷기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103세까지 살아가게 된 ‘최미연’은 오히려 삶의 의욕과 목적을 잃어버린 인물이다.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한국은 정년 연장과 노인 복지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빠른 속도로 노인 우울증과 고독사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 기대수명의 증가는 단순히 오래 사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요구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인물도 있다. 인구 감소와 세계화가 가속화될수록 ‘김 시트왓 설린’, ‘응웬 하니’와 같은 다문화 가정과 이주민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단일민족의식으로 인한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시선과 거부감이 강하다. 입양 가족과 동성 가족 등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고 있음에도 사회적 인식은 그 변화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어린 시절 유명 키즈 크리에이터였던 ‘정하루’는 부모의 욕심과 사회적 관심 속에서 아직 의사결정에 서투른 어린 시절에 원치 않은 방식으로 소비되어 피해를 입은 인물이다. 이는 오늘날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아동 콘텐츠에 대한 경각심과 콘텐츠 생산 윤리 문제를 제시한다.
인간이 아닌 AI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는 ‘민도윤’은 어떤가. 그에게는 스스로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판단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오로지 AI의 지시를 따라야만 한다. AI는 언제나 인간보다 효율적이고 정확한 답을 내릴까? AI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처럼 <워크맨>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각각의 인물과 정신질환을 통해 구체적으로 구현한다. 인물들은 이러한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동하고 걸으며, ‘워크맨 운동’에 참여한다. 그러나 현상 유지 그 이상으로 나아지기가 쉽지 않다. 인물들이 정신 문제를 겪는 근본적인 원인. 먼저 각자가 겪는 고통의 시발점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품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그리고 있지만은 않으나, 변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특히 AI ‘알마’는 인간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울의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간보다 더 빠르게 정확하게 사람을 구해내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AI와 분리될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편이 현명할 것이다.
또한, 인간 사이의 관계도 중요하다. 개인이 사회에서 고립될수록 타인과 교류하는 순간은 더욱 소중해진다. 사회적 관계가 필수적이지 않은 시대에 오히려 자발적으로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는 커져간다. 최근 다양한 취향 모임과 커뮤니티 문화가 확산되는 현상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연극이 끝나고 연출, 작가, 정신과 전문의와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 시간이 이어졌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작품 속 인물들과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신질환과 관련된 문제는 일상 속에서 쉽게 꺼내기 어려운 주제이기 때문에 전문의와 함께하는 질의응답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연극 자체도 전문의의 자문을 바탕으로 최대한 인물들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려 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아마 초연 당시 <워크맨>이 큰 호응을 얻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현재 가장 뜨거운 의제들이고,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지속적이고 활발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워크맨>은 현대 사회에서 필요한 공론장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이 맞닥뜨린 위기를 피할 수는 없다. 수많은 위기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는 힘은 인간이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가려는 의지에서 비롯된다. 인간이 스스로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 거기서 답을 찾을 수 있다.